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술은 인생에 윤활유가 된다. 문제는 적당히가 안 된다는 것뿐. 그래서 요즘엔 절제를 위해 선술집에 다니고 있다.
선술집. 말 그대로 서서 마시는 술집을 뜻한다. 지금은 그 의미가 바뀌었지만, 목로라는 나무 탁자를 두고 서서 소소한 안주에 술잔을 기울이던 우리 고유의 술 문화다. 요즘 푹 빠진 선술집은 을지로에 위치한 ‘스탠딩바 전기(070-8840-8000)’다. 파스타나 카르파치오 같은 편안한 음식에 리몬첼로, 하이볼, 일본의 본격소주 같은 것을 파는데 이름처럼 서서 먹는다. 안주 가격은 1만원 후반대, 잔술은 1만원 안팎, 음악은 올드팝이나 김건모 같은 것을 틀어준다. 잔뜩 폼을 잡고 멋 부리는 술집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냥 편안하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볼로냐 대학 앞의 서서 마시는 바들이 기억이 나요. 대학생들이 집에 가기 전, 동전 1유로에 한 잔 마시고 가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일본에서는 선술집을 다치노미라고 하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허울을 벗고 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참 좋았고요.” 해외의 수많은 선술집을 다니며 먹고 마셨던 김현기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서서 마시는 것은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바에 서서 일본 소주인 무기시루를 마시며 그 맛을 감탄하는 순간에도, 몇몇 사람이 그냥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의자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하면서 말이다. “초창기에는 손님 열 명 중 일곱 명은 들어왔다 그냥 나가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나머지 세 분을 우리 가게의 팬으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충분히 그럴 만한 재미가 있는 곳이라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그리고 에디터 역시 그 세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니 다리에 조금씩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만 마실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깔끔하게 계산한 뒤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가 차다. 오늘도 딱 기분 좋게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