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이너 장응복의 작업물을 모은 작품집 <이십사절기 빛 그림>이 출간됐다. 그녀는 우주의 생명력과 계절마다 바뀌는 빛을 온몸으로 느꼈고, 그 과정에서 추출한 자연의 색으로 의미와 상징을 담은 패턴, 즉 ‘무늬’를 만들어 책에 새겼다.
<이십사절기 빛 그림>은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각 절기를 다시 세 마디로 쪼개 총 72묶음의 무늬를 실었어요. 각 무늬에는 무엇을 담았나요?
누군가 말하길, 절기는 그저 계절을 세분한 달력이라기보다 마음과 우주의 리듬이라고 했어요. 절기의 리듬, 계절마다 발견되는 패턴, 자연과 우리 생활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4절기 자연이 빚은 색의 조화를 색상표에 기록하고 어떤 것에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절기마다 세 마디 질감으로 나누어 기록했어요. 각 절기의 마디에서 자연을 만났을 때 상상한 것과 감각을 연상하게 하는 ‘뜻 그림’을 만들어 만물의 기운을 무늬에 담아봤습니다.
실제로 무늬를 보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겼다는 감상보다 자연 속에 있을 때의 감각이 느껴지는 듯했어요. 하나의 무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책에 담은 무늬들은 일부 색상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자연에서 얻은 천부적인 아름다움의 발굴이었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자연은 물론 여행을 통한 풍경이나 전시, 책, 이야기 등을 아카이빙하고 채택된 모티프를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 안에서 다채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했어요. 무엇보다 무늬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생활에 적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작업 과정입니다.
자연 속을 거닐며 체득한 수많은 색을 색상표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이 책에 수록된 72개의 색상표는 오랫동안 자연에서 채취했고, 그 색상값은 같은 절기에도 장소와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한 사람의 기운에 따라 다르게 반향했어요. 농사를 통해 절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직접적인 아카이빙보다는 좀 더 심층적인 교감에 집중했어요.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은 여리고 섬세한 감성도 있지만, 거칠고 과격하며 파괴적인 것도 있죠.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식이죠. 그 조화와 부조화의 섭리 속에서 아름다움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저의 디자인에도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디자인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막연히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계절의 기운을 세우고 그로부터 영감받은 무늬의 상징적인 의미와 빛깔, 질감을 조화롭게 공간에 담아 보여주기도 하면서 우리 생활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오길 바랄 뿐이죠. 이 책을 통해 관련 학업을 하는 학생이나 디자인 관련자에겐 자신의 고유한 취향을 키워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이나, 아끼는 절기나 무늬가 있다면요?
사소하고 하찮은 미물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컸어요. 봄에 싹이 트고, 연두색 잎이 덤불을 이루고, 한여름 꽃을 피우고, 가을 들녘에 수많은 씨를 뿌리고, 누렇게 말라 가시만 남아도 겨울에 눈이 내리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줬죠. 첫 서리가 내리고 땅에 오른 초록 잎이, 그 단풍이 설얼어 잎의 가장자리에 서리가 미세한 톱니를 그려낼 때, 그 작은 아름다움에 새벽 산책길 걸음을 멈추곤 했어요.
문의: 안그라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