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 숨어 있는 맛집 찾는 재미가 쏠쏠한 을지로.
저마다 개성 강한 매력으로 무장한 을지로 맛집에 다녀왔다.
깐깐하게 잘하네, 을지깐깐
을지로가 지닌 낡고 오래됐지만 빈티지한 감성과 푸근함이 잘 어울리는 음식점을 찾았다. 베트남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을지깐깐이다. 평일에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갔는데도 이미 오픈 30분 전부터 입구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착석하는 데까지 4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호명해서 들어가면 바로 문을 닫는데, 그래서 내부가 더욱 궁금해졌다. 을찌깐깐이 위치한 오래된 건물에는 인쇄소 등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순서가 돼서 자리에 앉자마자 게살국수와 공심채 볶음밥, 모닝글로리 고기볶음, 짜조를 주문했다. 빈티지 가구들로 채운 인테리어와 그릇, 메뉴판 디자인까지도 현지의 느낌을 물씬 풍겨 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게살국수다. 돼지뼈와 해산물을 넣고 긴 시간 우려낸 육수에 면과 게살 토핑이 올라간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내겐 꽤 매운 메뉴였고 쪽파의 알싸함까지 더해져 계속 재채기가 나왔지만 자꾸만 손이 갔다. 가장 먼저 나온 모닝글로리 고기볶음도 적당한 기름기와 불 향이 더해져 반찬처럼 즐기기에 좋았다. 시원한 베트남 맥주를 한잔하고 싶었으나 일정이 있어서 망고스틴 주스를 시켰는데, 웬걸! 생각보다 맛있는 조합이었다. 매운 것에 취약한 이들이라면 꼭 함께 주문해볼 것. 을지깐깐의 대표 술안주 메뉴라는 고추뼈찜은 오랜 시간 삶은 돼지뼈와 느억맘 소스의 어울림이 일품이라고 하니 술 한잔할 수 있을 때 다시 간다면 꼭 주문해보고 싶다.
INSTAGRAM @eulji_canhcanh
을지로로 떠나는 일본 여행, 로바타카미
작은 소품 하나까지 로컬 현지를 빼다박아놓은 식당에 약간의 편견이 있다. 맛보다는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려는 심보처럼 보인달까. 외관부터 어느 일본 길거리를 재현해놓은 로바타카미도 조금의 경계심을 가지고 방문했다. 주말의 을지로는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고 찬찬히 외관을 살펴보았다. 로바타카미의 간판 위에는 일본어로 작게 로바다야끼라는 글자가 써 있는데, 숯불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라는 뜻. 사시미류나 튀김류도 있었지만 구이 위주의 메뉴를 주문한 이유다. 모둠 꼬치를 시킬지, 단품 메뉴를 시킬지 고심 끝에 구이로 한정하되 바다와 육지를 고루 공략하는 방향을 택했다.
상큼한 유자사와로 입안을 정리하자 갑오징어구이가 나왔다. 숯불에 구운 갑오징어를 버터에 살짝 볶아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차례로 나온 닭날개 소금구이는 근래 맛본 닭 요리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메뉴. 날개 안쪽 뼈를 발라내 먹기도 편한 데다 짭쪼롬하면서도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육질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곁들임 채소로 주문한 옥수수구이와 토마토구이는 은은한 숯불 향에 달짝지근한 맛이 더해져 더욱 만족스러웠다. 식사의 끝은 역시나 탄수화물. 고등어를 구워 올린 덮밥 사바동과 야끼소바를 추가로 주문했다. 앙증맞은 크기의 고등어구이와 생강초절임을 올린 사바동도 좋았지만 의외로 큰 기대가 없었던 야끼소바의 약진이 돋보였다. 통통한 새우와 큼지막한 돼지고기, 아삭한 양배추, 꼬들꼬들한 면에 소스가 간간하게 스며든 정석 같은 맛이었달까. 식사 중반부터 갖고 있던 경계심이 스르르 풀려버렸던 을지로의 로바타카미. 다음을 기대해도 좋겠다.
INSTAGRAM @robatakami
을지로 심야 식당, 콘부
최근 들어 일본 여행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하게 샘솟고 있다. 당장에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은 곳은 바로 을지로의 작은 심야 식당 콘부. 인스타그램 속 10석 남짓한 아주 작은 공간에서 먹음직스러운 안주와 사케를 즐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부러워 한달음에 달려갔다. 마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안겨주는 콘부의 대표 메뉴는 오뎅 모리와세와 다시마와 조개 육수로 끓인 봉골레 소유라멘이다. 추가로 참깨와 고수를 듬뿍 올린 연두부 요리인 후와후와 토리도후를 곁들임 메뉴로 주문했다.
다소 낯선 이름의 모리와세는 14가지 이상의 재료로 구성된 모둠 요리로 일본식 오뎅과 야채, 스지, 소시지, 닭 날개 등 다양한 재료를 담아낸 메뉴이다. 사실 여러 가지 재료를 맛볼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특별함은 없었지만, 달큰한 무 육수를 베이스로 끓여내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꼭 연겨자를 찍어 먹을 것! 라멘과 봉골레 조합이라는 생소한 구성으로 오뎅보다도 기대가 컸던 소유라멘. 차슈와 계란, 조개, 닭, 죽순 등 알차게 구성된 내용물은 물론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줬다. 특히 큼지막하게 썬 챠슈가 독보적인 비주얼을 자랑해 인증샷을 남기기 좋았다. 이외에도 얼큰한 해장라멘과 감칠맛 폭발하는 마제소바도 인기. 이곳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기나긴 웨이팅이다. 기본 2~3시간의 웨이팅을 감수해야 하는 콘부는 꼭 원격 줄서기 앱, 테이블링을 통해 미리 예약해둘 것을 강력 추천한다. 추위와 맞서 싸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INSTAGRAM @konbu_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