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보석을 발굴하고 방치된 장소를 특별한 쇼케이스로 변화시키며 밀란디자인위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전시로 우뚝 선 디자인 플랫폼 알코바. 디자인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조셉 그리마와 발렌티나 치우피를 인터뷰했다.
알코바의 설립자이자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다. <메종>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
조셉 그리마 Joseph Grima(이하 조셉) 건축가이자 에디터, 큐레이터다. 현재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인 에인트호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며, 건축과 연구 기반의 스튜디오 스페이스 캐비어 Space Caviar를 운영하고 있다. 발렌티나 치우피 Valentina Ciuffi(이하 발렌티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이자 큐레이터로 밀라노에 위치한 스튜디오 베데트 Studio Vedèt를 설립했다. 그래픽디자인과 브랜딩, 큐레이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경험이 있으며 잡지 <아비타레 Abitare> 에디터로도 일하고 있다. 조셉과 함께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는 새롭고도 독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인 플랫폼 알코바를 설립했다.
알코바의 시작이 궁금하다.
조셉 밀란디자인위크라는 큰 행사의 틀에서 벗어나 디자이너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공통된 비전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젊고 급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재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해 그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독립 디자인 박람회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발렌티나 전형적인 디자인 박람회에서 벗어나 밀라노에 방치되고 잊혀진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장소를 전시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관람객들이 보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디자인 산업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발렌티나 알코바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크게 포괄성, 탐구성, 비판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 미학과 상업적 실행 가능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대화를 유발하며 시급한 사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알코바를 통해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고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와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셉 단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을 제안하고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이너들이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재료와 과정을 실험하고 디자인에 대한 대안적인 사고방식을 탐구하도록 장려한다. 우리는 새로운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미래를 형성하는 데 열정적인 디자이너들의 공동체를 육성하고 싶었다.
매년 방치된 장소를 택하는 이유가 있나?
발렌티나 방치되거나 버려진 건물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공간이 지닌 잠재력과 그곳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건물들을 역사와 의미 있는 미개발 자원으로 보고 있으며, 활기찬 문화적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간의 쓰임새를 변경함으로써 새로운 건축의 필요성에서 벗어나고 자원을 최적화하는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다.
장소를 선택할 때 특별히 고려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발렌티나 우선 건축적, 역사적으로 의미가 강한 장소여야 할 것.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야 하며, 전시된 디자인에 뚜렷한 배경을 제공할 수 있는 건물에 끌린다. 또한 일반적으로 디자인 이벤트와 관련되지 않은 위치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조셉 접근성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다. 관람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알코바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향후 지역의 발전이나 재생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선택된 장소와 전시된 디자인 사이에 공생 관계를 만드는 것이며, 여기서 공간은 전시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 우리는 전시장의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여 대화를 유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촉발하는 역동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올해는 오래된 도축장에서 전시가 펼쳐졌다.
조셉 거대한 안뜰과 커다란 입구, 금속으로 뒤덮인 긴 지붕에서 웅장함이 느껴졌다. 과거 밀라노 산업의 본질을 포착한 듯했다. 발렌티나 15헥타르에 달하는 이곳은 한때 분주한 산업과 중요한 물류 중심지다. 지금은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가고 과거의 잔재가 스며 있는 도시 역사의 유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산업적 미학과 현재 버려진 상태에서 오는 대조를 통해 매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조셉 현존하는 공간을 수용하고 자연이 그 방향을 따르도록 하는 알코바의 철학과도 일치했다. 바닥과 천장을 따라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가 시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이를 아름다움과 새로운 가능성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는 무엇이었나?
발렌티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유지하면서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유명한 생물 디자인 연구소인 아틀리에 루마 Atelier Luma의 작품을 선보다. 아틀리에 루마는 5개의 대형 설치물과 실험물을 포함한 전시를 열었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조류, 볏짚, 소금, 지물과 같은 농업 부산물을 놀라운 설비를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이다. 대개 간과되거나 버려지는 재료들이 매혹적인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외에도 건축자재, 직물, 야자나무 피복, 심지어 식물성 신발을 사용해 만든 것도 있었으며 대체 재료의
가능성을 톡톡히 보여줬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자면?
발렌티나 단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젤라토를 고르라고 하는 것과 같다(웃음). 하나만 꼽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작은 비밀을 하나 말해주겠다. 때때로 가장 선망하는 예술가나 작품은 모든 관심을 끌거나 인기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다. 구석에 숨겨둔 보석을 발견하는 호기심 많은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뜻밖의 생각이나 더욱 의미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밀라노에서 찾기 힘든 주차장을 찾는 것과 같이 희귀하고 소중한 발견은 늘 조용히 숨어 있기 마련이다.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디자인 현상이 있다면?
발렌티나 기술과 자연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예술가들의 등장이다. 디지털 영역과 자연 세계를 혼합한 이 매력은 ‘증강된 자연 Augmented Nature’이라는 제목의 알코바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섹션은 자연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의 영감과 재료가 되어 새로운 경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조셉 예술가들이 유기적인 질감과 식물 기반의 재료, 심지어 살아 있는 유기체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새머 셀박 Samer Selbak의 램프와 스크린은 팔레스타인 호박의 섬유로 복잡하게 짜여 있으며 디디 NG 윙 인 Didi NG Wing Yin의 조각과 가구는 실제 나무의 질감을 따라 조각되었다. 에스튜디오 레인 Estudio Rain은 피마자 기름으로 만든 식물성 기름 수지를 사용했다. 이러한 시도는 기술을 유기적인 형태로 완벽하게 통합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알코바의 향후 계획은?
조셉 알코바를 통해 다가오는 한 해에 대한 우리의 계획을 담아낼 수 있어 기쁘다. 전무후무한 행보를 시작함에 따라 우리의 비전은 밀라노를 넘어 확장되어 있으며 새로운 디자인 산업의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오는 12월에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문화적 경관 속에서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우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마이애미로 모험을 떠나는 동안에도 밀라노의 뿌리를 키우는 데 전념할 계획이다. 탐험의 힘과 예상치 못한 만남의 마법을 믿으며 내년에는 더욱 많은 한국 참가자들과 관람객들을 환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