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박사 과정을 마쳤다고 들었다. 작업 활동을 10여 년 정도 해오면서 어떤 확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주제나 내용적으로 인스피레이션(영감)을 받고 싶은데, 책을 많이 읽기에는 대학원이 좋을 것 같았다. 리빙 디자인 쪽에 특히 매진한 것 같다. ‘사람들이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떻게 해석하는가’ 등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뤘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굉장히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지 않나? 디자인에 대한 연구이기에 순수미술을 바라볼 때처럼 주관적 감상이기보다는 사물이 주변에서 가지는 역할이나 기능에 대한 추론에 가까웠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하다가 직접 수업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웃음)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돌연 네덜란드로 떠났다. 당시 좋아하던 디자이너 중에 피트 하인 이크나 마틴 바스 등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출신이 많았다. 작가주의적 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하던 학교라 커리큘럼이 굉장히 독특했다. 예를 들면 시각 디자인, 제품 디자인처럼 분야나 나무·금속 같은 재료로 나누지 않고 웰빙 디자인, 소셜 디자인 같은 삶의 전반적인 가치로 과를 구분했다.
컨텍스추얼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 컨텍스추얼 디자인은 ‘맥락적 디자인’이라는 뜻인데, 동시대적인 사회·문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규정한 뒤 그 맥락을 주제로 가지고 오는 방식을 탐구하는 과였다. 디자이너가 하나의 주제를 잡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다 철학이었다.
그때 경험이 지금 서정화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간 작업해온 작품을 보면 다양한 소재와 물성을 탐구하는 편인 것 같은데. 그렇다.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여러 재료와 기법을 다룰 줄 알면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치 시인이 단어를 많이 아는 것처럼.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지 않고 범위를 최대한 넓혔다. 당시 디자이너들 사이에는 소재를 태우거나 녹이는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게 유행이었는데, 나는 반대로 순수하게 그 물성에 집중해보려고 했다. 물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주변 환경이나 다른 물질에 의해 유기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하면 무한한 경우의 수가 나오겠다 싶었다. 다른 소재의 만남이 낳는 시너지 효과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업이 ‘소재의 구성 Material Container’ 스툴인가? 각각의 질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알루미늄과 구리, 나무, 돌 등 소재가 지닌 본질적인 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다. 2013년에 만든 작품인데 지금까지도 제작 중이다. 그 다음 해에 선보인 ‘사용을 위한 구조 Structure for Use’는 어떤 구조들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의 형태에 주목한 작품이다. 2022년에는 완초 소재를 접목시켜 디올과 협업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소재의 조합은? 황동과 현무암의 조합. 한 가지 소재에 천착하는 작가나 디자이너들도 많은데, 다양한 소재를 탐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 소재에 집중하면 그 물성에 대한 깊이와 완성도가 깊어지지만, 보는 사람은 물성에서 오는 변화나 기법에 집중하기에 내용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물성을 다루면서 조형적인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고, 각각의 물성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대신 원하는 물성의 깊이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는 편이다.
여러 소재를 다루는 작가 치고는 생각보다 작업실이 깔끔해서 놀랐다. 여러 기계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작업실을 상상했다. 보통 일반적인 작업은 디자인해서 다양한 분들에게 의뢰해 시안을 맡긴 후 1차 가공된 상태로 이곳에 부품처럼 하나둘씩 모인다. 그런 다음에 직접 연마 또는 가공해서 조립하는 식이다. 이 작업실은 이전 성수동에서 함께 있었던 황형신 작가가 소개해 지난해 이사를 왔다. 바로 옆 건물이 작업실이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오는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3days of design>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벤치 스터디’라는 주제로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두 명 이상 앉을 수 있는 벤치 디자인을 의뢰해서 전시한 뒤,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파이프 형태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작업인데, 파이프 구조 위에 레진 같은 반투명한 소재 플레이트를 올려 아래에 있는 구조의 미학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다.
서정화가 만들고 싶은 궁극적인 가구는 무엇인가? 인간은 주변의 사물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기본적인 실용성은 갖추되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가치가 새롭기 바란다. 그 가치가 무엇일지 지금도 매일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