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에 담은 계절

옻칠에 담은 계절

옻칠에 담은 계절

박수이 작가는 농부가 정성을 다해 밭을 일구듯 흙을 덮고 갈아내고 칠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녀의 작품에 변화하는 계절감이 담겨 있는 이유다.

 
20년간 옻칠의 길을 걷고 있는 박수이 옻칠 공예가.
  3년 전,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떠난 제주 한달살이에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덜컥 집을 샀다. “현재 방배동과 제주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천천히 제주로 거처를 옮길 준비를 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서울에서의 일이 너무 많아 아직까지는 겨우 한 달에 한번 가는 정도네요.” 아쉬움을 토로하며 박수이 작가가 입을 뗐다.  
오래된 빌라가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멋스러운 방배동 작업실.
  방배동에 뿌리 내린 지는 올해로 10년째. 그녀의 옻칠 작품을 비롯해 도예, 금속, 섬유 등의 공예품을 판매하는 쇼룸 겸 공방 수이57 아뜰리에와 바로 옆 건물 2층에 자리한 아늑한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칠에 흙을 섞어 자연스러운 질감을 내거나 거친 붓과 주걱 등으로 결을 살린 바스켓 시리즈.
  박수이 작가가 옻칠 공예가로 이름을 알게 된 계기는 삼베 위에 옻칠을 겹겹이 입혀 만든 꽃 모양의 그릇이다. 봄에 활짝 핀 꽃처럼 서정적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이 꽃볼이 그녀의 시그니처 작품. “단단해서 나무라고 착각하는 분도 있지만 천 소재로 만들었어요. 아래 굽만 나무 소재예요. 여러 겹의 천을 쌓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요. 그리고 원형의 천을 꽃 모양으로 조각한 뒤 그 위에 흙을 발라 결을 내고, 마지막으로 금이나 자개 장식을 입혀 마무리해요.” 박수이 작가가 설명했다.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식기의 특성상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형태가 무얼까 고민했고, 꽃을 떠올렸다. 꽃에서 파생되어 잎사귀 모양의 접시를 비롯해 다양한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은 기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유물 중 꽃 모양으로 만든 화형 접시가 있어요. 그것을 모티프로 식기 시리즈를 구상해 나갔어요. 유물이 흑칠과 주칠이 주를 이루는 단순한 형태였다면 저는 좀 더 다양한 색감과 질감에 중점을 뒀어요.”  
제주의 돌담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모빌 시리즈.
  최근 3년간 제주를 오가며 새롭게 제작한 바스켓과 모빌 시리즈는 제주의 밭과 계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것이다. 박수이 작가는 흙을 바르고 사포로 수없이 갈아내는 옻칠 공예의 과정이 꼭 밭을 가는 것과 닮았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밭의 계절감을 작품에 표현했다.  
다양한 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는 수이57 아뜰리에.
  “밭은 흙으로 덮여 있을 때도 있고, 작은 새싹이 자라기도 하고 잡초를 뽑아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렇게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밭의 모습이 좋았어요.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3월과 4월 사이의 밭’, ‘5월과 6월 사이의 밭’ 이런 식이에요.” 그렇게 작가는 작품을 작은 밭이라고 생각하고 씨앗을 심듯 자개나 금 장식을 입혔다. 선들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특히 잘 어울리는 모빌은 제주의 돌담을 모티프로 제작한 것이다.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나온 돌로 담을 쌓는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밑작업에서 버려진 재료를 오리고 이어 붙여 모빌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금속, 철망, 실, 순금 등 쓰고 남은 자투리 재료에 칠을 하고 장식을 입혔다. 그 덕에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와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는 수이57 아뜰리에.
  “사람들이 인식하기에 옻칠이라는 게 낯선 재료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게 있어 옻칠은 작가만의 색채를 내기에 너무 좋은 재료 같아요.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경험을 매일 하거든요. 무형의 칠이 천이라는 소재를 만나 단단해진다는 특성도 재미있고 또 충분히 회화적으로도 활용 가능하거든요. 작가 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재료로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20년간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박수이 작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하는 옻칠의 특성과도 닮아 있다.  

SPECIAL GIFT

 

  박수이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키고 피부의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CREDIT
에디터

photographer 이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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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의 연대와 미래

지속가능성의 연대와 미래

지속가능성의 연대와 미래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 디자이너 유도헌에게 지속가능성이란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2022년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최종 위너에 선정됐던 스티로폼 화병 작품.
 
2022년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최종 위너에 선정됐던 스티로폼 화병 작품.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올해 초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주말에는 커뮤니티와 개인 작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와 생각을 쌓아가고 있다.  

2022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에서 최종 위너 4인에 선정됐다. 당시 버려진 스티로폼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조금은 가벼운 관심에서 시작했다. 뉴스에서 추석 명절 선물로 사용된 스티로폼 박스들이 쌓여 있는 장면을 봤는데 꽤나 충격적이었다. 멀쩡하고 깨끗한 박스들이 사람 키보다 높이 쌓여 있는데 마치 절대 녹지 않을 설산 같았달까. 항상 새로운 물건을 기획하고 만드는 디자인 산업에 있는 입장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조금씩 스티로폼 소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명절 선물로 산처럼 쌓인 스티로폼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
 

당시 처음 만들었던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

처음에는 소재적인 측면에 집중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스티로폼을 아세톤에 융해하게 되면 스티로폼의 원료인 폴리스티렌이 점액질 형태로 나오는데, 이는 다양한 제품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형태적으로 자유로운 점액질의 플라스틱을 일정한 형태의 틀에서 건조시키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질감의 화병을 만들었다.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손으로 가공하는 제품이다 보니 강도가 조금 떨어지는 특성이 있어 처음에는 오브제 성격이 강한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유도헌 작가.
사진 제공: 렉서스코리아  

가구처럼 보이는 작업도 있던데?

가구보다는 트레이에 가까운 기능을 하는 작품이다. 스티로폼은 일반적으로 포장재로 완충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특징적인 구조와 형태를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다양한 형태의 스티로폼을 조합해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었고, 겉면에 점액질을 발라 굳히는 방식으로 작업해 새로운 질감의 플라스틱 트레이를 만들 수 있었다.  
스티로폼 포장재의 구조적인 디자인을 살린 트레이 작품.
 

작품 제작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당시에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학교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학교를 폐쇄하는 바람에 추운 겨울에 보일러도 안 나오는 창고에서 떨면서 작업했다. 또 스티로폼을 구하려고 폐기물 처리장을 뒤지는 등 고생한 기억이 많다. 관련 자료가 많이 없다보니 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실험하다 보니 순간순간이 도전이었던 것 같다.  

평소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구상 단계에서 가볍게 스케치하듯 최종 단계에서의 모습을 상상하고 처음의 시드와 과연 같은 맥락과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전시가 될 수 있고 사람들의 일상에 담긴 모습, 촬영된 이미지 등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가볍게 그리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가장 중시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찾는 데 있어 좋은 나침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홈커밍> 전시 모습. © 유도헌
 

작년에는 우주 쓰레기에 대한 담론을 제기한 프로젝트 <홈커밍>에도 참여했다. 어떤 전시였나?

우주 쓰레기 문제를 예측하고 재활용 연구를 진행한 가상 단체의 결과물이라는 컨셉트였다. 사소할 수 있는 우주 쓰레기의 요소에 집중한 전시랄까. 우주에서 역할을 끝내고 지구로 돌아와 재활용된 우주 쓰레기가 그들의 연구 결과물을 통해 우리 일상에 담겼을 때 어떤 모습일지 보여줌으로써, 개인과 우주 쓰레기라는 거대한 아젠다의 간극을 줄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변화의 시작점을 갖자고 제안했다.  
스티로폼을 융해해 만든 폴리스티렌을 스티로폼에 위에 겹겹이 바르는 과정.
 

초기 기획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프로젝트 팀으로 대중에게 우주 쓰레기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와 경각심을 주고자 시작했다. 다양한 범지구적 환경문제 중 우주 쓰레기는 너무나도 거대한 아젠다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지구에서의 쓰레기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구적 문제의 해결과 변화는 개인의 작은 관심이 모여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지속가능함이 갖는 가치를 잘 담아내는 동시에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매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갖더라도 그 디자인이 널리 쓰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퇴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티로폼으로 작업할 때도 의미와 제작 과정과 생각이 모두 좋지만 과연 사람들이 쓰고 싶고 갖고 싶은 물건일까라는 고민이 항상 따랐다. 가치를 품고 있는 것과 가치 있게 쓰이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디자인계의 지속가능성 이슈가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디자인을 통해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은 목소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과 전시를 통해 대중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여러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쓰레기에 대한 담론을 제기했던 <홈커밍>전에서 선보인 실링 스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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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전시

9월의 전시

9월의 전시

대망의 화이트 큐브 서울

 
Marguerite Humeau Study for a Fungus Garden I 2023
  화이트 큐브 서울이 많은 이의 기대 속에 개관전 <영혼의 형상>을 오픈한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세계적인 명성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두 번째 아시아 지점이다. 개관전을 첫 전시로 개최하면서 ‘영혼의 형상’을 주제로 철학과 형이상학, 인간 행동의 동기를 탐구한 아티스트 일곱 명의 작품을 두루 선보인다. 아티스트 라인업 역시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여성 동양화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이진주 작가를 비롯해, 루이스 지오바넬리, 크리스틴 아이 추, 트레이시 에민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현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9월 5일부터 12월 21일까지.

WEB whitecube.com

 

매혹적인, Suprise!

      세계 아트 신을 움직인 거장들과 다채로운 개성의 신진 작가들이 합을 이룬 전시. 서울 삼청동 송원아트센터에서 필립스 옥션과 조안 터커가 공동 기획하고 한화생명이 후원하는 서울 특별전 <잠시 매혹적인 Briefly Gorgeous>이 열린다. 알렉산더 칼더, 데이비드 호크니, 스콧 칸 등 30명 이상의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망라하는 전시는 스펙터클한 장르를 자랑한다. 한국의 이유라, 오세, 김호재와 수잔 첸 등 라이징 스타들도 참여한다.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는 컬렉터와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듯. 9월 1일부터 9일까지.

WEB phillips.com

 

숲을 깨우는 수호자

 

  송은문화재단이 ‘만화경의 방(Kaleidoscope Room)’을 개관하며 핀란드 디자인 회사 아르텍과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를 초청했다.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는 핀란드의 숲을 테마로 대형 사진과 비디오 에세이를 통해 목재와 직물의 촉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몰입형 공간을 선사한다. 알바 알토의 대표작 ‘스툴 60’의 90주년을 기념해 아르텍의 야생 자작나무로 제작한 ‘스툴 60 빌리’도 공개한다. 군데군데 짙은 얼룩, 나무 옹이, 곤충이 남긴 흔적이 드러난 작품은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듯 하나같이 특별하다. 8월 16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WEB songeun.or.kr

 

서울에서 만나는 메리 웨더포드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가 프리즈 서울에 두 번째 참가하며 로스앤젤레스 작가 메리 웨더포드의 회화 작품 10점을 선보인다. 네온 튜브를 캔버스에 부착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작업으로 세계적인 컬렉터와 미술관의 주목을 받아온 메리 웨더포드는 현재 미국 추상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다. 명성 높은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 부스도 주목해야 하지만 해외에서만 만난 메리 웨더포드의 첫 내한 전시에 더욱 기대가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물감의 선명한 채도와 자유로운 흐름을 통해 형태, 색감, 명암을 표현하며 회화의 본질과 그 외연을 모색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9월 6일부터 9일까지.

WEB davidkordanskygallery.com

 

그림 속에서 영그는 우정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갤러리 알부스가 <친구들 Les Amis> 그룹전을 개최한다. 간결하고 위트 있는 드로잉으로 유명한 프랑스 아티스트 장 줄리앙을 비롯해 그의 학창 시절 친구들인 니콜라스 줄리앙, 얀 르 벡, 그웬달 르 벡의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 이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공통된 취향과 관심사, 문학과 영화 등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 공동체다. 친구도 오래 만나면 서로 닮는다더니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삶의 여러 지점을 공유해온 일상이 작품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장 줄리앙의 신작 페인팅, 니콜라스 줄리앙의 새 조각 작품과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얀 르 벡과 그웬달 르 벡의 작품을 폭넓게 다룬다. 전시는 8월 26일부터 11월 26일까지.

WEB albus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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