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자신이 먹은 음식의 원재료를 석고 조각으로 복원하는 작가가 있다. 작가 이타마르 길보아는 음식이 예술이 될 수 있고, 그 예술이 다시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음을 작품을 통해 시사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 SNS에 올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인증샷을 남기기 시작하자, 음식점에서는 맛보다는 예쁘거나 특이한 형태의 음식과 테이블 세팅을 준비하며 홍보 효과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냥 먹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음식이 넘쳐나니, 이제는 SNS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딱히 찍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그냥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었다. 음식이 먹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된 시대, 이타마르 길보아의 작품은 우리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먹은 모든 음식을 기록하고 그것의 원재료를 복원해낸다. 피자를 먹었다면 밀가루, 토마토, 올리브오일 등을 제시하는 셈이다. 각각의 음식 재료는 석고 조각으로 만들어지는데, 식빵의 고슬고슬한 표면까지 섬세하게 재현된 이미지를 보면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물을 그대로 뜨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만든 모형을 다시 석고로 뜬다고 한다. 대부분 본래의 색을 잃고 흰색으로 처리되고, 병이나 가공식품의 경우 라벨의 글씨는 새기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제품의 형태와 정교함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가공식품의 경우 ‘케첩’이라는 말이 쓰여 있지 않고 병의 형태만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있는 식이다. 전 세계 사람들 누구나 사과를 보고 사과라는 것을 인식하듯,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떤 병이 케첩인지, 간장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글로벌 경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성을 보다 사회적인 이슈로 끌고 나아간다. 수많은 음식이 소비되고 건강과 비만을 염려하는 대륙 너머에서는 환경문제와 기아대책을 논하는 아이러니한 시대, 작가는 전시를 통해 생긴 수익의 일부를 식량문제를 다루는 NGO에 기부한다. 이러한 순환 방식에 작가는 ‘먹이사슬프로제트(FCP, Food Chain Proj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먹은 음식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판매가 되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다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얼마나 많은 음식이 소비되고 버려지는지를 통계화하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등의 프로젝트에서 특별전 작가로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미 400년 전에 음식을 그림으로 남겼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음식은 무역이 활발하던 시대, 네덜란드 상인들의 부유함을 추측하게 하는 흔적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문구처럼, 마치 슈퍼마켓 진열대처럼 혹은 아카이브 유물처럼 전시된 작품을 통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한 40대 남성의 1년간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작가라면 각각의 원재료를 보며 그가 먹었을 음식의 레시피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긴 오늘의 작은 활동,내가 먹은 하루의 음식이 쌓이다 보면 지구의 역사를 바꾸는 어떤 행동이 될 수도 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난히 소비가 증가한 닭고기 이슈다. 인류는 한 해 600억 마리의 닭을 소비하고, 그 닭뼈는 고스란히 지구에 남아 지질층을 형성할 지경에 이르렀다. 곤충, 어류, 공룡 등이 지구에 남긴 흔적을 보고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나누었듯이 방사능 물질, 플라스틱, 콘크리트 그리고 닭뼈가 남긴 흔적은 이 시대가 무엇보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지구가 바뀌어가는 시대임을 증빙하는 셈이고, 그것을 ‘인류세 人類世’로 기록하자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작품은 10월 9일까지 경기도 화성 엄미술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