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지금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다.
조금 전에는 우아하게 양고기 스테이크를 썬 뒤 볼랭저 한 모금을 들이켰고 SN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양고기 JMT’. 1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피에르 가니에르에 들렀다. 한 시간 내로 식사가 가능하다는 비즈니스 런치 메뉴를 먹기 위해서다. 으레 전통적인 프렌치 코스는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피에르 가니에르는 종로 일대 직장인을 위해 현실적인 코스를 짜냈다. 밥을 먹는데 옆 무리의 시선이 느껴진다. 딱히 신경 쓰지는 않는다. 메뉴를 주문하는 것부터 레스토랑을 떠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다. 고기를 씹다가 문득, 처음으로 혼밥 했던 날을 떠올렸다. 난생처음 타인 없이 혼자서만 밥을 먹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그 첫 장소는 인도 레스토랑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기억한다. 그 안으로 간신히 몸을 밀어넣고는 레스토랑 한가운데 앉아 고개를 박고 커리를 먹었다. 맛은 최악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뻣뻣하게 굳은 혀는 이미 판단을 포기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디저트로는 가스활명수를 먹었다. 비에 축축히 젖은 낙엽으로 거리가 더럽혀져 있던 20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그 뒤에도 틈만 나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20대의 절반 이상을 한 남자와 함께했다. 7일 중 6일을 만날 정도로 많은 시간을 공유했고, 수많은 외식은 대부분 그 사람과 했다. 라면 하나에도 행복했지만, 정작 혼자 남겨질 땐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약속이 없었던 언젠가, 집에서 홀로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는데 무척이나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혼자서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할까? 하루는 내 것인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쓰지 못할까? 그때부터 그렇게 싫어했던 혼밥을 연습했다. 나는 나로서 홀로 서고 싶었다. 내 시간을 오롯이 점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파인 다이닝에서 홀로 식사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