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서 당신은 있는 그대로 온전한가요? 김희수 작가는 가늘게나마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불안으로 점철됐던 일상이 다시 반짝거렸다.
전시 제목이 <Monologue>예요. 혼자서 묻고 답하는 독백을 뜻하는데, 이번 전시의 구성도 자문과 자답으로 이뤄졌나요?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하고 답했는지 궁금해요.
저는 주로 일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요. <Monologue>는 제 일상을 영위하는 다양한 감정, 수많은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의 모음이에요.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막연하게 불안했던 순간이 많았어요. ‘무엇을 그려야 하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지?’ 아, 그럼 이 질문을 그림으로 한번 풀어보자 생각했죠. 자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느끼는 큰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작은 불안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불안하니까 한쪽 눈을 뜬 채 세상을 응시해요. 두 눈을 모두 뜨고 똑바로 바라보기에는 조금 겁도 나고 무서워서. 하지만 그렇다고 안 볼 수는 없는 그런 상태예요.
맞아요. 우린 무언가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울 때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실눈을 뜨죠. 질문은 곧 궁금증을 의미하고,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눈을 떠요. 그런데 ‘자답’에서는 모든 인물이 두 눈을 감고 있어요.
두 눈을 감은 모습은 도리어 어딘가를 지긋이 바라본다는 느낌을 줘요. 불안에 대해 질문하면서 살짝 떴던 눈을 다시 감은 이유도 나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죠. 본질은 자신에게 있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지금까지 두 눈을 감은 그림을 그려왔던 이유도 너무 슬프지도, 너무 우울하지도, 너무 기쁘지도 않은 그 중간의 표정을 의도한 거예요. 그게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작품에 다양한 오브제가 등장해요. 부러진 연필, 종이비행기, 총알, 폭탄 등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 요소가 곳곳에 있어요.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그리지는 않아 정답은 없어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죠. 흔히 시간을 총알 같다고 말하잖아요? 그런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언젠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종이비행기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죠.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요. 편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작품 안의 인물이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있는 우리 모두라고 말이에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손 글씨로 쓴 짧은 글귀가 많은데,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기보다 차가운 현실이나 채찍질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의도하고 창작해서 쓴 글은 아니에요. 사실 그냥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요. 예를 들면, 문득 불안한 마음에 달리기 시작했는데 빨리 달리지 못하니까, 그래 이건 오래달리기야 이렇게 생각하는 식이에요. 결국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난 어디에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약간의 일기 같은 작업인데 그 글들이 그림이 될 때가 많아요. 그림이 요리라면 글이 재료가 되는 거죠.
사진을 오랫동안 다뤘다고 들었어요. 사진과 그림은 비슷한 시각예술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프레이밍하는 사진과 비현실을 확장해가는 그림은 사실 정반대의 성격을 띠어요. 장르를 넘는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인물을 촬영한 포트레이트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 성격이 내성적이다 보니 사진으로는 원하는 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초상을 작업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죠. 그때 그림을 알게 됐어요. 엄청나게 큰 매력을 느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이 어려워 보였어요. 어려운 걸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진득하게 하려면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도 공부해야겠구나. 그러면 더 이상 직업적인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겁이 없었죠(웃음). 지금도 여전히 어렵고 재밌어요.
어려운 걸 찾아 그림을 그리게 됐고 여전히 어려운 것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쉽고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네요.
제 작품을 보는 분들은 어렵지 않게 봤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언급되는 단어가 ‘일상’이에요. 그리고 작품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는 후기를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우리와 공통되는 일상에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공감만으로도 위로와 따뜻함을 느끼니까요.
일상이란 주제가 쉬우면서도 어려워요. 그리고 절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우린 모두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자신의 일상에서 공감되는 부분만 공감해줘도 감사해요. 그럼에도 많은 분이 제 그림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해주세요.
그 부분이 정말 흥미로워요. 우린 각자의 일상을 살고 그 일상이 모두 다르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결국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제 그림체가 우울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실제로 작품을 보면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이 느껴지면서 위로받고, 포근했다는 감상도 많이 이야기해요. 나와 같은 사람들, 비슷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4월 16일까지 <Monologue> 전시가 열리는 에브리데이몬데이는 이제 벚꽃으로 뒤덮일 석촌호수 옆에 있어요. 전시가 어렵지 않고 재밌어서 산책하다 가볍게 들러 감상하기 좋을 것 같아요.
캐주얼하게 준비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나도 이랬지, 너도 그랬니 하면서 있는 그대로 편하게 봐주면 좋겠어요. 있는 그대로가 제일 가치 있는 법이니까요.
그게 또 일상이기도 하고요.
맞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