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트룸에서 진행하는 몰입형 전시로 찾아온 데이비드 호크니를 새롭게 바라보는 법.
온 벽면에 그림을 확대해서 영사하고 음악이 함께 나오는 ‘몰입형 전시’가 유행한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프랑스 레보드프로방스 지역의 버려진 채석장을 재구성하여 2013년 모네 전시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 프로젝트는 제주 ‘빛의 벙커’를 포함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여러 비슷한 유형의 비즈니스를 태동시켰다. 반 고흐, 클림트, 피카소, 샤갈, 달리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명 작가 대부분이 이 프로젝트의 테마가 되었고, 일부 어설픈 몰입형 전시장은 도리어 회화의 감동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비판마저 있는 시점에 데이비드 호크니의 새로운 몰입형 전시가 런던 라이트룸 Light Room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Justin Sutcliffe
호크니라니! 이 프로젝트에 딱 맞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의 작품이 아무런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물감으로 그려진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느낌을 충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대형 풍경화들이다. 그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 그 기억과 감정을 화면에 옮겨 담는다. 한 각도에서 본 풍경을 원근법을 활용하여 그린 서양 고전 회화의 방식을 버리고, 마치 피카소가 큐비즘을 창안하며 그렸던 것처럼 이쪽에서 본 장면과 저쪽에서 본 장면을 하나에 섞어버리는 방식이다. 특히 긴 풍경화일수록 작품 앞 1m 정도에서 작품의 좌우를 거닐어보자. 마치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렌티큘러처럼, 내가 이동하는 발걸음에 맞게 그림의 포커스가 새롭게 맞춰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치 동양화의 두루마리 그림처럼 하나의 중심이 중앙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고개를 움직이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함께 유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작품 속에 함께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몰입형 전시는 이와 같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 아닐까 싶다.
© Justin Sutcliffe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건 음향, 조명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더해지면서 오페라 무대 디자인 등 기존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에서는 소개하기 힘든 유형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첨단 테크놀로지로 구성된 새로운 전시장 앞에 선 작가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경이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오페라 무대 디자인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정한 작업의 일부이며, 1987년 제작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찬과 이졸데> 무대 세트를 만들 때 마치 배 위에 있는 것처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버전에서 그 효과가 잘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8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오페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음악도 무척 좋아해서 LA에 머물 당시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말리부 해변에서 출발해 언덕을 오르며 변화하는 풍경을 감상하고, 그동안 차 안에는 바그너 음악이 울려퍼지게 하는 나름의 드라이빙 경험을 개발하여 지인들과 함께 즐기곤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마치 그의 친구가 되어 차를 함께 타고 드라이빙하는 듯한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크게 보인다. 몰입형 전시의 특성상 마치 작가의 등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이 연출되는 셈이다. 호크니 전시는 6월 4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