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의 파사드가 새로운 옷을 입었다. 40여 년간 수많은 명사의 사적인 공간을 기록해온 프랑스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 Visite Privée>다. 그와 나눈 대화의 기록.
이탈리아 현대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카를로 몰리노의 저택. © piknic
프랑스어로 사적인 방문, 은밀한 방문을 뜻하는 비지트 프리베. 이브 생 로랑, 루이스 바라간, 아일린 그레이, 데이비드 호크니, 코코 샤넬, 폴 세잔, 드리스 반 노튼의 저택과 아틀리에 등 쟁쟁한 예술가의 사적인 공간을 구경하다 보면 전시 이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기록한 공간의 명성에 비하면, 프랑수아 알라르 François Halard라는 이름은 다소 낯섦에 가깝다. 1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잡지사의 포토그래퍼로 시작해 <보그>, <베니티 페어> 등을 거친 그는 40여 년간 자신의 삶과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 작가 등의 사적인 공간을 촬영해왔다. 그의 시선은 루이 비통과 함께 펴낸 <패션 아이-그리스>를 비롯한 10여 권의 단행본에 차곡차곡 담겼으며, 2021년에는 팬데믹으로 자택에서 격리했던 56일의 시간을 폴라로이드로 기록한 <아를에서의 56일>을 출간했다. 패션, 인물, 공간 등 사진의 피사체로 그를 규정하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규정되길 바란다는 프랑수아 알라르. 그의 사진에서는 자유로움, 사랑, 욕망, 장대함, 그리움, 황량함 등 다양한 감정과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시 오프닝차 방한한 프랑수아 알라르.
오랜 시간 다양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에 변한 것이 있나요?
물론 미묘한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15살에 찍은 사진과 지금의 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사진에 더 인간적인 면모와 감수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천착하고 고민해왔습니다.
수많은 장면 가운데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언제인가요?
빛 외에 다른 규칙은 전혀 없습니다. 그 빛이 자연광일 수도 있고, 제가 설치한 조명일 수도 있지만 결국 빛을 따라갑니다. 모든 촬영 과정은 직관의 연속입니다. 제가 호기심을 느끼고 영감을 주는지가 중요한데요.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이끌림과 충동에 의해 포착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늘 명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예술가의 집을 촬영했죠. 특히 기억에 남는 집이 있다면요?
사이 톰블리 Cy Twombly의 집을 꼽고 싶습니다. 18살에 <보그> 미국판에서 그 집 사진을 처음 봤는데, 엄청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전의 레퍼런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데, 언젠가 나도 이런 영감을 주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20여 년 전 그의 집을 촬영차 방문했을 때 받은 레몬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요. 화석처럼 변해버린 그 레몬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저를 그때로 이끕니다.
이탈리아 샤르데냐 섬에 자리한 라 쿠폴라.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배우 모니카 비티와의 사랑의 은신처로 계획했지만 둘의 관계가 끝나 폐허로 버려진 공간이다.
새로운 파사드로 갈아입은 피크닉의 모습. 전시는 7월 30일까지 열린다. © piknic
여러 사진 가운데서도 록다운 기간에 작가의 집을 찍은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걸 엮어 <아를에서의 56일>을 펴내기도 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 나라에서 5주 이상을 머물러본 경험이 없을 만큼 많은 여행을 다녔습니다. 처음으로 나를 둘러싼 집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지낸 곳이 바로 아를의 집이었습니다. 집에 머무르는 즐거움을 느꼈는데요. 당시 런던의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는 친구가 하루에 한 장씩 집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오늘의 폴라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판매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작품이 판매되면 제가 직접 우체국에 가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부치곤 했는데, 그게 모여 책이 됐습니다.
수집가로도 불릴 만큼 도자기,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오브제를 모은다고요.
저는 어린 시절을 집에서 외롭게 보냈기 때문에, 오브제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오브제는 외부 세계로부터 저를 보호해주는 상징적인 장치이자 함께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것들은 저에게 영감을 주는 레퍼런스입니다. 21살 때 이브 생 로랑의 자택을 찍는 행운이 있었는데요,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돈보다는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멋진 오브제들로 둘러싸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요.
다른 식으로 바라보는 눈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 건가요?
단순히 물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리한 심미성을 찾아내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렌즈를 통해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기회가 많았는데요. 제가 해나가야 할 역할은 더 많은 이들이 심미성을 향유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영혼의 반창고이기 때문이죠. 제가 지속적으로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폴 세잔이 생전 즐겨 사용했던 화구와 정물이 그대로 보존된 프랑스 아틀리에. © piknic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어떤 사진을 선별했나요?
이번 전시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저는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가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전시를 기획하는 이도 분명 그럴 겁니다(웃음). 피크닉 piknic 쪽에 많은 권한을 넘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냥 지금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떠올리기보다는 앞으로 찍을 사진을 생각하는 게 더 즐겁습니다.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야 하는 거죠.
그럼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집에 있을지, 여행을 갈지, 스튜디오에서 작업할지 고민하는데요. 제 삶의 원동력이 이 질문의 답이 되겠네요.
피크닉을 찾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여행은 바깥세상이 될 수도, 내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천박한 문화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는 영혼이 깃든 장소가 점점 희소해지고 있어요. 제가 기록한 장소에서 느꼈던 영감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요. 저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헬레니즘 양식이 그대로 살아 있는 저택이자 박물관인 빌라 케릴로스. © piknic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아일린 그레이의 주택. © pik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