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간직하고 싶을 만큼 멋진 풍경,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상징 등.
이 모든 마음이 가치 있듯 하나하나가 매력적인 무궁무진한 병풍의 세계로.
아무 의미나 목적 없이 서 있는 대상을 보고 ‘병풍 같다’고 표현한다. 뒤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역할을 말하는 등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병풍은 우리 의식 속에서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그런 병풍을 주인공으로 전시를 열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15개 기관과 개인을 찾아가 모셔온 병풍과 소장품을 포함해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우리 병풍의 정수가 담긴 전시 <조선, 병풍의 나라2>다. 병풍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했다. 전통적인 장식미술은 건축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석조 건물이 발달한 서양은 벽에 그림을 그린 벽화가, 벽돌로 건물을 만드는 중국은 종이를 벽에 붙이는 부벽화가, 목조 건축이 많은 일본은 문이나 칸막이에 그림을 그린 장병화가 발달한 식이다. 한옥은 온돌방과 마루가 나뉘어 있어 그림을 벽에 걸기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병풍이다. 병풍은 필요에 따라 접었다 펼칠 수 있어 보관과 이동이 편리하고, 공간을 장식하면서 칸막이로도 사용할 수 있어 가구의 기능도 겸한다. 잔치와 제사 등 관혼상제에도 늘 병풍이 함께했다. 왕실에서도 사용했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아주 다양한 병풍이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는 병풍의 ‘형식 Format’에 주목했다. 지금까진 주로 병풍에 담긴 그림이나 역사적 내용에 집중했다면, 병풍이란 장르의 서사와 만듦새, 디테일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고미술을 재미없고 따분하게 생각했다면, 그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는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으로 주제를 나눠 그 특징을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게 의도했다. 민간 병풍은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유머와 자유분방한 해학이 깃들어 있다. 제작 과정에 뚜렷한 규칙이나 법칙이 없기 때문에 개성 넘치는 미감과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전시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미술관 도입부에 민간 병풍을 설치한 이유도 그것이다. 궁중 병풍을 통해서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 그리고 궁중 회화의 장엄하고 섬세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왕실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엄격한 법칙에 의거해 도화서 화원만이 병풍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크기는 컸어도 정형화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 병풍은 짝수로 이뤄져 있다. 8폭, 10폭이 가장 많다. 그림은 낱폭으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전체를 연결해 하나의 화폭으로 삼는 일지 병풍이 있다. 그리고 병풍이 접히는 부분을 돌쩌귀라고 부른다. 돌쩌귀는 접혀 들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병풍을 활짝 펼쳐서 모든 낱폭이 하나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그 길이가 4~5m다. 캔버스 크기로는 500호가 넘어간다. 이런 대형 작품을 몇 번만 착착 접으면 크기가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 직접 눈으로 보면 더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조선, 병풍의 나라2>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기획한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양의 폐기물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목재 가벽을 설치하지 않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철제 구조물과 조립식 금속 프레임을 사용해 전시를 연출했다. 일반적인 목제 쇼케이스를 사용하지 않았으면서도, 실제 병풍과 쇼케이스 유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 더욱 디테일한 미감을 살펴볼 수 있도록 감상자를 배려했다. 현대미술이 미술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는 지금, 한국의 전통 미술이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을까 했던 의문 섞인 나의 질문은 기우였다. 병풍을 통해 바라본 고미술은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충분히 트렌디했고, 섬세한 붓 터치나 꼼꼼한 마감은 현대미술 못지않았다. 이미 전시회를 다녀간 BTS 리더 RM이 최근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수식은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 조상이 쟁취한 품질보증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라. 전시는 4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