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향 가득, 우드 파이어

불 향 가득, 우드 파이어

불 향 가득, 우드 파이어

깊은 풍미와 독특한 맛을 내는 우드 파이어 레스토랑. 불 향 가득한 미식의 세계로 초대한다.

감칠맛 넘치는 모던 홍콩 퀴진, 금탄3.0

홍콩식 비풍당 새우

판교에서 핫한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던 금탄3.0이 서울 삼성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광둥식 요리와 일본의 조리법을 더한 금탄만의 모던 홍콩 퀴진을 고수하면서도 더욱 정갈해진 메뉴와 프라이빗한 인테리어로 새롭게 변화를 줬다. 낮은 조도의 고급스러운 다이닝 공간에는 주방의 작은 동작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오픈 키친이 있어 흥미롭게 미식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름철이라 특히 구미가 당긴 줄전갱이 라임 셔벗 세비체를 시작으로 숯불에 구운 XO 가리비와 오리 가슴살 등을 주문했다. 얇게 저민 줄전갱이는 라임과 오이를 이용해 만든 셔벗이 상큼함을 느끼게 해줘 스타터로 제격이었다. 인기 메뉴인 XO 가리비는 은은한 숯 향에 마늘과 XO 소스, 녹진한 치즈 소스 등 숙성된 소스가 다채롭게 더해졌다. 당면도 같이 구워져 나왔는데 소스와 어우러져 숯불의 풍미가 가득하니, 우드 파이어 퀴진임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참숯에 구운 오리 가슴살은 최상급 주원산 오리를 일주일 동안 염지하고 에이징해 굽는다. 곁들일 수 있는 고추는 브륄레를 만들 듯이 토치로 열을 가해 매콤한 향이 솔솔 풍기면서도 중독적인 달콤함이 있다. 아늑한 공간에서 숯불의 야성이 느껴지는 요리를 맛볼 수 있으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홍콩의 로컬 음식인 ‘비풍당’의 느낌을 살린 홍콩식 비풍당 새우는 뜨겁게 튀겨져 나온다. 새우를 발효 콩 소스로 매콤하게 튀긴 뒤 각종 채소와 마늘을 볶아 감칠맛을 높였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주방 한쪽에선 캠프 파이어하듯 불이 활활 타올랐다. 조명이 어둡게 깔린 공간에 따뜻한 불과 숯이 피워내는 향이 가득 차니 눈과 입의 감각을 자극하는 묘미가 있다. 이번 새 업장은 주류 주문 없이도 편하게 들를 수 있으니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권하고 싶다.

INSTAGRAM @geumtan_3.0

와인과 즐기는 스모키 앤 칠, 내추럴하이

토시살 스테이크와 새우 프레골라

녹사평역에서 내려 남산 쪽으로 쭉 걸어 올라오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의 식당 입구를 마주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와 유리, 나무, 식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내추럴하이의 외관. 몇 년 전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가 인테리어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곳은 멋스러운 공간만큼이나 음식에도 진심이다. 낮에는 브런치 카페로, 오후 5시 이후에는 우드파이어 그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와인 바로 운영 중이다. 저녁 메뉴로는 콜리플라워 구이와 알배추 구이처럼 가벼운 음식부터 양갈비 구이, 토시살 스테이크 같은 무거운 음식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사워도우&버터와 콜리플라워 구이, 새우 프레골라, 토시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뒤쪽 주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장작불 위에서 하나둘 구워지고 있는 재료들을 보고 있노라니 굉장히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나온 따끈따끈한 사워도우를 뜯어 입안에 넣었다. 시큼한 맛에 스모키한 풍미가 입혀져 깊은 감칠맛이 느껴졌다. 맛있다는 말이 새어나왔다. 뒤이어 나온 콜리플라워 구이는 완두콩 퓌레와 잘게 썬 블랙 올리브가 함께 곁들여 나왔다. 채소가 이렇게 맛있다면 편식하는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장작불에 구운 새우와 똠얌을 곁들인 프레골라 파스타는 기대에 부합하진 못했지만 이국적인 풍미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토시살 스테이크에는 살라피뇨 살사와 케슈넛 퓨레, 감자를 얇게 쌓아 올려 구운 밀푀유가 곁들여졌다.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감자 밀푀유가 의외의 수확이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부터 주류 리스트도 꽤나 다채로워 어느 누구와 함께 와도 만족스러울 듯하다.

INSTAGRAM @naturalhigh_seoul

장작불로 입힌 불 향, 당스

프렌치 치킨 토스트

옛 구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와 레스토랑이 가득한 신용산. 그중 골목 안쪽에 자리한 당스는 장작불을 이용한 우드파이어 다이닝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낮에는 브런치 레스토랑, 저녁에는 와인 바로 운영 중인데, 테이블이 많지 않아 예약은 필수다. 오픈 주방이라 화덕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작은 화덕에서 1차로 구운 뒤, 바로 옆 그릴에 올려 불 향을 입힌다. 대표 메뉴인 새우구이와 갑각류 라구 파스타는 큼지막한 새우 두 마리가 올라간 비주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기 대신 갑각류로 만든 라구라 화이트 와인과 어울리는 담백한 맛이다. 옴폭한 콘킬리에 면에 가득 녹아든 훈연 모차렐라 치즈의 불 향도 좋았다. 새콤한 치미추리 소스를 함께 주는데, 독특하게 고수를 넣어 만들었다. 식초의 톡 쏘는 맛과 고수의 상큼한 맛이 어우러지며 파스타와 곁들이기 좋았다. 또 다른 대표 메뉴, 프렌치 치킨 토스트는 달걀에 폭 적신 빵 사이에 매콤한 양념 치킨과 화이트 바비큐 소스, 오이 피클을 넣었다. 빵 위에 설탕을 뿌려 크림 브륄레처럼 겉을 바삭하게 구운 것이 특징. 생각보다 더 부드러웠던 식감과 달콤한 맛으로 디저트 느낌이 강했다. 샌드위치보다는 치킨을 곁들인 브레드 푸딩처럼 느껴졌다.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고구마 뇨끼. 감자 대신 호박고구마를 사용한 당스의 시그니처 메뉴다. 개성주악같이 둥근 도넛 형태로 나오는데, 뇨끼 아래에는 달콤한 고구마 무스와 고소한 아몬드 가루를 깔았고, 콜리플라워 피클, 샬롯이 곁들여 나온다. 감자 뇨끼보다 쫄깃함을 덜했지만 군고구마의 훈연향에 이색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간장 베이스 소스로 고구마 맛탕이 생각나기도 했다.

INSTAGRAM @danse.kr

미식의 향연, 로기

발효 양배추

숯에 구운 양갈비

한남동에 숨은 보석을 발견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불의 신을 뜻하는 이름의 로기 Logi는 참나무와 숯을 사용한 우드 파이어 요리와 수준 높은 와인, 감미로운 음악이 어우러진 미식 공간이다. 단순한 식사를 넘어서 불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인 로기는 다양한 훈연 방식으로 조리한 메뉴를 선보인다. 직접적인 불 향을 입히는 방식인 핫 스모킹 Hot Smoking부터 간접 훈연 방식의 콜드 스모킹 Cold Smoking까지, 모든 요리는 세심한 훈연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최고급 비장탄, 말돈 소금, 직접 훈연한 올리브유를 곁들여 깊은 풍미를 더한다. 인테리어 역시 특별하다. 어두운 바탕에 빨간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공간은 붉은 와인과 제격이다. 특히 좁고 밀도 높은 바 테이블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과 코를 자극하는 불 향을 직접 바라보며 이색적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2인 방문 예정이라면 꼭 바 테이블을 추천한다. 로기의 히트 메뉴인 우니 파스타는 발효한 그린 칠리 소스와 훈연한 레지아노 치즈가 더해져 진하고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듬뿍 올린 신선한 성게알은 화이트 와인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쥬시한 레드 와인과도 잘 어울릴 듯. 사이드 메뉴로는 숯에 구운 발효 양배추를 맛봤다. 홍합 소스와 마라유, 고수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크리미한 소스가 발효 양배추와 어우러져 맛의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메인 디시로는 숯에 구운 양갈비를 선택했다. 매콤한 쯔란 소스와 함께 청양고추 페스토와 버섯이 사이드로 올라가 있어 불맛과 향신료가 어우러진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의 끝, 로기의 강력한 한 방이자 하이라이트는 바로 훈연 아이스크림이다. 로기만의 특별한 훈연 감각이 녹아든 이 아이스크림은 스모크 말돈 소금과 훈연 오일이 뿌려져 달콤함과 짭짤함의 조화가 일품이다. 잊지 않고 꼭 주문해보길! 색다른 미식 여행을 떠나게 하는 한남동 로기에서 불과 어우러진 감각적인 조화를 맛보기 바란다.

INSTAGRAM @logi_ha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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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efining Korean Cuis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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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의 10년을 뒤로하고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긴 지 벌써 1년.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세월이 쌓아올린 고민을 요리로 묵묵히 풀어내고 있었다.

다양한 것을 섞고 하나로 만드는 한국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새싹비빔. 하단부에는 두유 크림과 캐비아, 방아 오일을 담고, 접시 벽을 따라 보리 소스와 다양한 허브들을 올린 뒤 마지막으로 토마토 에센스를 뿌렸다.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스와니예 내부 전경.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는 이준 셰프.

국내 파인 다이닝 업계를 논할 때 스와니예의 이준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업계의 선구자로 통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뒤 우리나라 최초로 팝업 레스토랑을 연데다, 2013년 당시 국내에서 전례 없던 카운터(바) 형식의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 셰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형태와 맛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셰프로 정평이 나 있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메뉴는 각각 ‘에피소드’라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요리를 전개해왔다. 이 외에 생면 파스타가 요즘처럼 흔치 않던 2015년에는 생면 파스타 다이닝인 도우룸의 문도 열었다. 이 또한 꾸준히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스테디셀러 레스토랑이다. 서래마을에서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던 스와니예가 지난해 신사동으로 이전을 마쳤다. 때마침 <2023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도 2개 받았다. 이준 셰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이었다. “이전 공간은 지하라는 특성상 그 자체로 제약이 많았어요. 한자리에서 9년 정도 됐을 때 뭔가 변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원하는 레벨로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러한 고민을 담은 스와니예의 새로운 주방은 굉장히 독특하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홀과는 완벽하게 분리돼 있지만, 레스토랑 밖에서는 통유리창을 통해 주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자연 채광에 밝은 조명까지 더해져 마치 실험실이나 애플스토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굳이 식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곳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부러 의도한 것이다.

마치 애플스토어를 연상케 하는 오픈 키친 모습. 레스토랑 앞을 지나가는 누구나 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해녀가 잡아 올린 전복을 다시마로 부드럽게 쪄낸 뒤 까치버섯과 곁들인 전복과 김. 아래에는 대파-리크 볶음과 함께 곁들였다.

프랑스 디저트인 바바오럼에서 영감을 받아 메밀향 가득한 바바를 콤부차 시럽에 적셔 만든 디저트. 메밀 아이스크림과 훈연 크림을 함께 곁들였다.

“스와니예를 처음 연 10여 년 전에 비하면 국내 다이닝 문화가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요리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다수가 잘 알고 있고, 또 이곳을 찾을 정도면 분명 다이닝 경험이 최소 한두 번은 있으리라는 전제가 있었죠. 그래서 손님 앞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대중이 원한다면 누구나 쉽게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쏟아넣고 있는지는 알려주고 싶었어요.” 공간이 바뀌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담아온 고민이 하나둘씩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래전부터 스와니예는 ‘컨템퍼러리 퀴진 오브 서울’ 즉 지금의 서울 음식을 한다고 설명해왔다. 이준 셰프의 눈으로 해석한 도시 서울은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느라 극적인 요소가 다소 많았다. 그 강도는 점점 세졌다. 자연스레 조금씩 지쳐갔다. 결국 스와니예의 음식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좀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인문학적으로 음식을 풀어내고 싶었어요. 사실 한국적인 것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굳이 그걸 정의하는 것도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장이나 발효 같은 1차원적인 맛을 차용하기보다는 무엇이 한국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늘 고민해왔어요. 이민 온 외국인도 한국에서 몇십 년씩 먹고살면 한국 사람 다됐다고 하잖아요. 왜 한국 사람들은 둘이 오면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고, 무엇이든 비비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그런 행위들부터 찬찬히 생각해본 거죠.”

키친에서 홀로 향하는 통로.

뉴욕의 아토믹스, 리움미술관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스튜디오 라이터스와 공간 작업을 했다. 서래마을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온 동지이기도 하다.

새싹비빔은 그런 고찰이 잘 담긴 메뉴다. 하단부에는 두유 크림과 방아 오일, 캐비아가 담겨 있고, 접시 벽을 따라 다양한 허브와 보리 소스가 붙어 있다. 숟가락을 사용해 아래서부터 뜨게 되면 각기 다른 층에 있던 재료들이 한데 섞인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 여기면서 새로운 맛을 조합해내는 한국의 문화를 담은 것. 최근에는 유독 한국 문화권에서 짙은 반찬 개념을 도입했다. 디너 메인 메뉴를 보조하는 반찬 3가지가 함께 곁들여 나가는데, 구태여 한국의 맛을 내진 않는다. 다만 그 문화를 차용했을 뿐이다. “이전에는 흥을 위한 소설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일종의 연구기록이자 에세이에 가까워요. 문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저도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계속 글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음식은 영화나 음악과는 달리 평가와 감상만 있을 뿐 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직업군이 없거든요. 제가 말을 안 하면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없어요.” 스와니예에선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봉투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빽빽한 손글씨로 쓴, 무려 4장에 달하는 메뉴 설명서다. 여기에는 그가 각각의 메뉴를 만들며 고민한 시간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메뉴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또 이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오픈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 없이 직접 작성해온, 손님들을 향한 러브레터인 셈이다.

2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서 2스타를 획득한 스와니예.

마지막으로 ‘요즘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공장’이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국내 캐주얼 다이닝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안정화시킬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도우룸을 운영하고 있지만 생면 파스타가 4만~5만원씩 하는 건 잘못됐어요. 어떻게 하면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내릴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죠. 요즘 한국 음식은 양극화가 너무 심해요. 한우에도 수많은 등급이 있는데, 투뿔 한우 아니면 돼지고기죠. 저렴한 음식을 고급으로 만들거나, 고급 음식을 더 저렴하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은 돼지곰탕집 옥동식을 보세요. 이런 노력들이 한국 음식 문화 전반에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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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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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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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맛을 구현하는
이충후 셰프의 세 번째 제로 컴플렉스.

단새우 위에 루바브 피클과 꿀식초 젤리를 섞어 올린 아뮤즈 부쉬. 위에는 루바브로 만든 폼과 여러 가지 허브를 올렸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제로 컴플렉스의 외관. 크게 1층의 키친과 2층의 홀로 나뉜다.

스튜디오 언라벨과 함께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내부 곳곳에 제로 컴플렉스의 정체성과도 같은 스테인리스 소재를 녹여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첫 발간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출간한 국가였다. 당시 주목을 받은 셰프 중 한 사람이 별 1개를 받은 제로 컴플렉스의 이충후 셰프였다. 만 서른 살, 국내 최연소 스타 셰프에 이름을 당당히 올린 것.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13년 방배동 서래마을에 문을 연 제로 컴플렉스는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스타일의 다이닝이었다. 까다로운 격식을 갖춘 정찬식 프렌치 대신 편안한 분위기와 신선함을 겸비한 네오 비스트로.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0(제로)’에서 이름을 따온 만큼이나 당시 인테리어도 다소 실험적이었다. 세련된 스테인리스 소재 벽에다 메탈 소재의 테이블과 식기를 사용해 셰프들 사이에서도 주목하는 ‘젊고 힙한’ 레스토랑이었다. 2018년 남산 복합문화 공간인 피크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다채로운 내추럴 와인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로 컴플렉스 10주년을 맞은 2023년, 이충후 셰프는 서빙고동에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색깔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이충후 셰프.

레몬 커드를 채운 머랭 쁘티푸가 식사의 끝을 알린다. 위에는 라임 제스트를 올렸다.

“팝업 다이닝을 위해 뉴욕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아토보이의 박정현 셰프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거예요.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레스토랑까지 간 그 여정이 굉장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 이전에는 손님이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식사하는 시간만을 생각했는데, 손님이 레스토랑에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다이닝의 시작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공간을 선택한 이유도 있어요.” 실제 제로 컴플렉스를 찾아오기 위해서는 다소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예약 후 받게 되는 안내 문자에는 찾아오는 방법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있다). 주차도 다른 장소에 해야 하거니와, 좁은 골목 언덕길을 굽이굽이 걸어 들어와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골목길 풍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통창 너머로 1층에서는 셰프들이 바삐 움직이고, 2층에서는 손님들이 자리에 앉아 다음 요리를 차분히 기다린다. 낯설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대리석을 쓰되, 곳곳에 제로 컴플렉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한 인테리어는 스튜디오 언라벨과 함께 디자인했다. “20대부터 시작해서 30대를 맞이하고 40대가 되어가면서 마음가짐에 변화가 좀 있었어요. 그동안 (내놓은 요리는) 다소 캐주얼한 요리에 가까웠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정제된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 자신에게도 과제를 준 것 같아요. 테이블도 홀에 3개, 룸에 1개로 4개가 전부예요. 그 덕분에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요리가 제 손을 직접 거쳐 손님 테이블에 오르게 됐죠. 아무래도 디테일적인 면에서는 더 발전이 있지 않을까요?”

팬에서 익힌 덕자병어. 수비드로 익힌 닭가슴살과 채소 라비올리, 파프리카 퓨레를 곁들였다.

테이블의 개수를 줄이면서 한층 섬세한 터치가 가능해졌다고 말하는 이충후 셰프.

두 곳의 농장에서 매주 무작위로 받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들로 메뉴를 구성한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충후 셰프의 요리는 꾸준히 심플하다. 최소한의 터치를 통해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무심하게 툭툭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각 재료 간의 맛의 조화가 무척이나 섬세한 것이 특징. 그 맛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식재료의 퀄리티다. 전남 구례와 베짱이 농부, 이 두 곳의 농장에서 식재료를 받는데 독특한 점은 따로 수량을 주문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농장에서 매주 두 번씩 가장 좋은 상태의 채소를 무작위로 받기 때문에 그날 어떤 채소가 얼마나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예를 들면 생선 위에 올리는 허브가 점심과 저녁에 다를 수도 있는 거죠. 얼마 전 일본에서 손님이 왔는데, 제 음식 맛을 보고는 ‘전반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음식인 것 같다’는 평을 해주시더라고요. 요즘 세상이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 다소 무리를 하는 경향이 많으니까요. 쉽게 예를 들면 채소의 맛이 다소 부족할 때 그 부족함을 채우거나 감추려고 다른 요소를 집어넣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냥 그 부족함을 억지로 채우지 않아요. 그래서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죠.”

인테리어 전반적으로 따뜻한 톤의 대리석과 스테인리스, 나무 소재의 조화가 돋보인다.

모카 크림과 카카오닙스를 채운 가나슈. 초콜릿 소스를 부어 함께 곁들인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높은 천고로 인해 개방감이 느껴지는 홀 전경. 벽에 걸린 그림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인 매형의 작품이다.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변하는 다이닝 신에서 오랜 시간 꾸준하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색깔’이라 말한다.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목소리와 고집을 밀고 나가는 것. 그 색깔을 알아보는 손님들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트렌드를 만들어온 그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레스토랑의 형태다. “이전에는 레스토랑이 식사하는 손님들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이외에도 충분히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어요. 제로 컴플렉스라는 레스토랑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 장소에 한정돼서 얽매이고 싶지는 않아요. 외부와의 협력이나 행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서울 전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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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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