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미술가는 최정화가 아닐까?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곳으로 알려진 일본 기리시마 예술의 숲에서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기리시마 예술의 숲 Kirishima Open-Air Museum은 일본 남부 가고시마 현의 대표 미술관이다. 2000년 개관했는데, 기리시마산 중턱에 위치한 20헥타르 규모의 야외 조각 공원에는 유명 작가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예술을 통한 치유를 느낄 수 있다. 2km의 산책로에서 23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최정화의 ‘당신이 예술이다 You Are the Art’는 지난 22년간 가고시마 현뿐 아니라 전 세계 관람객에 게 사랑을 받아왔다. 22년간 8개의 황금 액자로 구성된 이 설치작품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지 않은 가고시마 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듯하다. 이 작품은 황금 액자, 황금 바퀴, 황금 거울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일본 남쪽에는 최정화의 ‘당신이 예술이다’가 있고, 북쪽에는 ‘플라워 호스 Flower Horse’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플라워 호스’는 2008년 최 작가가 아모모리 현의 토와다 아트센터 Towada Art Center 야외에 설치한 5.5m의 말 형상 작품으로, 랜드마크가 되어 여전히 큰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 작가가 22년 만에 다시 기리시마 예술의 숲을 찾아 아트홀에서 개인전 <생생활활 生生活活>을 열었으니, 현지의 관심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건축가 쿠니히코 하야카와 Kunihiko Hayakawa가 디자인한 30m 길이의 광활한 아트홀은 처음으로 장막을 걷고 햇살을 받아들였다. 그림, 조각과 같은 미술 작품은 햇빛에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술관은 창문을 꽁꽁 막아둔다. 하지만 최 작가는 생활용품으로 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햇살을 피할 필요가 없는 것. 산속에 위치한 전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변화하는 태양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 전시를 위해서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2019년부터 가고시마 현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지역민과 협업에 나섰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당신도 없습니다.” 그는 일본어가 유창함에도 불구하고 전시 오프닝에서 이 한마디만을 전했으며, 관람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없으면 예술이 없고, 예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것으로, 생활 속에서의 예술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함축하고 있는 것. 그는 가와나베 지역박물관, 하카타 역사박물관, 아이라 시티 역사박물관 등 16곳의 기관과 손잡고 대부분의 작품 소재를 손때 묻은 것으로 구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재료를 대거 구입해 가면 편할 텐데, 그는 이렇게 지역민과 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시스턴트도 데리고 가지 않고, 현지 스태프와 작업하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예술이란 소통이자 협력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대나무 장인의 바구니, 가쓰오부시를 건조하는 통, 추억을 담은 낡은 밥상, 바닷가에 버려진 고무 부표, 타이어가 층층이 쌓여 미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민속박물관에서 빌려온 석불과 토기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그를 매료시킨 것은 가고시마 현의 온천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다지 마혼칸, 묘켄칸과 같은 온천 호텔에서 투숙했던 그는 세월을 담은 온천의 흔적에 빠져들었다. 뜨거운 온천물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플라스틱 파이프와 의자, 바가지, 슬리퍼 같은 일상용품은 온천의 천연 성분과 결합해 동굴 속 종유석처럼 변했다. 그는 여러 온천에서 이를 수집해 전시장 한 공간을 ‘자연사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으로 이름 붙였다. 현지인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것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연사박물관’ 창밖으로는 조나단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의 조각 작품 ‘남자 여자 Male Female’가 보이고, 그 뒤에는 여전히 회색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활화산 사쿠라지마가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사진 작품도 선보였다. 온천 물이 흐르는 강가에 돋아난 이끼와 가을 단풍처럼 붉어진 바위는 자연이 창조한 추상화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온천의 단면을 작품으로 촬영해 자연의 힘을 느끼게 했다. 천혜의 자연이 만든 오묘한 색상은 아무리 비싼 물감을 써도 비슷하게 조합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의 전시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무엇으로, 왜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지난 3년간의 가고시마 현 조사 과정을 소개한 영상도 상영되고 있으니, 초등학생이라도 전시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2층에는 그의 연작 ‘유 아 더 모뉴먼트 You Are the Monument’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든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22년전 그와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초등학생이 이제 어른이 되어, 그의 자녀가 다시 한번 최 작가와 함께 워크숍을 했다고 하니 흥미롭다. 가장 안쪽 벽에는 황금 액자 설치작품 ‘당신이 예술이다’에서 시민들이 촬영한 기념사진을 기증받아 가득 붙였다. 기념사진에 담긴 지역민의 사연은 아트홀 유리창에 소개되어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했던 추억도 전시하는 미술관의 의도가 정겹다. 깨끗한 물로 재배된 야채와 과일로 유명한 가고시마 현의 특징을 살려 아트홀 안팎으로 ‘굿 하베스트 포레스트 Good Harvest Forest’ 연작도 설치했다. 특히 아트홀을 장식한 거대한 파인애플 작품은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으며, 야외 화장실 건물에는 치커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구두’ 조각 옆에는 배추가 매달려 있다.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하는 것입니다. 예술 작품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 앞에 떨어진 작은 나뭇잎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지요.” 최 작가는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아트 컬렉션 열풍에 우려를 나타냈다. 예술 작품을 투자 상품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인생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의 존재 이유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아이 때부터 기리시마 예술의 숲을 방문하고 있는 현지인들은 예술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부럽다. 사슴과 너구리가 숨어 있는 기리시마 숲속의 공공미술 작품은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에게 활력소가 된다.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도 보고, 안토니 곰리, 루치아노 파브로, 츠바키 노보루, 댄 그레이엄, 필립 킹 등의 조각이 있는 숲속 미술관을 산책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전시는 오는 12월 11일까지 만날 수 있다. 최 작가는 11월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경기장에 작품을 영구 설치한다는 특급 뉴스도 전해왔다. 12m 높이의 작품 ‘민들레’는 카타르 시민들이 사용했던 그릇과 냄비 그리고 노동자들의 헬멧과 축구공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축구공은 바람이 빠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다. 카타르 왕궁에도 그의 붉은 탑 작품을 설치했는데, 이는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카타르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각국 응원단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신작을 만나게 되니, 국위선양이 아닐 수 없다. 포용과 교감을 중시 여기는 최정화 작가의 마음이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