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신사옥으로 이전한 종킴디자인스튜디오. 팀원과 함께 성장해 나갈 영감과 경험의 장이다.
2016년 혜성처럼 등장한 종킴디자인스튜디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삼성물산의 구호 플래그십 스토어,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스파 등 굵직한 브랜드를 작업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가파른 성장 곡선 뒤에는 인력 충원이 필요충분조건처럼 뒤따랐다. 2년 전 10여 명에 불과했던 팀원은 하나둘 늘어나 어느덧 20명이 훌쩍 넘어 있었다. 탈피하고 새로운 공간을 찾을 시간이었다. “1차 목표는 누구든 장애물에 걸리지 않고 기지개를 제대로 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이었어요(웃음). 작년 여름에 이곳을 계약하고, 리모델링한 뒤 이사까지 한 달쯤 걸린 것 같아요. 한남동에서도 지대가 높은 편이라 날씨가 좋은 날 옥상에 올라가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그걸 보고 있으면 뭔가 성공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창이 커서 자연 채광도 무척 좋고요. 무엇보다 계단부가 굉장히 널찍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긴 테이블 끝에 앉은 김종완 소장이 사옥 소개를 시작했다.
신사옥은 총 6개 층으로 구성되는데, 1층에는 회의실 겸 탕비실이, 2~4층에는 팀원 업무 공간과 마감재실, 5층에는 소장실, 6층에는 휴게실이 자리한다. 의류 회사의 사옥으로 사용했던 건물의 특성상 창고처럼 구획된 공간이 많아 벽을 철거하고 바닥재와 조명 등 전반적으로 손을 봤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개개인에게 배당된 업무 공간. 2m 간격으로 배치하고 책상도 모두 맞춤 제작했다. 수평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층마다 원형 테이블을 배치하고, 눈 건강을 위해 팀원들의 책상 위에 아르떼미데 티지오 테이블 조명을 하나씩 올렸다. “사무실보다는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 되었으면 했어요. 무엇보다 팀원들과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우선이었죠. 6층도 팀원 휴게실로 꾸몄는데, 아무래도 제 방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제대로 활용을 못하더라고요. 곧 안마 의자도 놓고 리노베이션할 계획이에요. 쉽지 않겠지만 일하는 동안은 다들 행복했으면 하거든요(웃음). 층이 나눠져 있다 보니 소통을 위해 1층 입구에 타공판으로 현황 게시판을 만들었어요. 각자 사진들로 픽을 만들어서 출퇴근과 휴가 현황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했죠.”
무엇보다 경험
1층과 5층을 오가는 사옥의 엘리베이터는 조금 특별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새빨간 조명이 내부를 비추는 것. “한번은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지나가게 되었어요. 어두컴컴한 길에 빨간 조명이 켜 있는데, 그 순간 굉장히 비일상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 내가 정말 여행을 떠나왔구나 하는 그런 기분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비일상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게 엘리베이터를 꾸며봤어요.” 사옥 곳곳에 작업을 함께 했던 아티스트의 작품을 배치한 것도 비슷한 이유.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다른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연례행사가 있다. 마지막 달 3주간 회사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는 ‘겨울방학’이다(물론 유급휴가). 이 기간과 겹쳐서 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함께 쉬어야 한다는 원칙은 변치 않는다.
여름에는 전 팀원이 함께 옷을 맞춰 입고 워크숍을 떠난다. “저는 디자이너가 성장하는 길은 경험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팀원들이 주거, 상업, 오피스 등 다양한 분야를 돌아가 면서 맡게 하고, 겨울방학 제도를 만든 것도 일하면서 하지 못했던 경험을 실컷 하라는 의미에서죠. 저도 1년에 최소 두 번은 꼭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이번 겨울에는 마라케시에 다녀왔어요. 광장에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 바구니에서 올라오는 뱀, 이슬람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곳곳에서 풍겼던 향신료 냄새와 연기 등이 참 생경한 경험이었어요.” 그는 인스피레이션을 위해 따로 스터디를 하기보다는 기존의 경험을 활용한다.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몇 년 동안 다이어리에 글로 쓰고 그려 기록한 기억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큰 아카이브가 됐다. 실제로 그의 방에는 여행지에서 산 물건, 생경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 등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두번째 책을 쓰는 이유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마주하는 직업 특성상 싫어하는 것을 웬만하면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그는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 ‘진심’이다. “배우들이 한 역할을 맡을 때 빙의되어서 그 캐릭터에 푹 빠져 살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클라이언트에 거의 들어갔다 나오는 수준으로 일하거든요. 그들을 100% 이해하고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기는 하죠. 그래서인지 클라이언트한테 잘 삐지기도 해요(웃음).” 실제로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작업은 섬세한 디테일과 유려한 분위기, 고급스러운 미감, 공간 전략 디자인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과감한 패브릭, 대리석, 나무 등 여러 마감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간으로 읽히는 이유는 치밀하고 꼼꼼한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오랫동안 아카이브처럼 남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설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정립하는 일까지 가 닿는다. 기획 스케치부터 완공까지의 작업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의 기분>에 이어 곧 두 번째 책을 내는 이유. “디자인하는 사람이 왜 계속 글을 쓰냐고 물을 수 있는데, 저는 건축 설계와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아직까지 설계비가 시공비에 슬쩍 얹혀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설계비는 얼마, 시공비는 얼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