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토나에서 시작한 페라리의 전설
1967년 미국 데이토나에서 열린 24시 레이스를 페라리는 잊지 못한다. 마치 퍼레이드하듯 함께 결승선을 통과한 3대의 페라리. 데이토나는 그렇게 전설이 됐다.
페라리와 모터스포츠의 관계는 마치 육체와 영혼 같다. 고상하고 극적이며 매력적인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예나 지금이나 서킷 위에서 가장 뜨겁고 찬란하게 빛난다.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모터스포츠인 F1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거대한 팬덤을 이끌고 다니는 팀 역시 페라리다. 페라리가 만드는 작품 같은 모델과 정신, 타 브랜드가 범접하기 힘든 특별한 이미지는 서킷 위에서 그들이 쌓아올린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페라리가 서킷이라는 무대에서 쌓아올린 수많은 명작 가운데 단 한 편만 꼽아야 한다면 주저없이 1967년 데이토나 24시 레이스를 언급할 것이다. 이 레이스는 당시 서킷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페라리에게 크게 한 방 먹이며 챔피언 자리를 빼앗은 포드를 상대로 미국 레이스에서 펼친 그야말로 통쾌한 복수극이자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혹시 <포드 대 페라리> 영화를 아는가? 아직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시청하길 권한다. 1960년대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서킷 위 제왕으로 군림하던 페라리를 포드가 굴복시키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린 명작 중의 명작이다. 포드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탓에 페라리가 다소 의기소침할 수 있지만, 당시 페라리의 명성과 지금은 볼 수 없는 포드의 열정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대의 명작으로 꼽을 만하다. 더불어 이 영화를 통해 지금 언급하고 있는 1967년 데이토나 24시 레이스가 페라리는 물론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얼마나 아이코닉하고 치열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던 포드는 1960년대 들어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포드 회장인 헨리 포드 2세는 가슴 뜨거운 브랜드로의 이미지 변신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되찾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재정난으로 힘겨웠던 페라리를 인수하고자 마음먹지만 페라리 회장이었던 엔초 페라리는 인수합병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크고 흉측한 공장으로 흉하고 작은 차나 만드는 브랜드가 포드라는 말과 더불어 당시 포드 회장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아니라 단지 헨리 포드 2세일 뿐이라는 말까지 곁들였던 것이다. 이에 격분한 헨리 포드 2세는 서킷 위에서 어떻게든 페라리를 꺾어 복수를 다짐했고, 유일한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의 미국인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쉘비와 열정의 레이서 캔 마일스를 주축으로 GT40이라는 걸출한 모델을 개발했다. 그리고 1966년 르망 24시에서 보란 듯이 페라리를 이기고 챔피언에 등극했던 것이다. 더불어 그해 데이토나 레이스에서까지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페라리는 수모를 되갚기 위해 극적인 복수를 계획한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포츠카 레이스의 본고장인 데이토나에서 열리는 1967 챔피언십 개막 라운드에서 포드를 재치고 우승을 탈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승리를 위해 갈고 닦은 새로운 경주차인 페라리 330 P4도 그곳에서 데뷔했다. 실린더당 3개의 밸브를 단 4.0리터 V12 엔진은 기존의 420마력에서 450마력으로 출력이 늘렸고 5단 변속기와 서스펜션, 브레이크 시스템까지 새로 설계했다. 더불어 차체 디자인을 손봐 공기저항을 줄이고 다운포스까지 키웠다. 페라리의 복수극이 펼쳐질 데이토나 레이스에는 두 대의 P4와 한 대의 412P가 참가했다. 오픈 톱 스파이더 P4에는 1966년 포드팀으로 참가해 르망 24시 레이스 우승을 거머쥐었던 크리스 아몬이, 쿠페 형태의 베를리네타 P4는 이탈리아 그랑프리 우승자였던 루도비코 스카피오티가 운전대를 잡았다. 1967년 2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레이스는 시작됐다. 경기 초반부터 출전 차들 사이에 팽팽한 각축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페라리 소속 당시 챔피언을 지냈던 필 힐이 경기 초반 샤파렐을 몰고 선두로 나섰지만 약 3시간 후 차에 문제가 생기며 뒤처졌다. 이후 경기 내내 페라리가 레이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P4는 포드 GT40보다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레이스에 참가했던 6대의 GT40 가운데 완주에 성공한 차는 단 한 대에 불과했다. 1, 2, 3위를 모두 거머쥔 페라리는 마치 퍼레이드하듯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포드에 대한 화끈한 복수와 더불어 서킷 위 제왕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입증하는 장면이었다.
데이토나라는 단어는 그렇게 페라리 성공의 대명사가 됐고 이듬해 출시된 베를리네타와 365 GTB4에는 페라리 데이토나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그리고 당시 데이토나의 영광을 회상하며 2021년 한정판 아이코나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인 데이토나 SP3까지 출시하며 과거의 영광을 현재로 이어가고 있다. 페라리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전설로 존재한다.
CREDIT
writer
이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