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첫 번째 공동주택이자 20세기 건축의 걸작으로 뽑히는 시테 라디외즈. 이곳에서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파리에서 그 감동을 이어가고 있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를 만났다.
마르세유 도시 전망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파르트멍 N°50.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작품으로 채워진 공간의 모습.
오늘날의 아파르트멍 N°50 Apartment N°50의 소유주인 장-마크 드뤼 Jean-Marc Drut와 파트릭 블로와 Patrick Blauwart는 시테 라디외즈 La Cité Radieuse가 완공된 1952년부터 2000년까지 거주한 첫 번째 소유주 리예트 리페르 Lilette Ripert의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실내 디자인을 꾸미고 전시를 여는 프로젝트가 2008년부터 진행되었다. 재스퍼 모리슨, 부흘렉 형제,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 대가들이 2~3년마다 이곳을 거쳐갔고, 2018년 노말 스튜디오를 마지막으로 6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진 프로젝트는 2024년 젊은 디자이너 듀오 마리&알렉성드르를 초대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마리 코르닐 Marie Cornil과 알렉성드르 윌라우메 Alexandre Willaume는 영광스러운 러브콜에 성실히 응답하기 위해 다채로운 디자인적 시도를 모색했다. 드라귀낭 Draguignan에서 제작한 붉은 점토 타일로 발코니 바닥을 깔았고, 물랑 Moulins에 있는 장 모네 고등학교 Lycée Jean Monnet 유리공예 레지던시를 하면서 개발한 테이블과 식기류로 무게감 있는 가구의 시각적 가벼움을 추가해 밸런스를 유지했다. 유기적이면서 모듈식 구조를 띤 건물 내부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1950년대 모던 가구의 형태를 지닌 작품들 또한 건물과 건축가 사이의 연결성이 느껴졌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모듈식 유리 가구는 현대적 디자인과 유리라는 재료가 가진 특유의 질감, 그리고 빛이 더해지면서 관객에게는 몰입형 경험을 만들어냈다. 카르트 블랑쉬(전권위임)로 진행되면서 전시 오프닝 날이 되어서야 완성된 공간을 볼 수 있었는데, 장-마크 드뤼는 오프닝 날에 공간을 마주하고 놀라움과 만족함을 표출했다고 한다. 마리&알렉성드르는 이 곳이 실제로 누군가가 거주했던 곳인 만큼 추상적인 오브제보다는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구들을 주로 제작했다. 또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마르세유 특유의 강한 햇살까지 고려해 빛과 작품의 시너지 철저히 계산했다. 그렇게 120㎡의 아파트 공간에서 우리는 예술과 건축의 교집합을 발견하고 물건의 형태와 재료의 아름다움, 그리고 공예정신까지 느끼고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시테 라디외즈에서 열린 전시는 9월 5일부터 10월 21일까지 파리 디자인 위크 출범과 함께 갤러리 시니예 Signé에서 이어진다.
WEB www.galeriesigne.com
시테 라디외즈 외부.
세라믹, 섬유,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완성한 가구들.
글라스 이탈리아 Glas Italia와 협업하여 만든 모듈식 유리 가구.
모듈식 가구는 책상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샬롯 페리앙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롱 라운지 체어.
마리(오른쪽)와 알렉성드르.
디자이너로서는 꿈의 프로젝트다. 어떤 이유로 제안을 받게 되었는가? 아파트의 소유주이자 프로젝트 기획 및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장-마크 드뤼 Jean-Marc Drut를 2018년 이예르 Hyères에서 열린 제13회 디자인 파라드 Design Parade 공모전 전시에서 만났다. 따로 작품을 선보인 우리 둘의 작업을 흥미롭게 보더니 꼼 데 가르송의 패브릭 디자인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도 작업실과 갤러리 시니예를 자주 찾아와 작품들을 살펴봐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갤러리 대표 막심 부지디 Maxime Bouzidi가 장-마크에게서 아파르트멍50 참여를 제안받았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놀라웠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정말 쟁쟁하지 않은가. 이제 겨우 5년 정도 커리어를 쌓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 젊다. 그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제안을 받았고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 지난 2월 제안을 받고 7월 오프닝 기간까지 쉬지 않고 준비했다. 올해 상반기는 아파르트멍 N°50에 전부 투자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용한 재료마다 작업실도 다르기 때문에 전국을 누비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5개월을 꽉 차게 보냈다.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었나? 아파트에 남아 있는 아카이브 자료들을 전부 살폈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가 이 건물을 어떻게 지으려고 했는지 자료 조사를 하면서 건물과 가구들이 가진 르 모듈러, 즉 황금비율과 그가 사용한 색상을 우리의 작업에 적용했다. 아파르트멍 N°50에는 총 15개의 컬러가 발견되는데,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색채 이론에 근거해 공간을 확장시켜 보이려 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서 우리 역시 이곳에 사용된 15개 컬러를 존중하며 작업에 적용했다. 그러니 비율과 컬러가 첫 번째 영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샬롯 페리앙의 가구 디자인이 두 번째 영감으로 작용했다. 그녀가 디자인을 맡은 주방과 최초로 놓인 가구들이 가진 심플한 곡선 미는 안락의자를 포함한 일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인공’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 있다면? 글라스 이탈리아 Glas Italia와 협업해 만든 모듈식 유리 가구를 뽑고 싶다. 마르세유에서 공간 중앙에 놓여 대형 창을 통해 빛이 가구 유리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반짝임과 가구에 쓰인 두 개의 컬러가 겹쳐지면서 보이는 세 번째 컬러의 발견까지 관람객들에게 호기심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작품 중 제작하는 데 애를 먹은 피스가 있나? 간단한 형태로 보일 수 있지만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테이블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리 부분은 블로잉 기법을, 하나의 커다란 피스인 상판은 유리 액체를 넣을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제작하기 때문에 따로 커팅하지 않았는데,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맞춰야 원하는 두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표면에 보이는 기포 같은 물결의 패턴은 빛이 더해졌을 때 더 아름다운 효과가 느껴진다. 고급 유리가 아닌 상업용 유리가 사용되었지만 이런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유리 테이블의 원형 구멍은 장 푸르베의 조립식 패널을 연상시킨다.
모듈식 유리 가구의 컬러가 돋보인다.
수작업으로 제작한 메탈 프레임의 체어.
가죽 천과 메탈이 보여주는 곡선의 라인이 인상적인 암체어.
아파르트멍 N°50의 한쪽 벽면 모습. 가죽 라운지 체어와 유리 화병 등 실제 생활에 필요한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