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면서도 알싸한 향신료의 맛을 살려 한국인의 입맛에도 익숙한 스페인 요리.
화려하고 풍미 가득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 세 곳을 다녀왔다.
낯설지만 친근한 맛, 엘쁠라또
광화문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스페인 레스토랑 엘쁠라또가 지난 5월, 도곡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에 와인 한잔하며 스페인 음식의 풍미를 느껴볼까도 했지만, 점심 시간에 찾은 엘쁠라또는 양재천의 가을 햇살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완벽했다. 굴튀김과 가지구이를 비롯해 1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애피타이저와 5개의 메인 메뉴로 구성되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우리는 3가지 애피타이저와 메인 메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런치 2인 세트를 주문했다. 우선 시저 드레싱을 베이스로 구운 로메인에 하몽을 올린 첫 번째 메뉴는 입안을 한층 신선하게 만들어줬다. 접시에 소복이 눈이 쌓은 듯한 두 번째 메뉴는 치즈를 가득 덮은 시그니처 가지구이다.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치즈와 따뜻하게 조리한 가지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트러플을 가득 올린 토스트는 허기진 배를 좀 더 채워줬다. 메인 요리로는 오늘의 파스타를 선택하고, 제주 옥돔구이를 추가로 주문했다. 평소 보았던 해산물 파스타와 비주얼은 비슷했지만, 마라 향신료처럼 강렬하게 혀끝을 때리는 새우 파프리카 소스로 홀린 듯 계속해서 손이 갔다. 마지막으로 맛본 음식은 대구 곤이 퓌레를 더한 제주 옥돔 요리. 입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겉면의 비늘을 살짝 남겨 바삭하게 튀겨냈는데,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식감을 제대로 살려 매우 만족스러웠다. 또 담백하면서도 녹진한 곤이 퓌레로 깊은 풍미를 더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여유로운 주말 점심을 만끽하기에 완벽했다. 다음에 또 방문한다면 해가 저물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 기울여봐도 좋겠다. INSTAGRAM @elplato.spanishfood삼각지의 작은 타파스 바, 타파코파
지난여름 핫한 삼각지 골목길에 문을 연 타파코파. 저 멀리서도 스페인 음식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이국적인 외관과 내부가 눈에 띄었다. 공간은 크게 테이블 2개와 ‘ㄷ’바 테이블로 구성한 1층과 여럿이 함께 둘러앉는 지하 1층으로 구성되는데, 지하는 와인 보틀 1병 주문이 필수. 4시 30분 오픈에 맞춰 도착했지만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미리 예약한 덕분에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메뉴는 술과 곁들이기 좋은 타파스가 주를 이뤘다. 타파스는 스페인에서 식사 전 술과 곁들이는 전채요리. 보통 작은 접시에 한입 크기로 나오기 때문에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바게트에 대구, 연어, 새우, 초리조 등 다양한 식재료를 올려 먹는 핀초를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이날은 플레이트 위주로 메뉴를 주문하기로 결정. 샹그리아 한 잔과 바칼라오(대구)와 뽈뽀(문어), 가리비 관자 세비체와 레몬 오일을 곁들인 갑오징어, 스페인식 채소 오믈렛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이날의 베스트는 바칼라오! 한입 먹는 순간 부드러운 생대구살이 달달한 꿀토마토소스와 어우러져 눈 녹듯 사라졌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완두콩도 재미를 더했다. 결국 바게트를 추가로 주문해 소스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는 후문. 뽈뽀 또한 왜 그리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됐다. 불에 구운 파프리카와 토마토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로메스코 소스에 쫄깃한 문어 식감이 더해져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바깥이 어둑해질 무렵 환하게 밝히던 내부 조명이 하나씩 꺼지고, 오롯이 술과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느새 내 손에는 다시 메뉴판이 들려 있었다. INSTAGRAM @tapacopa둘보단 여럿이, 레에스티우
서촌에서 스페인 음식으로 유명했던 레에스티우가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고 하지만 치열한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었다. 주문하면 나오는 웰컴 디시를 먹고 빵은 별도로 주문했다. 메뉴는 한우타르타르, 꿀과 대구, 랍스터 관자 빠에야 3가지를 주문했다. 저녁 식사이기도 하고 스페인 음식이니 까바도 한 병 시켰다. 웰컴 디시와 빵은 무난한 맛이었는데, 해산물 빠에야를 고려해 주문한 한우 타르타르는 뚜껑을 열었을 때 꽃 같은 담음새가 예뻐서 기대가 컸지만 아쉬움이 컸던 메뉴였다. 그날 고기의 신선도 때문인지, 노른자와 비벼서 먹었을 때 비린 맛이 강했다. 두 번째로 나온 꿀과 대구는 아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대구살과 꿀과의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달콤하면서 녹진한 맛으로 까바와도 잘 어울렸던 메뉴.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망의 빠에야가 나왔는데 사진을 찍고 나면 랍스터를 정성스럽게 해체해줘 먹기가 편하다. 촉촉하면서 얇게 깔린 빠에야를 한입 먹으니 이전 디시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가셨다. 대체적으로 무난한 맛이었지만 둘이 작정하고 스페인 음식을 먹으러 가기보다 여러 명이 함께 와인도 마시고 다양한 메뉴를 조금씩 맛보면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TEL 02-722-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