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연건동 토토빌딩에서 10년을 보낸 티더블유엘(TWL)이 용산구 녹사평 언덕배기에 새 둥지를 틀었다. 3월 정식 오픈을 앞둔 티더블유엘의 김희선, 길우경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건동에서 10년을 넘게 보내셨어요. 녹사평으로 이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러게요. 벌써 10년이 흘렀어요. 인원이 늘어나면서 매장 2층에 있던 사무실이 비좁아져서 일부 인원이 약수동에 있는 공유 오피스로 자리를 옮겼어요. 불편한 점이 많아 새로운 업무 공간을 물색하다 녹사평의 한 건물을 소개받았습니다. 1년 여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해 12월 사무실을 이전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보다 먼저 리모델링을 시작한 사무실 바로 옆 건물의 공사가 끝났지요. 공사 가림막을 뜯었는데, 여기라면 연건동 티더블유엘과 한남동 핸들위드케어를 모두 옮겨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 결정을 지난해 9월 하고서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매장도 함께 이전하게 된 거네요.
보통은 그 반대로 움직일 것 같은데, 사무실 이전은 훨씬 오래 고민하다 옮기고 매장은 무슨 계시를 받은 것처럼 여기다 싶어 정하게 됐어요. 우리 일하는 곳과 고객 만나는 장소가 나란히 사이 좋게 서서 조금 다른 남산 뷰를 공유하는 모습이 참 자연스러웠어요. 매장 이전을 결심하는 순간 뒤따를 고생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요.
공간 디자인은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맡아주셨는데요.
업무 공간을 먼저 의뢰해 진행하고 있었는데, 매장 이전을 급하게 결정하면서도 믿는 구석이 바로 임태희 소장님이었어요. 외관, 구조, 기본 마감은 건드리지 않고 매장 운영에 필요한 집기와 동선만 세팅하기로 했죠. 늘 그렇듯 범위가 늘어나고 설계와 공사 마감까지 끝내는 데 2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없어 바쁜 연말을 보냈습니다.
층마다 각기 다른 인상을 받았어요.
층당 면적이 크지 않지만 4개로 나뉜 수직 공간이라 우선 각 층의 역할과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고민했어요. 결과적으로 지금 이 계절, 영속성, 일상, 현재라는 4개의 시간성을 각 층에 두고 공간을 구성했어요. 1층은 접근성이 가장 높고 외부와 직접 연결되는 공간이니 나 자신과 아끼는 이들을 위한 시즈널 기프트를 제안했습니다. 2층은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 공예 작업과 작품을, 3층은 건강한 일상의 도구를, 마지막으로 4층은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이슈를 전시 형태로 풀어가는 구성을 했습니다. 동시에 1층은 금속과 유리, 2층은 한지, 3층은 우드 등 층마다 각각 대표적인 물성을 하나씩 부여했어요.
시간성으로 공간을 구획했다니, 흔치 않은 방향인데요?
새로운 공간을 그려보며 자연스레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 키워드는 사물이나 공간, 취향,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매일 매일을 잘 돌보고 지금 이 계절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시작점이었고요. 과거 유물에 녹아 있는 생활의 지혜에 감탄하거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예인들의 작품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좀 더 긴 수명으로 남을 사물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핸들위드케어를 비롯해 공예라는 카테고리에 진심인 것 같아요.
‘제대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사물’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공예에 가 닿았어요.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즐겁게 감탄하며, 자주 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사물은 한정적이잖아요? 만든 이의 생각과 사연이 깃든, 자기 이름을 걸고 성실하게 만든, 태어난 곳의 자연과 문화적 맥락이 스며 있는 물건은 대하는 사람의 자세도 달라지게 만들어요.
초창기에 비해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더라고요.
시작 시점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좋은 제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본을 비롯한 해외 브랜드들이 많았어요. 이후 좋은 제품에 진심을 담아 만드는 국내 브랜드와 작업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게 되었고요. 10년 전과 비교하자면 리빙과 공예 전반에서 국내 생산자의 저변이 넓고 튼튼해진 것도 큰 이유입니다.
춘우장부터 만추장, 문화역 서울284에서 연 비밀의 성탄역까지 티더블유엘의 마켓은 유독 두터운 팬층이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춘우장을 기획했을 때에는, 빌딩 옆 너른 주차 공간이 주말마다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이 공간을 잘 활용해볼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직접 구입해온 샘플 제품부터 각자의 소장품, 아주 작은 흠집 때문에 아쉽게 판매하지 못하는 제품 등을 모으고, 우리가 아끼는 또는 궁금해하던 브랜드들을 셀러로 ‘모셔와’ 열게 된 거예요. 이런 기획 의도에 공감한 분들이 큰 호응을 해주는 것 같아요.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닐 텐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지역이 있나요?
일본 도자기 주요 생산 지역인 하사미와 마시코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논밭이 펼쳐진 평화로운 풍광을 배경으로 대를 이어 오래된 가마를 지켜온 사장님들의 희끗한 백발과 자긍심 넘치는 눈빛, 도시에서 도예와 디자인을 전공하고 돌아와 다음 세대를 써 내려가고 있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두 분은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fnt(Studio fnt)도 함께 운영하시지요?
Studio fnt는 김희선, 이재민, 길우경 세 사람이 운영하고 있어요. 분리된 두 개의 법인이지만 운영자가 겹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각 회사의 장점을 하나로 합친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생활문화와 디자인, 유통과 지식서비스라는 다른 분야, 다른 유형의 업무를 오가며 더 넓고 촘촘한 시야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사무실 이전 후 가장 큰 기쁨이 아침에 출근할 때 어디로 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웃음)
새로운 티더블유엘은 어떤 공간이 되기 바라나요?
정말 좋은 글을 읽으면 짧은 글이라도 쓰고 싶어지고, 좋은 그림을 보면 뭐라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요. 많은 분이 이곳을 다녀간 뒤 일상을 더 소중하게, 충실히 살고 싶어진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