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덴마크 디자인 페스티벌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이 지난 6월 7일부터 9일까지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한 만큼 그간 보지 못한 파격적인 행보가 엿보였다. 패션업계의 빅 브랜드들이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젊어지고 있는 것처럼 고유의 헤리티지를 담은 북유럽 태생의 리빙 브랜드 또한 젊고 새로워진 모습. 그동안 고집해온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발한 디자인을 선보이거나 이색적인 협업 프로젝트도 서슴지 않은 올해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았다.
A Journey to Fritz Hansen
프리츠한센은 코펜하겐 중심부에 자리한 샬로텐보그 Charlottenborg에서 예술과 디자인 간 불변의 관계를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였다. 형태와 색, 빛 그리고 재료적 특성이 드러난 설치작품을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상징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의 여정을 제시한 것. 특히 이번 전시는 1753년부터 덴마크 디자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교육 받았던 장소이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본거지인 샬로텐보그에서 펼쳐져 특별함을 더했다. 웅장한 연회장을 비롯해 네 개의 방에는 특수 제작한 디스플레이와 큐빅 구조물 사이로 프리츠한센의 아이코닉한 PK 시리즈를 줄에 매달아 전시했다. 마치 공중제비하듯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었고, 가구의 뒷면 등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구비의 여름
코펜하겐에 본사를 둔 리빙 브랜드 구비와 뉴욕 기반의 남성복 브랜드 노아 Noah가 패션과 디자인을 결합한 창의적인 협업을 선보였다. 해안 라이프에서 영감을 얻어 한껏 싱그러움을 머금은 이번 프로젝트는 구비의 아이코닉한 제품인 MR01 아웃도어 라운지 체어에 새로운 컬러를 입혔다. 스포티한 노란색과 밝고 선명한 로열 블루, 클래식 네이비, 절제된 모던 그레이 컬러를 선택해 신선하고도 새로운 컬러 팔레트가 눈길을 끈다. 여기에 오버사이즈 비치 타월, 방수모, 수영 반바지, 토트백, 보트넥 스웨터 등 여름 필수품 5종의 캡슐 컬렉션도 함께 공개했다.
캐릭터를 입은 루이스폴센
투명한 뿔이 달린 루이스폴센 조명이라니. 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를 닮은 듯한 모습의 조명은 루이스폴센이 유리공예가 홈 인 헤벤 Home in Heven과 협업한 작품이다. 루이스폴센은 이번 협업을 통해 아이코닉한 페일 로즈 컬렉션에 독특한 예술적 해석을 적용해 헤리티지와 창의성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언제나 재치 넘치는 유머 감각과 대담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즐기는 홈 인 헤벤은 뿔, 소용돌이, 촉수 등 유리 블로잉 공예 기법으로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가늘고도 뾰족한 형태를 장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각각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입은 7종의 조명은 전시 기간 동안 루이스폴센의 쇼룸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며, 이후 경매를 통해 작품을 판매한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Icons of Verner Panton
베르판은 이번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 기간 동안 베르너 팬톤 Verner Panton의 아이코닉한 작품을 축하하는 기념 전시를 열었다. 물결치는 곡선의 클로버리프 Cloverleaf 소파, 풍부한 형태감과 찬란한 빛을 내는 글로브 Globe 조명,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펀 Fun 조명, 유려한 곡선의 시스템 1-2-3 라운지 체어 등으로 전시 공간을 채워 팬톤을 상징하는 가구를 다시 한번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던 가구의 모습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희미하게 포착된 캠페인 사진에서 그간 봐왔던 팬톤 가구와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감상할 수 있었다.
Vitra Meets Royal Copenhagen
덴마크 왕실 도자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이 스위스 디자인 브랜드 비트라와 함께 전시를 열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로얄코펜하겐과 비트라가 만나 아름다운 아침 식사 테이블 신을 연출한 것. 이 두 브랜드는 리빙과 테이블웨어라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집과 식탁을 위한 예술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공통된 철학을 지니고 있어 어쩌면 이들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비트라의 다이닝 체어와 사라 에스푀트 Sarah Espeute의 자수가 담긴 리넨 테이블 러너, 로얄코펜하겐의 다채로운 식기 컬렉션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은 아침 식사 풍경이 펼쳐졌다.
Playful Design
올해 헤이는 그간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온 디자이너 뮬러 반 세베렌 Muller van Severen과 또 한번 손을 잡았다.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아온 기존의 아크 Arc 컬렉션에 이어 아크 트롤리와 아크 미러를 새롭게 추가한 것. 어릴 적 한 번쯤 종이 접기를 하면서 사용해본 적 있는 물결무늬의 핑킹 가위로 오려낸 듯한 반달 형태의 에지 실루엣이 특징이다. 유쾌한 디자인에 레드, 그린, 아이보리, 네이비 등 다채로운 색상을 입은 이번 신제품은 공간에 키치한 분위기를 선사할 것이다.
Under the Roof
매년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 받은 듯 친근하고 안락한분위기의 전시를 선보이는 앤트레디션이 ‘하나의 지붕 아래(Under One Roof)’라는 주제로 전 방위에서 브랜드 감각을 탐색할 수 있는 몰입형 전시를 열었다. 스페인 출신의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새로운 컬렉션을 비롯해 디자인 스튜디오 스페이스 코펜하겐, 그래픽 디자인 듀오 올 더 파리 All the Paris, 히 웰링 Hee Welling과 안데르센&볼 Andersen&Voll이 디자인한 제품 등 다양한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푸른색 커튼을 배경으로 하이메 아욘의 재치 넘치는 대형 캐릭터 설치작품이 어우러진 방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봄을 입은 휴지통
1939년, 금속공인 홀거 닐슨의 아내 마리 악셀센이 자신의 미용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지통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빕 Vipp 휴지통. 덴마크어로 ‘기울어진’을 뜻하는 빕이라는 이름이 지금의 라이프스타일 브래드 빕의 시작이다. 올해 빕은 가장 상징적인 제품인 휴지통에 경의를 표하며 그 시작을 기념하기 위한 설치형 전시를 선보였다. 아내 악셀센이 당시 가장 좋아했던 파스텔 옐로를 입은 새로운 버전을 출시한 것. 한껏 산뜻해진 컬러를 입은 뉴 빕 휴지통은 봄에 핀 꽃처럼 화사하다.
프라마의 채소 시장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 전시 기간 동안 가장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부스는 단연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프라마가 아닐까. 자연과 음식 문화의 연관성을 주제로 한 <일 메르카토 IL Mercato> 전시는 지역 농산물과 시장을 연결함으로써 현재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자 마련한 프로젝트다. 프라마의 쇼룸은 코펜하겐의 파머스 마켓인 그뢴드 마르케드 Grønt Marked와 협업해 당근, 치즈, 버섯과 같은 친숙한 식재료를 이용해 꾸몄다. 또한 이를 실제 판매함으로써 전시가 끝나고 나서도 어떠한 재료도 낭비되거나 버려지지 않았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