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의 10년을 뒤로하고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긴 지 벌써 1년.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세월이 쌓아올린 고민을 요리로 묵묵히 풀어내고 있었다.
국내 파인 다이닝 업계를 논할 때 스와니예의 이준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업계의 선구자로 통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뒤 우리나라 최초로 팝업 레스토랑을 연데다, 2013년 당시 국내에서 전례 없던 카운터(바) 형식의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 셰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형태와 맛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셰프로 정평이 나 있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메뉴는 각각 ‘에피소드’라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요리를 전개해왔다. 이 외에 생면 파스타가 요즘처럼 흔치 않던 2015년에는 생면 파스타 다이닝인 도우룸의 문도 열었다. 이 또한 꾸준히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스테디셀러 레스토랑이다. 서래마을에서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던 스와니예가 지난해 신사동으로 이전을 마쳤다. 때마침 <2023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도 2개 받았다. 이준 셰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이었다. “이전 공간은 지하라는 특성상 그 자체로 제약이 많았어요. 한자리에서 9년 정도 됐을 때 뭔가 변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원하는 레벨로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러한 고민을 담은 스와니예의 새로운 주방은 굉장히 독특하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홀과는 완벽하게 분리돼 있지만, 레스토랑 밖에서는 통유리창을 통해 주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자연 채광에 밝은 조명까지 더해져 마치 실험실이나 애플스토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굳이 식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곳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부러 의도한 것이다.
“스와니예를 처음 연 10여 년 전에 비하면 국내 다이닝 문화가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요리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다수가 잘 알고 있고, 또 이곳을 찾을 정도면 분명 다이닝 경험이 최소 한두 번은 있으리라는 전제가 있었죠. 그래서 손님 앞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대중이 원한다면 누구나 쉽게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쏟아넣고 있는지는 알려주고 싶었어요.” 공간이 바뀌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담아온 고민이 하나둘씩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래전부터 스와니예는 ‘컨템퍼러리 퀴진 오브 서울’ 즉 지금의 서울 음식을 한다고 설명해왔다. 이준 셰프의 눈으로 해석한 도시 서울은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느라 극적인 요소가 다소 많았다. 그 강도는 점점 세졌다. 자연스레 조금씩 지쳐갔다. 결국 스와니예의 음식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좀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인문학적으로 음식을 풀어내고 싶었어요. 사실 한국적인 것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굳이 그걸 정의하는 것도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장이나 발효 같은 1차원적인 맛을 차용하기보다는 무엇이 한국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늘 고민해왔어요. 이민 온 외국인도 한국에서 몇십 년씩 먹고살면 한국 사람 다됐다고 하잖아요. 왜 한국 사람들은 둘이 오면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고, 무엇이든 비비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그런 행위들부터 찬찬히 생각해본 거죠.”
새싹비빔은 그런 고찰이 잘 담긴 메뉴다. 하단부에는 두유 크림과 방아 오일, 캐비아가 담겨 있고, 접시 벽을 따라 다양한 허브와 보리 소스가 붙어 있다. 숟가락을 사용해 아래서부터 뜨게 되면 각기 다른 층에 있던 재료들이 한데 섞인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 여기면서 새로운 맛을 조합해내는 한국의 문화를 담은 것. 최근에는 유독 한국 문화권에서 짙은 반찬 개념을 도입했다. 디너 메인 메뉴를 보조하는 반찬 3가지가 함께 곁들여 나가는데, 구태여 한국의 맛을 내진 않는다. 다만 그 문화를 차용했을 뿐이다. “이전에는 흥을 위한 소설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일종의 연구기록이자 에세이에 가까워요. 문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저도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계속 글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음식은 영화나 음악과는 달리 평가와 감상만 있을 뿐 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직업군이 없거든요. 제가 말을 안 하면 아무도 말해줄 사람이 없어요.” 스와니예에선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봉투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빽빽한 손글씨로 쓴, 무려 4장에 달하는 메뉴 설명서다. 여기에는 그가 각각의 메뉴를 만들며 고민한 시간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메뉴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또 이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오픈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 없이 직접 작성해온, 손님들을 향한 러브레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공장’이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국내 캐주얼 다이닝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안정화시킬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도우룸을 운영하고 있지만 생면 파스타가 4만~5만원씩 하는 건 잘못됐어요. 어떻게 하면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내릴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죠. 요즘 한국 음식은 양극화가 너무 심해요. 한우에도 수많은 등급이 있는데, 투뿔 한우 아니면 돼지고기죠. 저렴한 음식을 고급으로 만들거나, 고급 음식을 더 저렴하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은 돼지곰탕집 옥동식을 보세요. 이런 노력들이 한국 음식 문화 전반에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