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M+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작품을 봐준다면 계속 창작할 것이라고 말한 그녀의 열정과 의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미술계를 강타한 빅스타는 단연 쿠사마 야요이다.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게끔 도쿄의 도심과 디지털 스크린을 장식하더니 서울, 뉴욕, 파리의 루이 비통 매장 곳곳이 그녀의 작품으로 장식되었고, 이는 곧 SNS 피드로 옮겨졌다. 그림 그리는 쿠사마 로봇 인형까지 등장하는 요란한 마케팅 속에서 쿠사마가 지나치게 희화화되었다는 평가도 지울 수 없는데, 이 작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놓칠 수 없는 전시가 홍콩 M+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바로 <쿠사마 야요이: 1945년부터 현재까지>로 아흔을 넘긴 작가의 예술 활동 70여 년을 돌아보는 전시회다. 일본 외 아시아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최대 규모로 꾸며지는 전시이자 보기 드문 초기 작품을 포함해 200여 점이 출품되었고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그녀의 철학에 초점을 맞췄다.
쿠사마는 종묘원을 운영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불화와 어머니의 학대를 받았고 10살 때부터 점이 계속 보이는 환각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전쟁 중이던 일본에서 낙하산 공장에 배치 받아 바느질을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미술에 재능이 있던 그녀는 전쟁 후 교토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전시도 열게 된다. 이후 1957년 뉴욕으로 떠나 이스트 빌리지에 머물면서 대형 유화로 인피니티 시리즈를 제작하게 되는데, 무려 10m가 넘는 대작도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된다. 수십 시간 동안 끊임없이 그물망을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예술은 그녀로 하여금 삶의 고통을 잊게 할 뿐 아니라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편이었는데, 때로는 사나흘을 잠도 자지 않은 채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다행히 뉴욕에 이어 베니스, 스톡홀름 등 주요 전시에 초청받고 유명 작가 및 갤러리와 교류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1973년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도쿄로 돌아왔고 이후 정신병원에 머물면서 작업하고 있다.
그러나 M+ 미술관이 전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은 그녀의 흥미로운 인생을 둘러싼 가십거리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어떻게 예술로 연결되고 또 각각의 작품이 서로 어떤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대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멀리서 보면 빨강 바탕에 검은 점을 찍은 ‘점’ 시리즈 작품으로 보이는 것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바탕을 먼저 검게 칠한 후 기름을 거의 섞지 않은 빨강 물감으로 작은 점을 남기며 촘촘하게 칠한 ‘그물망’ 시리즈인 셈이다. 이처럼 쿠사마의 작품은 점에서 그물로, 퍼포먼스, 오브제, 설치로 연결되고 확장되어왔다. 연결성은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표작인 ‘점’만 해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점이 연결되어 에너지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쿠사마는 이를 재탄생으로 보았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힘은 살기 위해서는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절박한 요청 그리고 그녀의 놀라운 의지 덕분이다. 젊은 시절 그녀가 한 말이다. 만약 100년을 살 수 있고, 내 작품을 봐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창작을 계속할 것이라고. 성공을 위해,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걸어온 그녀의 70년 예술 인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기간 중 개관한 M+ 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이기도 하다. 5월 14일까지 열리니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오랜만에 문호를 열고 개최될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가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