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패턴으로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일러스트레이터 쿠스타 삭시. 그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그래픽 스토리텔러이자 마법을 부린 듯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공간 마술사다.
자연적이며 유희적이고 감성적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핀란드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쿠스타 삭시 Kustaa Saksi를 표현하는 키워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컬러를 불러온 듯 그가 가진 컬러 팔레트는 방대하고 무한하다. 핀란드 남동부 도시 코우볼라 출신의 그는 지금 네덜란드의 틸뷔르흐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패브릭을 직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나고 자란 고향에서의 기억이 현재의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끌어내는 단초가 되었다. “핀란드 겨울은 영하 30℃가 되기도 하고 백야나 극야도 있어 누군가는 날씨가 괴팍하다고 하겠지만, 수만 개의 호수가 국토 전반에 있고 자작나무 숲이 무성한 핀란드 자연이 너무도 그리운 순간이 많다. 핀란드의 자연은 내게 커다란 영감을 주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신이 과거 마주한 자연이 추상화된 형태로 재해석되어 작업에 스며 있다고 설명했다.
평범함에서 벗어나 장난스럽고도 매력적인 형태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내는 쿠스타 삭시는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 터득한 직조 기술을 바탕으로 의류와 쿠션, 러그,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텍스타일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에르메스와 협업해 페이퍼 아트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종이가 가진 특성과 질감에 역동적인 색상을 입혀 윈도 디스플레이 공간에 자신만의 작고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가 펼쳐낸 작은 세계를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소식. 쿠스타 삭시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에르메스 윈도를 새로이 꾸몄다. 어른들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하는 쿠스타 삭시의 작업 세계관이 궁금해졌다.
마치 글이 없는 동화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한데,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나?
이번 에르메스 윈도 작업으로 예로 들자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경쾌하면서도 기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나만의 추상적인 해석을 표현하는 동시에 윈도를 바라보는 이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더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는 정렬적인 레드 컬러를, 오른쪽은 숲을 연상시키는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무엇을 의미하나?
왼쪽은 그리스 신화 속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의 마차를 이끌던 불멸하는 천상의 말이 마법의 약초가 있는 축복받은 섬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스케치를 시작했다. 오른쪽 역시 신화 속 알로에우스의 아들인 쌍둥이 형제 알로아다이가 등장하는데, 이 둘은 덩치가 매우 큰 거인들로 산을 옮기거나 바닷물을 메울 수 있을 만큼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는 존재로 표현된다. 혹자는 이 둘이 인간 사회에 문화를 가르치고 도시를 세우는 등 문명을 가져온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한 오래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들 형제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새로이 개장한 에르메스 윈도를 통해 아름답고도 지적인 문화와 오브제를 가져왔다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봤다(웃음).
서로 간의 간격은 물론 깊이까지 느껴져 흥미롭다.
크기의 다양성과 과장법을 적극 작품에 적용하고 서로 다른 질감을 배열한다거나 패턴과 컬러를 이용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을 즐긴다. 때문에 다소 변덕스럽고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종이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
내게 종이는 작품을 표현하는 수단 중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재료다. 종이는 가녀려 보이지만 또 반대로 질긴 성격도 갖고있다. 이렇게 양극단의 성질이 있는 만큼 활용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재료이기에 앞으로도 종이를 가지고 새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
대칭을 이루는 곤충이나 식물이 채집한 과학 자료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이다. 종종 동물과 식물을 아주 크게 확대한 모습에서 디테일을 찾곤한다. 그때 마주하는 장면이 내게는 텍스처와 패턴으로 된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좌우대칭이라는 요소는 놀라움을 선사하며 흥미를 유발한다. 또 성격이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데 쓰이는 로르샤흐 잉크 테스트에 관심이 많다. 보는 사람마다 흔히 어떤 물체나 얼굴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주 재미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작품에 영감이 될 만한 것을 찾았나?
한국은 이번이 첫 방문인데, 정말 인상적인 나라인 것 같다! 한국 문화와 사람 그리고 음식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모든 것이 텍스처와 컬러, 맛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해보니 내 작품을 설명하는 키워드와도 유사하게 들리는 것 같다. 암스테르담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당장 드로잉을 시작하고 싶다.
텍스타일과 종이를 넘어 새로운 재료를 시도해볼 생각이 있나?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텍스타일의 직조 과정과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앞으로도 줄곧 여기에 매달릴 것 같다. 최근에는 캐비닛 제작을 시작했으며 다양한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 중이다. 또한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아 언젠가는 그 분야로 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