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조형과 자연의 빛을 재료로 설계하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50년 넘는 그의 건축 인생을 집대성한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이 그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서 열린다.
뮤지엄 산 입구에 영구 설치된 안도 타다오의 청사과 ‘청춘’.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사회를 염원하는 그의 마음이 담겼다.
제아무리 건축에 문외한이더라도 안도 타다오 Ando Tadao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올해로 만 82세를 맞이한 그의 명성만큼이나 그가 걸어온 발자취 또한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의 첫 직업은 프로복서였다. 소위 ‘노가다’를 뛰다 건축 세계를 맛본 그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친구들의 교과서를 빌려 읽으며 밤새 건축을 독학했다. 틀에 갇히지 않은 그의 건축물은 건축 세계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 건축이 간과하고 있던 기 氣의 개념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장식성과 차별화되는 간결하고 추상적인 조형미, 노출 콘크리트라는 삭막한 재료의 시적 승화 등이 그 이유. 1995년에는 무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가 그의 창의성을 인정하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는 단게 겐조(1987년)와 마키 후미히코(1993년)에 이은 세 번째 수상자였는데, 40여 명에 달하는 역대 프리츠커 상 수상자 가운데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업적이 새삼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후 그는 예일, 콜롬비아, 하버드, 도쿄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전시 오프닝차 방한한 안도 타다오.
2013년 강원도 원주 산중에 개관한 뮤지엄 산. 이번 전시는 그가 설계한 건물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라 더욱 뜻깊다.
국내에서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민 미술관(제주, 2008), 본태 뮤지엄(제주, 2012), 마음의 교회(여주, 2011~15) 그리고 작년 문을 연 LG아트센터(서울, 2022)까지 약 아홉 곳에 달한다. 2013년 해발 275m, 약 2만2,000평 규모의 강원도 원주 산자락에 문을 연 뮤지엄 산도 그중 하나. “14년 전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소개로 처음 이 부지를 봤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이 첩첩산중에 미술관을 짓겠다니, 다소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게 만들어달라는 그 부탁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안도 타다오는 산 정상 특유의 뛰어난 조망과 잠재력을 살려 약 700m 길이에 달하는 부지를 가득 채우는 환경 일체형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 결과 뮤지엄 산은 전국 각지에서 연20만 명이 찾아오는 원주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뮤지엄 산 부지 한쪽에 증축한 명상관. 오는 5월에 파빌리온 ‘빛의 공간’을 새롭게 오픈할 예정이다.
안도 타다오의 원본 드로잉과 스케치, 영상, 모형 등 약 2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뮤지엄 산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7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도쿄, 파리, 밀라노, 상하이, 베이징, 대만에 이은 일곱 번째 국제 순회전이지만, 그가 설계한 공간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전시 제목 ‘청춘’에는 삶의 하루하루가 건축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평소 신념이 담겼다.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되었으며 원본 드로잉, 스케치, 영상, 모형 등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를 망라하는 대표작 25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1부 ‘공간의 원형’은 빛과 기하학이라는 근원적 주제하에 1969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안도의 건축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2부 ‘풍경의 창조’에서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독창적 건축 방식으로 풀어내는 그의 공공 건축물을 만나볼 차례. 나카노시마 어린이책 숲 도서관,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등이 대표적 예로 지역의 풍경을 창조하는 공동체 개념의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3부 ‘도시에 대한 도전’은 말 그대로 세계의 도시에서 꽃피운 그의 도전 정신이 녹아 있는 공간이다. 맨해튼 펜트하우스 III, 퓰리처 미술관, 상하이 폴리 대극장 등에서는 산업화로 삭막해진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공간성을 느낄 수 있을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4부 ‘역사와의 대화’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을 보수하고 재생하는 그의 독특한 접근법에 한발 다가간다. 특히 2020년 준공한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 Bourse de Commerce 등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를 역사의 일부로 여기고 존중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약 30년에 걸쳐 진행 중인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키는 문화재생 프로젝트로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밸리 갤러리 등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안도의 건축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스케치.
다가올 5월에는 뮤지엄 산의 조각정원에 ‘빛의 공간’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파빌리온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을 하나 꼽자면 미술관 입구에 영구 설치된 초록빛 사과다. 일본의 효고현립미술관과 나카노시마 어린이책 숲 도서관에 이어 세 번째로 제작된 대규모 야외 조각 ‘청춘’으로,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떠한 마음가짐’이라는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의 시에서 영감받아 안도 타다오가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청사과처럼 푸르고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사회를 염원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것. “저는 폐암에 걸려 십이지장, 췌장 등 다섯 개의 장기를 적출했지만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버텨왔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제가 하나의 희망이자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82살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자료제공: 뮤지엄 산 참고도서 <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들(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