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디자인 수도 2022에 선정된 발렌시아에서 즐기는 디자인 문화 여행.
발렌시아 태생의 인상주의 화가인 호아킨 소로야는 이곳에서 빛을 부드럽고 풍요로운 색상으로 그려내는 화풍을 완성했고,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하이메 아욘은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발렌시아 특유의 따스한 분위기가 좋아 마드리드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말한다. 1년 중 360일 맑은 날이 이어지고, 야자수와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로 줄지어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바로 스페인 발렌시아다. 발렌시아는 올해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비정부기구인 세계 디자인 기구®, WDO™에서 2년마다 선정하는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 WDC)’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서울은 2010년에 선정된 바 있다).
발렌시아 지역 전반에 걸쳐 100년간 축적해온 건축과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설치미술 등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마치 밀란디자인위크처럼 도심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가 진행됐고, 가구 박람회 ‘페리아 아비탓 발렌시아’를 통해 스페인 가구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의 제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음 세계 디자인 수도는 2024년에 미국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국경인 티후아나로 도시 두 곳에서 처음으로 동시 진행돼 기대를 모은다.
세계 디자인 수도 2022 발렌시아
제너럴 디렉터 사비 칼보 Xavi Calvo 인터뷰
발렌시아 2022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디자인을 통해 발렌시아가 황금기를 보냈던 15세기부터 현재까지 도시를 이끈 산업, 역사, 문화 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자긍심을, 방문객들한테는 우리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가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발렌시아가 가구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등이 자리하는 스페인의 중심으로 진출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발렌시아가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15세기에는 실크 산업, 17~18세기에는 도자기 공예, 그다음에는 가구와 산업디자인 분야였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1987년 첫 산업디자인학과가 설립된 대학이 바로 CEU(Universidad CEU Cardenal Herrera) 사립대학입니다. 디자인, 건축학과가 속한 ESET(Technical School of Design, Architecture and Engineering) 스쿨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교수진과 인재가 모였는데, 현재 활발하고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 디자이너 중에 이곳 출신이 많습니다.
이번 행사가 진행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디자인은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와 일상 속에 늘 함께하는 것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 안락한 의자를 만들고자 하는 것, 물건을 더 쉽게 사용하고 싶다는 욕구가 디자인이거든요. 또한 스페인 정부는 물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함께 삶 속에서 디자인 문화를 구축해 나가도록 돕는 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아고라 발렌시아와 카이사 포럼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파빌리온 ‘아고라 발렌시아’는 주요 행사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중해 파도를 모티프로 한 지붕 디자인과 15세기 발렌시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도자 산업을 연상시키는 세라믹,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스페인 3대 축제 라스 파야스 Las Fallas의 인형 조각물인 니놋 Ninot을 연상시키는 목재로 만들어 발렌시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명소로 꼽히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 La 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의 컨벤션 센터였던 아고라 El Ágora 건물은 ‘카이사 포럼 CaixaForum València’으로 탈바꿈해서 벌써 15만 명이 다녀갔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를 재현하는 디자인으로 내부 중앙에 위치한 구름을 뜻하는 라 누베 La Nube의 상단은 오대양 바다 온도와 실시간 데이터가 연결되어 기후변화와 수온 상승에 따라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사실상 경고를 뜻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인기가 많은 전시 셋
많은 전시가 발렌시아에서 진행됐지만 특히 인기가 높았던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호르헤 에레라 스튜디오 Jorge Herrera Studio가 준비한 <프로덕트프로덕트 프로덕트> 전시는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산업디자인 제품을 초기 구상 과정부터 보여주었다. 스튜디오 미림보가 큐레이팅한 <플레이 위드 디자인>은 어린아이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로 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 등 평면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종이, 도자, 그래픽 기호로 만든 보드게임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디자인과 놀이를 결합해 재미를 더했고, 단순한 전시가 아닌 다양한 교육 워크숍도 진행했다.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대형 회고전 <한없이 무한한 마음 InfinitaMente>전은 초창기에 제작한 7개의 대형 태피스트리 마스크를 비롯한 ‘마스크마스크 Masquemask’ 시리즈와 지난 20년간 선보인 다양한 제품과 가구를 한곳에 모았다. 발렌시아와 연관되는 상징적인 콘텐츠를 담은 작품도 첫선을 보였고, 제품의 준비와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틀과 소재 그리고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영감을 얻은 것에 대한 구상 스케치까지 전시해 그의 예술관과 창작 과정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또 10월 한 달간 진행한 ‘패션의 미래’라는 테마로 패션 산업의 변화와 지속가능한 패션을 강조한 프로그램에서는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꾸준히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는 영국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래번 Christopher Raeburn, 친환경 패션 디자인 어워드인 리드레스Redress 를 설립한 크리스티나 딘 Christina Dean, 친환경 패션을 추구하는 H&M 재단의 전략 전문가 등 연설과 함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샵을 진행하는 지속가능한 패션 국제 회의 CONGRESO, Future of Fashion 를 개최했다. 또한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여 특히 지중해의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알리고 자원의 순환을 보여주는 ‘비욘드 더 플라스틱 웨이브 Beyond the plastic wave’ 전시와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을 선보이는 ‘지속가능 마켓 Moda+Sostenible’, 스웨덴의 브랜드인 이케아 IKEA, 에이치앤엠 H&M, 누디진Nudie Jean 등에서 현재 진행 중인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솔루션을 보여주는 ‘패션, 포에버 Fashion. Forever’ 전시를 진행해 의미를 더했다.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래번 인터뷰
본인 브랜드 래번 Raeburn 외에 여러 분야의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각 분야마다 버려지는 자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의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통합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서로 잘 활용하여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지속가능한 아이디어로 출시한 제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10월 래번 브랜드의 키트:백 KIT:BAG 컬렉션과 팀버랜드 얼스키퍼스 by 래번 컬렉션 2가지입니다. 전 세계에는 축구 선수를 꿈꾸는 유소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유소년 축구 꿈나무만 1900만명이고, 전세계적으로는 더 많겠지요. 어린이들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일년마다 축구복을 새로 사고 갈아입습니다. 그래서 이를 활용해서 만든 키트:백 KIT:BAG컬렉션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래번 브랜드가 지향하는 3가지 RÆMADE, RÆDUCED, RÆCYCLED에 부합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팀버랜드 얼스키퍼스 by 래번 컬렉션으로 친환경 재생 농업에서 적용한 가죽 소재, 사탕수수 등 자연 소재, 100% 재활용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신발과 의류 컬렉션으로 제품이 수명을 다한 후에도 쉽게 분리해서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콜라보레이션 작업하고 싶은 분야나 브랜드가 있나요?
제가 추구하는 3가지를 통해 기존의 것에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투자할 의향이 있는 브랜드들과의 작업도 좋지만, 아예 친환경, 지속가능성에 대해 첫 발을 내딛는 브랜드와의 작업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레고의 플라스틱 블록 같은 것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