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20주년 기념 쇼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경계를 허문 해체주의적 예술은 그가 바랐던 아름다움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였던 마틴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가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하고 순수예술가로 돌아왔다. 그가 1980년대부터 천착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 50여 점을 출품했다. 관습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독창적이고도 전위적인 패션 스타일을 고수했던 디자이너 정체성이 고스란히 예술 작품에도 녹아들었다.
초반에는 패션의 범주 안에서 한정된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했다면, 디자이너에서 은퇴한 지금은 시각예술가로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 어떠한 제약 없이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며 그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대표 작품으로 ‘데오도란트 Deodorant’를 꼽는다. 데오도란트는 인류 역사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공산품이다. 땀이 흐르며 분비되는 체취를 감추기 위해 현대인은 데오도란트를 사용한다. 자연스러운 흔적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인위적으로 지우는 행위를 통해 현대사회가 규정한 매력적인 신체 기준에 부합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같은 행위가 위생에 대한 강박과 형태의 변형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모발로 얼굴 전체를 덮은 두상 ‘바니타스 Vanitas’를 통해 이러한 욕구의 허무와 부질없음을 설명한다. 유년부터 노년까지 인간의 생애 전체를 머리카락색으로만 표현한 이 작품은 사람들이 시간의 흔적을 염색으로 가리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죽음에 직면한다는 필연을 상징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속성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아름다움은 그러한 상황에서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속성이다.” 마르지엘라의 모든 작품은 그가 정의한 아름다움을 관통하고 있다. 인체의 일부를 3D 스캔해서 만든 조각 작품 ‘토르소’, 작가는 ‘토르소’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폐기될 부분을 ‘키트’라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미완성 작품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장난감 조립 세트 형태로 전시했다. 그는 이를 통해 작품 제작 과정을 노출하면서 무엇이 작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로써 관람객은 완성품이 아닌 부분적 과정을 접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마르지엘라가 의도하는 아름다움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같은 형식의 ‘몰드(들)’ 또한 작품 생산에 숨겨진 도구를 드러낸 또 하나의 작품이다. 이 몰드는 ‘토르소’의 모체가 되는 거푸집이다. 예부터 몰드는 생산과 복제의 도구로 일반적으로는 대중 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작가는 이를 전면에 내놓으면서 아이디어와 최종 형태 사이에서 정지된 순간을 기념한다. 결과보다 과정, 완전무결보다 불완전함의 가치가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마르지엘라는 이처럼 해체주의적 방식으로 작품 배후에 숨겨진 제작 과정과 도구, 기술을 드러냄으로써 작품 구성 요소를 파괴하고 재배치하여 그 본질에 대해 살펴볼 수 있도록 관람객을 유도했다. 반면 작품의 주체인 자신은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보인다. 디자이너로 패션쇼를 연출할 때도 모델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복면을 씌웠고, 쇼가 끝나고도 자신의 모습을 공개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때문에 마르지엘라는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불린다. 베일에 싸인 예술가 마틴 마르지엘라는 2021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년 베이징에서 전시한 후 세 번째로 서울 롯데뮤지엄을 찾았다.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한 점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 속에서 관람객이 새로운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로 같은 전시 공간과 관람 동선, 흰색 가운을 걸친 스태프와 그들이 펼치는 퍼포먼스 등 직접 전시 연출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한다.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전시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그가 창조한 예술 세계에 빠져보시길. 전시는 2023년 3월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