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건축

소리의 건축

소리의 건축

세계 최초의 오디오 뮤지엄이 서초구에 문을 열었다. 건축가 쿠마 켄고가 건축 설계를 맡은 오디움이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기술을 집대성한 대형 극장용 스피커. 도슨트 시간에 의자에 앉아 직접 감상해볼 수 있다.

전시의 끝을 알리는 라운지 공간. 청음에 최적화된 패브릭을 조형적으로 활용해 화려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공간이 완성됐다.

금속 파이프로 장식한 오디움의 파사드. 마치 도시의 숲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 Kengo kuma

지난 6월 한적한 청계산 부근에 독특한 파사드를 지닌 건물 한 채가 들어섰다. 지하 5층부터 지상 5층까지 약 1만1009㎡ 규모에 알루미늄 파이프 2만 개가 수직으로 건물을 감싼다. 이곳은 1877년 유성기 발명 이후 150년간 오디오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 오디오 전문 사립 박물관 오디움 Audeum이다. 빈티지 오디오에 조예가 깊은 KCC 정몽진 회장의 수집품들로 채워졌다. 이곳이 화제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1920~60년대를 아우르는 엄청난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 두 번째는 이곳을 지은 건축 거장 쿠마 켄고와 전체 브랜딩을 맡은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협업 때문이다. ‘소리의 체험’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시작으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공간인 것. 개관전으로 열린 <정음 (正音) : 소리의 여정>은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지난 100년 동안 전쟁 시 선전의 목적부터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도구까지 발전해온 음향기기들을 연대기 순으로 만날 수 있다. 19세기 뮤직박스와 오르골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소스에 충실한 하이파이 시스템 오디오, 미국과 유럽의 극장 사운드 시스템을 장악한 웨스턴 일렉트릭과 클랑 필름, 왜곡이 없어 라디오 방송국과 녹음실에서 사용하는 스튜디오 모니터 등이 대표적인 예. 지상 3층에서 시작한 전시는 2층과 1층까지 이어진 뒤 지하 2층에서 끝이 나는데, 이 공간이 또 하나의 백미다. 무려 10만 장의 희귀 LP와 웨스턴 일렉트릭 사의 대표 오디오 시스템이자 대형극장용 오디오 미러포닉 Mirrophonic이 전시된 공간. 청음에 최적화된 패브릭을 자재로 사용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디움의 비주얼 디자인을 맡은 하라 켄야는 이곳의 이름과 스피커 형태에서 따온 심벌, 사이니지, 조형물 등을 제작했다.

1920년대부터 60년대를 아우르는 빈티지 오디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 굿즈와 각종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뮤지엄 숍.

웨스턴 일릭트릭 확성기의 초기 모델들. 공공장소에서 거대 관중에게 사람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혼을 특징으로 한다.

핀 실린더가 침처럼 뾰족한 스틸과 접촉하면서 소리를 내는 뮤직 박스들. 19세기 때 연주자 없이 기계의 작동 원리로 연주되는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KCC 정몽진 회장과 건축가 쿠마 켄고의 오랜 대화 끝에 완성된 오디움의 모습.

달팽이 모양의 커브 혼 스피커는 저음을 재생하기에 적합했고, 좁은 영화관에도 최적이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클랑필름 스피커들.

이곳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하루 5회, 한 타임당 약 25명이 전문 도슨트와 함께 공간을 탐방한다. 오디오의 역사와 소리의 세계에 대해 흥미롭고 다채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매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단 3일간만 문을 여는 탓에 얼마 전에는 예약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자유관람에 비해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바로 소리에 대한 진심 때문이다. 약 90분 동안 각기 다른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사운드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데,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에 퍼져 흐른다. 심지어 이곳을 운영하는 서전문화재단법인은 그 어떤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의 질적 향상과 문화 예술의 다양성,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답이 그리 멋질 수 없다.

INTERVIEW
건축가 쿠마 켄고 Kuma Kengo

© Kengo kuma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졌는지 궁금하다. 첫 만남 때 그가 수집한 오디오로 음악을 들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훌륭했다. 오디오에 대한 관점이 크게 바뀔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는 지금의 기술로 만들 수 없는, 과거에 만들어진 오디오의 귀중함을 얘기해줬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 1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기에 따라 소리와 작동법이 각기 다른 오디오를 경험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오디오와 사운드가 담기는 공간을 연구할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야 정문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선을 그렇게 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부지를 보았을 때 메인 도로와 후면 도로의 레벨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매우 독특한 한국 지형을 나타내는 요소라 생각했다. 본래 지형의 형태를 최대한 느끼면서 건물을 체험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오디움은 음악을 듣는 박물관이기에 건물에 바로 진입하기보다는 최대한 메인 입구까지의 동선을 확보하고, 천천히 건물을 감상하며 전시를 즐기기 위한 사전 워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디자인만큼이나 시퀀스를 중시한 결과다.

알루미늄 파이프가 파사드부터 내부까지 이어진다.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의 숲 같은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무작위로 배치된 여러 굵기의 파이프 덕분에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그림자가 변화를 이룬다. 건물 내부에도 여러 길이의 파이프를 매달았는데, 이는 자연의 무작위성을 나타낸 것이다. 무수한 파이프로 인해 숲처럼 위엄 있는 분위기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다.

‘소리’를 주제로 한 공간이다 보니 일반적인 뮤지엄과는 다른 디테일이 숨어 있을 것 같다. 건물 외부가 알루미늄 루버로 강한 마감이라면, 전시실 내부는 우드 루버로 다소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했다. 우드드레이프라 부르는 디테일인데, 여러 두께의 나무 루버로 되어 있어 마치 커튼 주름처럼 입체적이다. 이런 입체적인 벽면 덕분에 소리가 다양한 방향으로 반사되고 확산돼 예쁜 울림을 얻을 수 있는 음향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전자기기가 많다 보니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처음 소장품을 보았을 때 놀라울 정도로 하나하나가 거대하고 웅장했다. 좋은 소리를 위한 공간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오디오가 돋보일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무엇보다 천장 높이를 일반적인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10m로 기획했다. 천장 마감까지 노출로 해 거대한 오디오가 여러 높낮이로 밸런스 좋게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동이 쉽지 않은 전시품인 만큼 전시실마다 재단측과 수시로 소통하며 배치 계획을 진행했다.

지하 2층의 LP 컬렉션 방은 오리가미 같은 기둥 디테일이 특히 눈에 띄었다. 부드러운 소재의 강렬한 입체 공간을 생각했다. 단순히 패브릭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패브릭을 조형적으로 사용해 이 공간의 테마를 형성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꽃과 같은 형상이 되었지만, 꽃 같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천의 가능성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꽃 형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빛도 다른 곳과는 달리 부드럽게 전달된다. 그 덕분에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공간이 완성됐다.

디자이너 하라 켄야와 몇 차례 협업을 했는데, 이번 협업 과정은 어땠나? 건물 디자인이 모두 확정되고 현장 착공을 할 무렵 명칭을 어떻게 할지 클라이언트 측과 이야기를 나눴다. 도쿄올림픽 경기장과 코미코 아트 뮤지엄, 메이지 신궁뮤지엄 등에서 협업한 하라 켄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흔쾌히 협업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이곳 현장을 함께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소리에 관심이 많은 하라 켄야는 바로 업무에 착수했다. 오디오 뮤지엄의 줄임말이자 알기 쉽고 세계적으로 어필하기 쉬운 영문 네이밍, 오디움을 만들어냈다.

관객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느끼고 기억했으면 하나? 오디움은 박물관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박물관이다.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소리, 빛, 바람, 향기 등 모든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이곳에서 특별한 치유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한 서울의 새로운 상징적 장소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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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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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msical C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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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사람 모양의 와인 오프너로 유명한 알레시가 디자이너 줄리오 이아게티와 손 잡고 새로운 공예 브랜드를 설립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일 토르니토레 마토의 이야기.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해 완성한 일 토르니토레 마토의 컬렉션. 지난해부터 이어온 프로젝트로, 올해 코파 카무나가 새롭게 라인업에 합류했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의 공동 창립자 줄리오 이아게티.

알레시의 집 서재에서 첫선을 보인 코파 카무나.

페데리코 안지의 디스콜로 접시.

파올로 울리안의 컴프레시오니 볼.

줄리오 이아게티의 콘카 화병.

줄리오 이아게티의 코파 카무나 볼.

피에르 샤르팽의 온디네 테이블웨어.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의 트럼펫 화병.

일 토르니토레 마토 Il Tornitore Matto는 알베르토 알레시 Alberto Alessi와 산업디자이너 줄리오 이아게티 Giulio Iacchetti가 2023년 시작한 실험적인 디자인 브랜드다. 이들의 만남은 알레시의 제조 기원을 기념하며 디자인, 산업, 공예를 융합한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고자 하는 공통된 목표로 시작되었다. 주요 영감은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요셉 호프만 Josef Hoffmann이 1903년 창설한 수공예가 그룹 비너 베르크슈테테 Wiener Werkstätte(빈 공방)의 응용예술 접근 방식과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자유로운 창의성에서 비롯되었다. 지난해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 페데리코 안지, 안드레아 브란지, 피에르 차핀, 니카 주팡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선보인 10가지 컬렉션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의 이름은 코파 카무나 Coppa Camuna. 얼핏 투박한 검은색 바가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한 이 컬렉션은 독일의 헬멧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고대 장인의 공정을 통해 999개로 출시되었다. 전쟁의 상징을 평화의 도구로 변형시켜 만든 이 작품은 강렬한 에너지와 아름 다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전통적 공예와 현대적 미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 토르니토레 마토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알베르토 알레시와 이야기를 나눴다.

알베르토 알레시.

알레시의 또 다른 자아이자 줄리오 이아게티의 총괄 아래 운영되고 있는 일 토르니토레 마토에 대해 소개해달라. 우리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지만 분명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알레시는 주로 산업 생산에 전념하고 있는 반면, 일 토르니토레 마토는 주로 공예 혹은 공예와 산업 생산의 경계선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비즈니스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사물의 의미 자체를 탐구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빈 공방의 응용예술 접근 방식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인지 설명해달라. 빈 공방(비너 베르크슈테테)은 디자인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운동 중 하나였다. 1903년부터 1932년까지 지속된 이 회사는 건축가 요셉 호프만과 콜로만 모서 Koloman Moser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토털 아트’라는 주제로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양성하고 고품질의 디자인 제품을 창조했다. 이는 항상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미치광이 선반공(일 토르니토레 마토)’이라는 브랜드 명칭이 재미있다. 이러한 이름을 짓게 된 이유가 있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레퍼런스는 산업 생산의 전형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기술적 한계를 가진 고대 생산 공정이 인간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어떤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시(詩)와 기술의 결혼을 목표로 한다.

신규 컬렉션 코파 카무나는 고대 장인의 공정을 통해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줄리오의 디자인 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특히 좋아한다. 코파 카무나는 내 생각을 완벽하게 나타내는 예인데, 선반을 돌리는 장인의 손에서 태어나 형체 없는 형태로, 불타오르게 가열된 후 밀랍으로 덮여 컨테이너로서의 기능을 완성한다.

고대 공예 장인들의 기법을 활용한 코파 카무나의 제작 과정.

협업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줄리오는 장인정신과 그 역사를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산업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는 이 장인 분야를 인류학적 접근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역사를 알지 못하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도전은 마케팅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 홀로 일할 수 있는 자유였다. 직감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이 오늘날의 산업 활동에서는 드문 일이기 때문에 기뻤다. 아마 내 디자인 접근 방식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일 것이다.

코파 카무나 이외에도 서로 다른 배경과 세대에서 온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관점을 담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나? 이 프로젝트에 초대된 모든 디자이너들이 산업 합리주의에 제한을 덜 받고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랐다. 각자 자신의 시적 감성에 따라 이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나오토 후카시와의 미니멀리즘에서 미켈레 데 루치의 표현주의,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의 개념적 접근, 이아케티의 고대 공예 탐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은 없다. 모든 작품이 내게는 자식과 같다.

신규 컬렉션 론칭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파티. 피에몬테주에 위치한 알레시의 집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알레시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 내부 모습. 1 화려한 장식 없이도 감각적인 다이닝과 대형 수영장이 눈길을 끈다.

코파 카무나의 첫 데뷔 무대를 알레시의 개인 자택에서 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일 토르니토레 마토 회사가 위치한 별도의 건물을 호스팅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아내 로라는 몇몇 기자들을 초대해 코파 카무나를 발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많은 공간이 있어 행사를 주최하기에 충분했다.

알레시와 일 토르니토레 마토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계획인가?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다. 8명의 디자이너가 우리 산업 문화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아직 공개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이다.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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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rcelain Artis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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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디자인과 혁신을 통해 일상의 예술을 실현시키는 명품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 프랑스 중서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도시 리모주에서 160여 년의 브랜드 역사를 되돌아봤다.

프랑스 남서부 리모주에 자리한 베르나르도의 본사.

본사 내부에는 도자기 제작 과정과 베르나르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파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3시간 30분을 달려 리모주 Limoges 역에 도착했다. 프랑스 중서부에 자리한 리모주는 19세기부터 ‘도자기의 도시’로 불렸다. 파리에서 약 375km나 떨어진 곳이 도자기의 도시가 된 이유는 1768년 인근에서 발견된 백색 점토 광물, 카올린 Kaolin 때문이다. 카올린은 쉽게 말해 고령토인데, 이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면 무지갯빛 투명도와 단단한 강도를 지닌 제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왕족과 귀족을 위한 도자기 공방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내 도자기 생산량의 50% 이상이 리모주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은 이유다. 자기 식기류에 대한 수요 증가를 예측한 두 사업가가 1863년 리모주에 최초로 도자기 공장을 설립했다. 그 후 이곳 직원인 레오나드 베르나르도 Leonard Bernardaud가 1900년 회사를 인수해 자신의 이름을 딴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를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사진 제공: 베르나르도

베르나르도를 대표하는 컬렉션인 에퀴메를 조각하고 있는 모습.

1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곳에선 도자기와 관련된 수많은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

베르나르도는 가족 경영 체제하에서 최신식 기술 도입과 해외 시장의 판로 확대를 통해 브랜드를 확장해나갔다. 1949년에는 프랑스 최초로 나무 대신 천연가스 연료를 사용하는 터널식 가마를 도입했고, 1980년대에는 정수압 프레스 설치를 통해 공장을 현대화했다. 이러한 진보적 사고와 더불어 장인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보존하고 창의성을 강조하여 높은 완성도의 제품을 만들어나갔다. 마르크 샤갈, 제프 쿤스, JR, 알렉산더 칼더, 호안 미로, 박서보 등 매년 전 세계의 유명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함께 협업을 하며 독창적인 디자인과 예술적 가치를 지닌 컬렉션을 전개하는 중이다. 특히 제프 쿤스의 상징적 작품인 <벌룬독 Balloon Dog>을 도자기로 재현하기 위해 모델링 전문가와 디자이너, 유약 장인이 약 3년간 기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옛 공방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둔 본사 내부 모습.

그 결과, 2006년 프랑스 정부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인 EPV(Entreprises du Patrimoine Vivant) 라벨을 수여했다. 또한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만 가입할 수 있는 콜베르 위원회(Comite Colbert)에도 가입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품질과 완벽한 디테일은 프랑스 대통령 관저부터 왕실, 전 세계 특급호텔, 스타 셰프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웨어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셰프 리스트만 해도 알랭 파사드부터 조엘 로부숑, 알랭 뒤카스, 고든 램지의 스승인 기 사부아 Guy Savoy 등에 이른다. 베르나르도는 현재 본사가 자리한 리모주 시내와 근교에서 도자기 공장을 두 곳 운영하고 있다. 직원 약 750명이 근무하는 두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무려 300만 점에 달한다. 리모주 시내에 자리한 공방에는 베르나르도의 160년 역사와 제조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한층 심도 있는 경험이 가능하다.

제프 쿤스, JR과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 컬렉션.

제프 쿤스, JR과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 컬렉션.

 

How to Make Bernardaud Porcelain

베르나르도 도자기는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다만 고령토(Kaolin) 50%, 규석(Quartz) 25%, 장석(Feldspar) 25%로 구성된 광물 비율은 늘 고수하는데, 이 광물을 물에 섞어 분쇄한 뒤 체로 걸러 여과시킨다. 그 뒤에는 제작 방식에 따라 다양한 농도의 반죽으로 만들어진다. 주입 성형에 사용되는 묽은 반죽인 슬립 Slip, 공기를 빼고 물레 성형에 사용하는 원통형 반경질 반죽, 정수압 프레스로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해 만드는 과립형 분말이 대표적이다.

몰드 제작

1 몰드 제작 도자기 제작의 첫 단계는 원형을 만드는 것이다. 도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모델러는 완성품 대비 약 14% 큰 사이즈의 오브제를 석고로 만들어야 한다. 코어 Core라고도 불리는 이 원형은 주형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이 주형은 또 다시 대량 생산을 위한 금형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2 성형 성형은 제품 형태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주입 성형은 커피포트, 꽃병, 수프 그릇같이 속이 빈 기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공정이다. 먼저 묽은 반죽인 슬립을 석고틀에 붓고 금형에서 굳게 한 뒤 기물을 꺼낸다. 기계물레 성형은 둥글고 위로 돌출된 기물(컵이나 샐러드볼 등) 제조에 사용되는 공정이다. 반경질 반죽을 금형에 넣어서 물레 위에 올리고 금속 형판으로 눌러 점토를 납작하게 만든 뒤 여분의 반죽을 잘라낸다. 정수압 프레스 성형은 접시처럼 둥글 납작한 기물을 제조하는 공정으로 1980년대부터 사용되었다. 과립형 반죽(슬립을 분사해 말린 분말)을 강철 및 폴리우레탄 금형 속에 넣고 압력을 가해 누르면 도자기 분말이 압축되면서 형태가 만들어진다.

3 건조 크기에 따라 12~24시간이 소요되며 건조 공정 중에 부피가 약 3% 수축한다.

핸들 고정

4 핸들 고정 주전자 주둥이나 컵 손잡이 등 부속품을 붙이는 공정이다. 이 과정에서 티포트나 커피포트 주둥이 안쪽에 구멍을 만들기도 한다.

5 다듬기 두 개 이상의 금형이 만날 때 생기는 이음새와 그 밖의 결함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6 초벌 굽기 모양을 잡은 도자기는 가스 가마에서 980°C로 24시간 동안 초벌한다. 초벌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며 기물이 단단해지고 미세한 구멍들을 갖추게 되어, 유약을 표면에 고정할 수 있게 된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는 광택이 없는 상태인데, 이를 ‘비스퀴 Bisque’라고 부른다.

유약 입히기

7 유약 입히기 초벌 후의 도자기는 깨지기 쉬운 다공성 재질로 변한다. 유약을 입히는 작업은 다공성 덕분에 진행할 수 있다. 초벌한 기물은 수작업으로 유약에 담갔다 꺼내면 매끄럽고 광택 있는 표면이 생긴다. 무엇보다 유약 입히는 과정은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각각의 기물에 균일한 두께로 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재벌 굽기

8 재벌 굽기 유약을 입힌 다음 1400°C 가스가마에서 24시간 동안 고온 소성한다. 재벌 굽기의 목적은 반죽 및 유약을 유리화해 도자기의 백색도, 반투명도, 공명, 경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재벌 굽기 과정에서 도자기 부피가 크게 수축(원형 대비 10~12%)하여 최종 크기가 결정된다.

9 선별 작업 선별 작업은 도자기 제조의 최종 단계다. 선별 담당자가 도자기를 하나씩 확인한 다음 품질 등급을 매긴다. 이 단계에 이르기 전에도 수많은 품질 검사를 실시하지만, 이 단계에서 25% 이상의 제품이 폐기 처리된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결함은 얼룩, 균열, 유약이 발리지 않은 부분, 변형, 갈라짐 현상이다.

장식

10 장식 장식 정도는 컬렉션의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치가 높은 제품은 손재주가 뛰어난 장인이 다양한 붓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사지를 백색 도자기 위에 손으로 부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전사지는 다양한 인쇄 공정(과거엔 석판 인쇄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실크스크린 인쇄 사용)을 거쳐 제작된다. 베르나르도는 자체 인쇄 공장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다만 섬세한 라인이나 부속품(손잡이나 주둥이 등)은 모두 수작업으로 칠하는데, 상감이나 금 양각 같은 특수 기술이 커스텀 제품에 사용되기도 한다.

11 품질 관리 최종 목적지로 배송되기 전 단계로, 세계로 판매되는 베르나르도 제품이 최상의 품질을 갖출 수 있도록 모든 제품을 마지막으로 면밀히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Best Collection 4

에퀴메

에퀴메 Ecume
에퀴메는 특히 미쉐린 셰프들이 사랑하는 컬렉션인데, 다양한 크기의 내추럴한 버블 형태를 형상화했다. 시적이고 모던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알베르틴

알베르틴 Albertine
섬세한 스케치가 그려진 알베르틴은 프랑스의 유명한 텍스타일 투알 드 주이 Toiles de Jouy의 시적인 디자인 장식을 도자기 위에 표현한 컬렉션이다. 식물의 잎부터 야생 블랙베리, 까치, 오리 등이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라퀴니에

브라퀴니에 Braquenié
브라퀴니에 컬렉션은 프랑스 텍스타일 브랜드 피에르 프레이 Pierre Frey와 협업하여 선보인 컬렉션이다. 피에르 프레이의 텍스타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자인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나무 줄기와 야생 동물, 큰 꽃을 섬세하게 그려내 풍요로움과 웅장한 컬러감을 보여준다.

콘스탄스

콘스탄스 Constance
콘스탄스는 엠파이어 양식의 세련미를 모두 갖췄다. ‘힘, 장수, 평화’의 상징인 도토리, 참나무, 월계수잎을 섬세하게 배치해 마치 예술가의 붓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The Foundation Bernardaud

베르나르도는 리모주와 도자기 산업의 문화적 기여를 위해 2003년 베르나르도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매년 여름 리모주 본사에서 전 세계의 세라믹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오랜 시간 수행하듯 작업해온 현대 도예가들을 엄선하고 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지난해 <트랜스미션 Transmission>전에 이어 올해는 <압솔뤼 Absolu>전이 열렸다. 전시장 모습과 눈에 띈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직물의 특성을 도자기로 표현해내는 일본 작가 유타나카의 작품. © Thierry Laporte

<압솔뤼>전을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방문한 관람객들. © Thierry Laporte

<압솔뤼>전을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방문한 관람객들. © Thierry Laporte

선명한 색감과 선을 표현해내는 피터 핀커스의 작품. © Thierry Laporte

극도로 얇고 섬세한 자기 작업을 하는 파울라 바스티안센의 작품. © Thierry Laporte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도자기에 섬세하게 조각하는 데이비드 리건의 작품. © Thierry Laporte

기하학과 패턴, 그림자, 곡선의 교차를 통해 설치 작업을 하는 마리아 오리사 페레스의 작품. © Thierry Laporte

동양 철학을 기반으로 흙을 빛는 발레리 헤르만스의 작품. © Thierry Laporte

INTERVIEW
찰스 베르나르도 Charles Bernardaud &아서 베르나르도 Arthur Bernardaud

160년간 리모주에서 가족 경영으로 이어져 내려온 베르나르도. 최근 경영에 참여하게 된 찰스 베르나르도와 아시아 총괄을 맡은 아서 베르나르도에게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베르나르도가 리모주를 대표하는 포셀린 브랜드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전 세계 럭셔리 포셀린 브랜드가 레퍼런스를 삼는 중요한 기업 중 하나다. 무엇보다 창의성과 혁신, 장기적인 비전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좋은 감각을 가진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기에 기술 개발과 제조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 덕분에 높은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었고, 럭셔리 브랜드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여타 브랜드와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오늘날 많은 도자기 회사는 장식을 위한 백색 도자기를 구입하고 그 위에 디자인을 얹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포셀린 반죽을 위한 원재료인 광물부터 매장에서 판매되는 완제품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직접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회사다. 여러 명품 브랜드를 비롯한 기업과 협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도 이 덕분이다.

장인정신을 유지하는 것과 혁신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 우리는 이제 작은 공방을 넘어 꽤 큰 회사로 발전했다. 최첨단 설비 도입은 우리 노하우에 생산 능력을 더해준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기계와 장인정신이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 베르나르도 공장에 방문하면 첫 공정부터 마지막 생산 단계까지 기본적으로 도자기 한 점이 40쌍의 손을 거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계별로 수작업을 100% 진행하면서 기계로 진행하는 과정도 있는데, 이는 좀 더 우수한 품질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업을 결정한다. 160년 전 우리가 해오던 생산 방식을 고수한다면 더 발전할 수 없다.

베르나르도 재단을 설립하고 세라믹 전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도자기와 장인정신을 고취시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전 세계 도자기 예술가를 초대하고 그들의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는 우리 사업에서의 아티스트 파트너십과는 다르다. 베르나르도가 만드는 포셀린이 아니더라도, 그보다 넓은 범위의 모든 ‘세라믹’ 아티스트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리모주가 방문하기 쉬운 도시는 아니지만, 이제는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세라믹 전시를 여는 곳이 되었다.

럽 지역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나? 아시아에서도 유럽이나 미국 시장과 전략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주로 광고를 통해 소통하기보다는 예술가와 협업을 통해 소통한다. 한국의 경우 박서보 화백과 진행한 협업이 대표적인 예다. 대중에게도 베르나르도가 그릇만 만드는 회사가 아닌, 도자기로 얼마나 다양한 피스를 만들 수 있는지 소개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프랑스에도 유명한 아티스트가 있지만, 한국 소비자와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의 아티스트를 찾았다.

세대를 거쳐 이어오면서 현재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베르나르도는 가족 경영 기업이다. 우리는 여전히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6세대 경영이 시작됐지만 갑자기 베르나르도가 급격히 변하는 일은 없다. 우리의 주된 업무는 브랜드를 지속성 있게 유지하면서도 혁신을 위한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지난 160년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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