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요리에 미쳐 한 달을 취해 지냈다. 뭐가 시작이었을까? 아, 그래. 그놈의 마라롱샤.
사천 요리 좀 한다는 대림동 기와집(02-845-3055)에서 엄마표 위생장갑을 끼고 시뻘건 양념이 묻은 가재 대가리를 쭉쭉 빨아가며 먹었던 그 요리.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감춰진 촉촉한 가재 살을 입에 넣고 우물대다가 바로 얼음장 같은 칭타오 한 잔. 캬아. 여름에 꼭 어울리는 맛을 찾았다고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녔더니 누군가는 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먹던 거?” 민물가재인 ‘롱샤’를 마라 소스에 볶아낸 마라롱샤는 새우보다는 고급스럽고, 랍스터보다는 저렴한 대중 요리다. 본고장인 사천 성도에서는 거의 치킨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다. “저녁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실 때 꼭 찾는 메뉴 중 하나죠. 맥주와 궁합이 특히 좋은데, 사천 마라의 시원한 맛과 맥주의 상쾌함의 조화가 무척 잘 어울려요.” 청담동의 사천 요리 레스토랑 파불라(02-517-2852)의 소리강 부주방장이 제보했다.
마라 麻辣는 사천을 대표하는 향신료인 화자오와 고추를 사용해 얼얼한 맛과 매콤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사천의 요리를 단순히 ‘매운 것’으로 치부하기엔 그 맛의 세계가 무척 깊고도 광활하다. “사천 사람들은 맛을 매콤한 맛 辣, 얼얼한 맛 麻, 신맛 酸, 단맛 甛, 짠맛 咸, 쓴맛 苦, 고소한 맛 香의 총 7가지로 구분하며, 각각의 맛을 조화시켜 조리하는 데 뛰어나요.” 소리강 부주방장이 자부심 있게 덧붙였다. 특히 중국에는 ‘음식과 약의 근원은 하나’라는 개념이 깊게 자리잡았기에, 덥고 습한 날씨의 사천 사람들은 음식에 각종 한약재를 듬뿍 써서 지친 몸을 보한다. 즉, 사천 요리를 싸구려 매운 음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말씀. 한약재를 넣어 든든하게 만든 파불라의 마라롱샤를 거쳐 오직 마라롱샤 하나로 승부를 보는 건대 입구의 해룡마라룽샤(02-462-4009)까지. 사천의 미식을 즐기러 서울 전역을 떠돌던 입맛은 매일 쓰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들어야 했다. 아, 참고로 마라룽샤가 아닌 마라롱샤가 맞다. 서울 곳곳에 두 단어가 난무하고 있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