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작물로 셰프가 개발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도시형 장터 마르쉐@의 씨앗밥상이 16번째를 맞이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밍글스의 강민구, 주옥의 신창호, 오프레의 이지원 셰프가 준혁이네 농장 이장욱 농부가 재배한 채소로 다채로운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월 7일 청담동의 컨템포러리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 ‘밍글스’에서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차리는 마르쉐@의 16번째 씨앗밥상 행사가 진행됐다. 밍글스의 강민구, 코리안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주옥’의 신창호, 컨템포러리 프렌치 레스토랑 ‘오프레’의 이지원 셰프가 남양주 ‘준혁이네 농장’에서 정성껏 기른 채소를 활용해 코스 메뉴를 선보였다. 남양주시 도농역 근처에 위치한 준혁이네 농장은 25년간 근교 농업의 길을 걸어온 이장욱 농부의 농장이다. 2012년 마르쉐에 참가한 뒤 다품종 소량생산,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무경운 방식으로 농법을 전환해 현재 700여 평의 하우스에서 200여 가지의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마르쉐@에서 만난 셰프들에게 식자재를 공급할 뿐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셰프들이 직접 작물을 기르고 수확할 수 있는 ‘쉐프스팜’ 시설을 조성하여 공동 운영하고 있다. 즉 준혁이네 농장은 댄 바버 셰프의 블루힐처럼 한국형 팜투테이블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준혁이네 농장은 행복주택, 신혼희망주택에 의한 개발 논의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십수년간 가꾸어온 농지를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농부를 위해 셰프들은 채소를 주제로 행사 메뉴를 선보였다. 채소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나날이 각광받고 있다. 건강과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건강한 채소의 자연스럽고 신선한 맛을 즐기려는 문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식의 주재료인 우리나라 채소는 생각보다 품질과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요리는 빈부 격차가 없잖아요. 그런데 해외 생활을 해보니 요리에 빈부 격차가 있더군요. 그 차이는 재료에서 나요. 해외의 유명 식당과 한국 식당에서 쓰이는 재료, 특히 채소의 품질 차이가 상당히 크더라고요.” 강민구 셰프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특히 채소는 유통 과정이 긴 편이라 도소매를 거치는 사이 맛이 많이 변할 수밖에 없다. 서울 근교의 농장에서 갓 딴 채소를 맛본 셰프들이 그 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6번째 씨앗밥상은 ‘오직 채소로 만든 코스 요리’로 준비됐다. 이장욱 농부가 농장에서 갓 따온 비트, 미즈나스, 에그플랜트 등의 신선한 채소를 판매하는 시간을 가진 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새의 정경화 대표와 3년째 마르쉐@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재일교포 3세 김수향 씨 그리고 준혁이네 농장 이장욱 농부의 인사말이 진행됐다. 이와 동시에 채소를 주제로 한 진귀한 코스 메뉴가 테이블 위에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뿌리채소 응이와 무화과 타르트, 준혁이네 채소 타코 같은 한입 요리로 시작된 코스는 채소 미역국수, 호박선과 호박증편, 호박꽃튀김과 감자 밀푀유, 백화과 라비올리와 어니언 크림, 볼오방 등의 메뉴로 이어졌다. 행사에 참여한 손님들은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채소만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요리가 탄생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행사의 끝에서 이장욱 농부는 “현재는 외국 채소를 중심으로 재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만의 채소를 재배하려 한다”며 “차이니스 캐비지가 코리안 캐비지로 불릴 수 있도록 한국 채소의 세계화에 힘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있다. 훌륭한 음식은 셰프가 만들지만 좋은 재료는 농부가 키운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셰프뿐 아니라 농부에 대한 후원과 관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아침에 갓 따온 준혁이네 농장의 채소들.
(왼쪽부터)강민구 셰프, 이장욱 농부, 신창호 셰프, 이지원 셰프.
채소를 타코에 응용한 메뉴는 큰 호응을 얻었다.
준혁이네 농장의 이장욱 농부.
메뉴를 준비하는 신창호, 이지원 셰프의 모습.
수카라 김수향 대표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준혁이네 농장의 시작을 함께한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코스 요리를 하나씩 맛보며 채소의 참된 맛을 음미했다.
각종 버섯으로 만든 ‘호박꽃튀김과 감자 밀푀유’와 ‘백화과 라비올리’, ‘호박선’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