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미놀리티가 그린 세상은 사회의 규범, 감시와 통제로 지친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다. 단조로운 일상에 활기를 더하는 그녀의 작품 속으로 빠져보자.
이제 막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등 색깔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는지 기억하는가? 혹은 유년 시절 촬영한 사진에서 자신이 입은 옷은 무슨 색이었는지? 열에 아홉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이다. 우리는 파란색과 분홍색을 좋아한 것일까,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르헨티나 작가 애드 미놀리티 Ad MINOLITI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작업으로 이야기한다. 그녀는 현대 젠더리스 시대를 대표하는 논바이너리 작가로, 특히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작품과 문화적 규범을 파괴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논바이너리는 남성과 여성으로 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성별에서 벗어난 걸 말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미놀리티는 어린이 문학, 장난감, 만화에서 사용되는 성 상징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어른이 만든 창작물, 어른이란 이유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어덜티즘 문제를 바로잡고자 한다. 남자아이들이 파란색 로봇을, 여자아이들이 분홍색 인형을 좋아하는 건 사회가 만든 결과란 사실을 꼬집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외에도 회화, 설치,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인종, 동물 권리, 사이보그, 페미니즘 등 첨예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개인전 <Geometries of the Forest; 숲의 기하학>은 숲의 생태계와 아동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신작 회화 15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버섯들이 자라는 숲속 또는 동굴을 연상시킨다. 전시장에는 대조적 요소인 파란색과 분홍색, 요정과 고블린 등 상상의 존재와 여러 동물이 함께 뛰논다. 그녀가 기하학적 형태와 동화적인 색채로 그린 세계는 모든 존재를 수용하는 포용의 공간이다. 구분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성 정체성은 흐려졌기 때문에 단순하고 추상적인 세계다.
‘MAGIC dust’에서 애벌레는 버섯 갓 위에 앉아 있는데, 타원형의 입에서 파충류의 노란 혓바닥 혹은 물담배처럼 보이는 것이 튀어나와 있다. 캔버스 왼쪽의 파란 버섯처럼 보이는 것이 애벌레 몸통이며, 그 오른쪽에는 반전된 이미지가 노란색과 흰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한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Mariposa’에서는 한 마리 나비가 등장한다. 나비의 날개에서 브래들리 인형의 특징인 순정 만화 캐릭터 같은 눈을 찾아볼 수 있다. 크고 동그란 눈에 속눈썹은 길고 뚜렷하며, 홍채 안이 별로 가득해 반짝이는 그 눈 말이다. 그녀가 그린 추상 세계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선명한 두 눈. 나아지고 있다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잔존하는 여성의 규범과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존속과 폐지 등 정치, 사회, 문화, 예술에서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갈라치는 흑백 세상에 질렸다면, 회색 지대를 찾는 애드 미놀리티의 작품을 보자. 다채로운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편견 없는 생명체가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그녀가 그린 회색의 세상은 그 어떤 곳보다 찬란하다. 전시는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페레스프로젝트에서 8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