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3스타 셰프인 야닉 알레노가 시그니엘 서울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는 소스를 통해 프렌치 퀴진의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접시 위 식재료 사이에는 그 어떤 연결점도 없어요. 소스는 그래서 중요하죠. 많은 요소를 연결하고, 복잡한 접시를 심플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소스의 중요성은 접시에서 8할 이상이라고 봐요.” 2014 미쉐린 가이드 파리 편에서 ‘파비옹 르드와앵’으로 별 3개, 2017년에는 LVMH와 협업한 레스토랑 ‘르 1947’로 별 3개. 하나만 획득하기도 힘든 미쉐린 스타를 6개나 소유한 이 프랑스 셰프는 빡빡한 스케줄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윤기 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난 3월 말, 5성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에 오픈한 레스토랑 ‘스테이 Stay’에서 야닉 알레노 yannick alleno 셰프를 만났다.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15세에 요리를 시작, 지금까지 30여 년 넘게 요리를 해온 그는 프렌치 퀴진에서의 소스를 음식의 동사 Verb라고 덧붙였다. 복잡한 풍미의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돕는 것도 소스, 엄마가 어릴 적 해준 음식의 맛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소스. 그가 소스를 말하는 순간은 그 단어에 강세가 곱절로 붙어 춤을 추는 듯했다.
그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프랑스 요리 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요리는 카렘, 에스코피에 등 유명 셰프들에 의해 발전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스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소스는 요리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요리의 우수함을 만들고 유지한 것은 소스 덕분”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경제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고, 뚱뚱한 체형이 각광받던 19세기와 달리 날씬한 체형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냉장과 유통의 발달로 신선한 식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따라 1970년대에는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는 누벨 퀴진이 등장하게 되었다. “70년대는 너무 변화를 추구했어요. 무엇이든 극단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은데, 그런 시기였죠.” 누벨 퀴진은 전통적인 프랑스 퀴진에 다양성을 부여했다는 장점에 반해, 그 단점도 매우 선명했다. 채소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육류를 쓸 때보다 풍미가 떨어졌고, 적은 양의 재료를 대충 조리해서 비싼 값에 파는 셰프도 늘어났다. 게다가 국경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통 소스가 아닌 간장이나 피시 소스 등 아시아식 소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즉 전통을 등지고 새로움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한 누벨 퀴진에 반해 요즘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다시 전통의 소스를 중시하는 클래식으로 돌아가자는 것. 그리고 그 선두에는 다름 아닌 야닉 알레노 셰프가 있다. 그렇다면 소스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일반적으로 소스는 한 냄비에 모든 재료를 넣고 높은 온도에서 장시간 끓인 뒤, 다시 건더기를 거르고 끓여 농축시켜 만든다. 하지만 이 경우 식재료 본연의 맛과 질감이 망가질 수 있다. 그는 이런 단점을 인지하고 총 2년에 걸쳐 새로운 소스 개발에 착수했다.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 당근, 양파 등 식재료마다 적합한 조리 시간, 온도를 찾아 수비드 Sous-vide해요.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을 다시 한데 넣고 섞어 끓이면 무용지물이잖아요. 그래서 조리한 농축액을 끓이는 대신 압축하여 얼리는 저온 농축 (Cryoconcentration) 과정을 택했죠. 이 과정을 통해 끓이는 것과 동일하게 꼭 필요한 요소만 남고 압축시킬 수 있어요.” 이렇게 완성된 각각의 압축액을 원하는 레시피에 따라 더하면 야닉 알레노식 소스가 만들어진다. 특허를 받기도 한 그의 방식은 식재료를 층층이 쌓아 만드는 테린 Terrine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렇게 만든 소스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 소금과 지방을 줄이는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소스의 역사에서 획을 긋는 발명이 아닐 수 없다. “소스를 개발하는 것은 프렌치 퀴진을 재탄생시키는 것과 같아요.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시작이죠.” 그런 그의 철학과 발명이 담긴 요리를 서울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마주한 엄청난 행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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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 알레노 셰프에게 몇가지 짧은 질문을 더 물었다. 요리 외 관심 있는 분야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이우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심플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라이벌로 느끼는 셰프가 있는가? 비즈니스는 알랭 뒤카스. 요리적인 측면에서는 조엘 로부숑. 셰프로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캐릭터. 자신의 색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식재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맛을 지닌 것은? 셀러리. 그 자체로 끓이면 굉장히 불편한 맛이 나는데, 내가 개발한 방식으로 소스를 뽑았더니 상당히 가볍고 먹기 쉬웠다. 두 가지 맛의 간극이 컸다. 한마디로 어메이징했다. 한국에서의 첫 공식 일정은? 5월 중순에 갈라디너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