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스타 셰프의 음식을 모두 모아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페어가 열렸다.
미식이 생존의 수단을 넘어 하나의 놀이로써 기능하는 시대다. 먹방, 혼밥, 모던 한식, 유기농까지. 늘어나는 관심에 비례해 입에 오르내리는 미식 키워드도 늘어났지만, 몇 년째 사그라들지 않는 트렌드는 ‘레스토랑 편집’이다. 서울권 유명 맛집을 모두 모아놓은 백화점 프리미엄 식품관부터 수십 년 된 노포 입점까지 성공시킨 스타필드몰까지 몇 년간 수많은 맛집이 오려지고 붙여지길 반복했다. 의정부 평양면옥까지 몰에 입점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새로운 편집은 없을 거라 생각하던 찰나 ‘미쉐린 가이드 고메 페어 2017’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히야, 이렇게도 모일 수 있구나. <미쉐린 가이드>야 워낙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이드북이지만, 그 책에 선정된 레스토랑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다. 유현수, 강민구, 어윤권, 장명식, 김성일…. 한국의 미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셰프들의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사람의 감각과 취향이 배제될 수 없는 리스트 선정에 있어 그 논란은 꾸준했고 앞으로도 여전할 테지만, 어마어마한 편집으로 구성된 ‘미쉐린 가이드 고메 페어’를 찾은 이들은 에디터를 포함해 마냥 행복했다. 10월 28, 29일 ‘미쉐린 가이드 고메 페어’가 열렸다. 말 그대로 <미쉐린 가이드 2017>이 선정한 국내의 유명 레스토랑이 처음 한자리에 모여 대표 메뉴를 선보였다. 총 4개의 존으로 구성된 고메 페어는 레스토랑 부스가 들어서는 고메존, 음식을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된 다이닝존, 다양한 의식주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입점한 마켓존 등의 테마 공간으로 꾸며졌다. 고메 페어의 하이라이트인 고메존에서는 라연, 랩24, 류니끄, 유유안, 밍글스, 수마린, 리스토란테 에오, 테이블 포포, 부아, 역전회관 등 <미쉐린 가이드 2017>에 등재된 20여 개의 레스토랑이 참여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를 선보였다. 에디터도 행사장을 살살 돌아다니며 총 네 끼에 걸쳐 테이블포포와 랩24, 라연, 역전회관, 류니끄, 다담, 수마린, 라미띠에, 유유안, 플라워차일드, 마누테라스, 주옥의 음식을 먹었고, 결국 과식하고 말았다.
페어에 참여한 셰프들과 사람들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라미띠에의 장명식 셰프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모두 즐길 수 있는 페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사전 예약 판매가 진행되다 보니, 서로 부담이 없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라연의 김성일 셰프도 “주방 안에서 요리를 하다 보니 손님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 페어를 통해 대중과 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몇몇 레스토랑들은 한 시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내에 음식이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알다시피 <미쉐린 가이드>는 1889년 프랑스 중부의 클레르몽 페랑 Clermont-Ferrand에서 앙드레 Andre와 에두아르 Edouard 미쉐린 형제가 미쉐린 타이어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의 프랑스 자동차는 고작 3000대에 불과했고 도로 여건도 좋지 않아 운전이 모험이던 시절이었지만, 미쉐린 형제는 타이어 교체법, 주유소 위치, 여행 중 들릴 수 있는 레스토랑, 좋은 숙소 등의 정보를 담은 책자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것이 <미쉐린 가이드>의 탄생이다. 현재는 총 26개국에서 28개의 가이드북이 발간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미식 가이드북으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2회 차. 아직 초반이다 보니 분명 몇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불을 사용함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장소 선정이었지만, 행사가 열린 용산 아이파크몰 풋살 경기장이 실외였기에 행사가 날씨에게 한마디로 휘둘렸다. 첫날에는 햇빛이 뜨겁다 못해 따가웠고(빛을 막아줄 그늘막도 부족했다), 둘째 날에는 부스의 엑스 배너가 뒤집힐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입장권의 존재 필요성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과 각 부스별 브레이크 타임의 정적을 메꿔줄 이벤트는 다소 부족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탄탄한 라인업에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행사임에 틀림없었다. 내년에는 좀 더 밀도 있게 단단해진 고메 페어이기를. 미쉐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막강한 편집에,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