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맛을 구현하는
이충후 셰프의 세 번째 제로 컴플렉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첫 발간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출간한 국가였다. 당시 주목을 받은 셰프 중 한 사람이 별 1개를 받은 제로 컴플렉스의 이충후 셰프였다. 만 서른 살, 국내 최연소 스타 셰프에 이름을 당당히 올린 것.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13년 방배동 서래마을에 문을 연 제로 컴플렉스는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스타일의 다이닝이었다. 까다로운 격식을 갖춘 정찬식 프렌치 대신 편안한 분위기와 신선함을 겸비한 네오 비스트로.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0(제로)’에서 이름을 따온 만큼이나 당시 인테리어도 다소 실험적이었다. 세련된 스테인리스 소재 벽에다 메탈 소재의 테이블과 식기를 사용해 셰프들 사이에서도 주목하는 ‘젊고 힙한’ 레스토랑이었다. 2018년 남산 복합문화 공간인 피크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다채로운 내추럴 와인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로 컴플렉스 10주년을 맞은 2023년, 이충후 셰프는 서빙고동에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팝업 다이닝을 위해 뉴욕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아토보이의 박정현 셰프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거예요.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레스토랑까지 간 그 여정이 굉장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 이전에는 손님이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식사하는 시간만을 생각했는데, 손님이 레스토랑에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다이닝의 시작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공간을 선택한 이유도 있어요.” 실제 제로 컴플렉스를 찾아오기 위해서는 다소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예약 후 받게 되는 안내 문자에는 찾아오는 방법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있다). 주차도 다른 장소에 해야 하거니와, 좁은 골목 언덕길을 굽이굽이 걸어 들어와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골목길 풍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통창 너머로 1층에서는 셰프들이 바삐 움직이고, 2층에서는 손님들이 자리에 앉아 다음 요리를 차분히 기다린다. 낯설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대리석을 쓰되, 곳곳에 제로 컴플렉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한 인테리어는 스튜디오 언라벨과 함께 디자인했다. “20대부터 시작해서 30대를 맞이하고 40대가 되어가면서 마음가짐에 변화가 좀 있었어요. 그동안 (내놓은 요리는) 다소 캐주얼한 요리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정제된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 자신에게도 과제를 준 것 같아요. 테이블도 홀에 3개, 룸에 1개로 4개가 전부예요. 그 덕분에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요리가 제 손을 직접 거쳐 손님 테이블에 오르게 됐죠. 아무래도 디테일적인 면에서는 더 발전이 있지 않을까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충후 셰프의 요리는 꾸준히 심플하다. 최소한의 터치를 통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무심하게 툭툭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각 재료 간의 맛의 조화가 무척이나 섬세한 것이 특징. 그 맛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식재료의 퀄리티다. 전남 구례와 베짱이 농부, 이 두 곳의 농장에서 식재료를 받는데 독특한 점은 따로 수량을 주문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농장에서 매주 두 번씩 가장 좋은 상태의 채소를 무작위로 받기 때문에 그날 어떤 채소가 얼마나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예를 들면 생선 위에 올리는 허브가 점심과 저녁에 다를 수도 있는 거죠. 얼마 전 일본에서 손님이 왔는데, 제 음식 맛을 보고는 ‘전반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음식인 것 같다’는 평을 해주시더라고요. 요즘 세상이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 다소 무리를 하는 경향이 많으니까요. 쉽게 예를 들면 채소의 맛이 다소 부족할 때 그 부족함을 채우거나 감추려고 다른 요소를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냥 그 부족함을 억지로 채우지 않아요. 그래서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죠.”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변하는 다이닝 신에서 오랜 시간 꾸준하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색깔’이라 말한다.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목소리와 고집을 밀고 나가는 것. 그 색깔을 알아보는 손님들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트렌드를 만들어온 그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레스토랑의 형태다. “이전에는 레스토랑이 식사하는 손님들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이외에도 충분히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어요. 제로 컴플렉스라는 레스토랑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 장소에 한정돼서 얽매이고 싶지는 않아요. 외부와의 협력이나 행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서울 전체가 될 수도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