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넉넉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샴페인의 왕이라 불리는 크루그를 마셨다. 마주 앉은 자리에는 크루그 하우스의 수장인 매기 헨리케즈 대표가 있었다.
1 청담동 레스쁘아 뒤 이브에서 낮부터 크루그를 마셨다. 2 크루그의 수장인 매기 헨리케즈 대표.
3 크루그 하우스는 1843년에 시작해 6대에 걸쳐 계승되고 있다.
대낮부터 술 약속이 있었다. 으레 낮술은 쿰쿰한 노포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게 제맛이나, 이번엔 좀 달랐다. 낮술이었지만 호사스러웠다. 호사스러웠지만 무겁지는 않았고, 무겁지는 않았으나 깊이는 있었다. 크루그라는 멋진 술과 레스쁘아 뒤 이브 임기학 셰프의 특별한 음식, 분위기를 완성하는 술친구인 매기 헨리케즈 대표가 있었던 덕분이다. “자, 마실까요?” 매기 대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신선하면서도 가볍고 생동감 넘치는 맛. 마시자마자 단박에 좋은 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2003년은 매우 무더운 해였고, 무더위는 와인의 맛을 무겁게 만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맛이 나는 건, 크루그의 세밀한 생산 방식 덕분입니다.” 크루그는 포도밭의 구획을 매우 세밀히 나눠 관리한다. 같은 밭이라고 해도 포도에 닿는 햇살의 정도, 기온의 높낮이, 심지어 고도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샴페인잔을 기울이던 매기 대표가 갑자기 핸드폰을 들더니 음악을 틀었다. 공간에 아름다운 재즈 선율이 스몄다. 크루그를 마실 때 챙겨야 할 필수품은 애인도 아닌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샴페인의 에이징 기간, 블렌딩된 베이스 와인과 리저브 와인의 수, 사용된 리저브 와인의 최고 · 최신 연도 등의 정보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크루그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샴페인병에 적힌 ID를 입력한 거예요. 이렇게 술에 어울리는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이 샴페인에 얽힌 이야기도 볼 수 있죠.” 실제로 좋은 음악을 들을수록 음식의 맛이 좋아진다는 과학적인 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검증했다. 크루그 하우스는 샴페인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뮤직 페어링’을 시도하고 있었다. 크루그 하우스는 업계 최초로 푸드 페어링을 시작한 획기적인 하우스로도 유명하다. 재빨리 두 번째 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악이 페어링된 크루그 2002의 맛은 어떨까? 에디터의 마음을 알아챈 듯 매기 대표는 다음 잔을 권했다. “크루그 2002를 마셔볼까요? 음, 샴페인 온도가 약간 높기는 한데…. 온도가 올라가면 오히려 그 품질을 더욱 잘 알 수 있긴 하죠. 차가운 음식은 오히려 온도가 올라갔을 때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혀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맛. 크루그 빈티지 2003이 좀 더 심플하면서도 경쾌하다면, 2002는 깊이와 긴장감이 있는 샴페인이었다.
왼쪽부터 크루그 그랑퀴베, 크루그 빈티지 2002, 크루그 빈티지 2003
4 레스쁘아 뒤 이브의 임기학 셰프가 달걀을 주제로 음식을 만들었다. 5 크루그라는 샴페인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던 자리였다. 6 임기학 셰프와 매기 헨리케즈 대표
매기 대표는 역시나 재빨리 핸드폰을 눌러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페어링했다. “2002년은 완벽한 빈티지의 해였죠. 자연이 샴페인을 위한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주었어요. 그 맛의 차이를 느끼시겠어요?” 매기 대표가 물었고, 에디터는 은근슬쩍 다시 꿀떡이며 잔을 들이켰다. 그럼요, 그럼요. 알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아무래도 좀 더 마셔봐야겠어요…. 아쉬운 마음에 잔을 만지작대는데, 대망의 크루그 그랑퀴베가 등장했다. 설립자인 조셉 크루그는 매년 최상의 샴페인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래서 다른 색채를 띠는 빈티지를 한데 모아, 그것으로 또 다른 스타일의 아름다운 색채를 보여주는 그랑퀴베를 만들었다. 크루그 2002, 크루그 2003이 환경에 따라 창조되는 빈티지 샴페인이라면, 그랑퀴베는 10여 가지 다른 빈티지의 와인을 120종 이상 조합한 멀티 빈티지 샴페인이다. 참고로 하우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빈티지의 경우 동일한 품질의 두 가지 제품을 비슷한 시기에 출시하고 있다. 완벽하면서도 다채로운 그랑퀴베를 테이스팅하는 동시에, 달걀을 주제로 한 음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크루그는 매년 한 가지 식재료를 선정해 세계적인 셰프들과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레스쁘아 뒤 이브의 임기학 셰프가 참여해 달걀로 만든 특별한 메뉴들을 냈다. 풍부한 맛을 지닌 그랑퀴베는 다양한 음식과 잘 매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매기 대표는 전날 신라호텔 라연에서 한식을 맛보았다며, 그랑퀴베와 페어링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식은 다채로우면서도 가벼운 맛으로 이루어져 있어 크루그와 참 잘 어울리죠.” 그랑퀴베가 기포 속에 품고 있던 다채로운 향을 내놓았고, 그녀는 샴페인잔에 코를 박고 향을 훔쳤다. 모든 것은 향기로부터 시작된다면서. 그렇게 우리는 음식을 썰고, 샴페인잔을 부딪히며 먹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크루그가 선사한 최고의 시간이었다.
게살과 전복, 프레시 트러플을 곁들인 달걀 커스터드
연어 그라블락스와 달걀노른자 오보로, 연어알
메르게즈 향신료로 마리네이드한 양고기로 감싸 튀긴 달걀
7 하우스의 창립자인 조셉 크루그. 8 크루그는 매년 한 가지 식재료를 선정해 전 세계 셰프들과의 협업을 선보인다.
SPECIAL PARING
매기 헨리케즈 대표에게 최근 출시한 크루그 2002를 즐기는 페어링법을 물었다.
Q1 KRUG×SPACE 남아프리카에 있는 아름다운 호텔에서 크루그 2002를 마시고 싶다. 날이 저물고 차차 어두워질 즈음 수풀에서 불을 피우고 닭 꼬치와 커리 소스와 함께 크루그를 마시겠다.
Q2 KRUG×TIME 밤 9시. 조금 늦은 저녁 시간, 크루그 2002와 함께 난롯가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 메뉴는 구운 돼지고기와 망고 처트니.
Q3 KRUG×STREET FOOD 노점에서 파는 케밥, 닭고기가 들어간 페이스트리, 볶은 양파가 잔뜩 들어간 핫도그, 생강이 들어간 당근 케이크나 공항 푸드코트에서 찾을 수 있는 시나몬 롤도 좋다.
Q4 KRUG×MUSIC 망설임 없이 본 아이버 Bon Iver의 Perth(mi ka remix). 샹파뉴에 있는 레스토랑 소믈리에가 추천한 곡인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Q5 KRUG×ARTIST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게고 Gego. 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깊이와 긴장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