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지닌 임희원 셰프는 에너제틱한 도시 서울과 꼭 닮았다.
한국적인 것에서 좀 더 들어가 서울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는 셰프가 있다. 2018년부터 운영해온 레스토랑 부토의 오너 임희원 셰프다. 그의 고민은 지금 이후 다음에 대한 준비이자 배움의 연장선이다. “런던 보그의 패션 기고가이자 유명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앤더스 크리스티안 매드슨은 서울에 올 때마다 부토에 들르는데요, 언젠가 그는 부토 음식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서울적인 맛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어요.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더라고요. 그 후로 나는 ‘서울적인 것이 뭐지?’ ‘서울적인 맛은 뭐지?’ 이런 물음이 생겼죠.” 임희원 셰프는 지난 9월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 <메종 투 메종 2024: 모르는 한국>의 오프닝 케이터링을 맡았다. 공간을 압도하는 자개장으로 만든 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에서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전시명이 <모르는 한국>이잖아요. 제가 갖고 있던 생각과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아요. 전통 떡이지만 망개 나뭇잎으로 감싼 형태가 트렌디한 망개떡, 요즘 스타일로 동글동글 귀엽게 만든 한입 한과와 곰취 쌈밥, 정관 스님에게 배운 두부장을 곁들인 무화과. 그리고 굉장히 한국적이면서 잔칫집 분위기도 낼 수 있는 오이선까지, 전시 의도와 어울리는 메뉴와 분위기에 신경 썼죠.” 전통과 현대를 세련되게 배합한 오프닝 케이터링은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 전시만큼 반응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시작해 한정식과 푸드스타일링, 그리고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임희원 셰프는 방송 프로그램 ‘올리브쇼’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방송 일이 즐겁기는 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그는 홍콩으로 떠났다. 미슐랭 ‘더 플레이트’를 받기도 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 모모제인의 헤드셰프로 3년을 머물면서 한층 더 성장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홍콩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이 배우고 경험했어요. 셰프의 색깔과 개성이 음식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경험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퓨전 한식을 폭넓게 다루기도 했고요.” 홍콩에서 돌아온 그는 지금의 자리에 부토를 오픈했다. 초기에는 홍콩의 경험을 살린 ‘지금의 한식’을 큰 주제로 한 메뉴를 선보였고, 오늘까지 300개가 넘는 메뉴를 만들며 변화를 줬다. 부토를 운영하면서 동남아 베이스의 다이닝 서드컬처클럽과 중동식 베이스의 와인바 시시쿠시도 오픈했지만 코로나19 여파를 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한때 가장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도시던 홍콩에서의 경험이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음식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도전하게 만든 것만큼은 분명하다. “유행이 아닌, 시대의 흐름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내추럴 와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우리 가게에는 컨벤션 와인을 찾는 손님들이 훨씬 많았어요. 유행만 좆는다면 와인 종류를 바꿨겠지만, 아직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찾는 손님들이 서서히 늘어날 때 내추럴 와인 비중을 전보다 높였어요. 또 ‘지속 가능성’이 굉장한 화두이던 때가 있었어요. 저도 그 필요성을 느꼈고, 태안에 밭을 구입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곳에서 기른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요.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고, 그걸 언제 어떻게 반영할지는 개개인의 몫인 것 같아요.” 이 말에서 현장에서 발로 뛴 사람만이 체득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감이 느껴졌다.
지금의 부토는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F&B 업계에 재난이었던 코로나 시기를 버텨내고 맞이한 포스트 코로나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 곧 다가올 가을에는 지금 공간에 간판이 하나 더 달립니다. 점심 메뉴로 닭육수 베이스의 칼국수를 판매하려고요. 칼국수가 저평가를 받는 메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본 라멘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그 풍미를 내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정성은 엄청나죠. 그런 칼국수를 맛보게 될 거예요. 또 정관 스님에게서 몇 년째 사찰음식 수업을 받고 있어요. 장도 담그고 나물도 무치죠. 이런 공부가 기반이 되면 나중에 어떤 기회가 오더라도 밑거름이 되어줄 거예요.” 이렇게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셰프지만 그의 음식은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삶은 꼬막과 구운 미니 로메인이 어우러진 메밀묵, 술빵과 된장을 갈아서 만든 소스를 곁들인 관자 요리, 해시 포테이토처럼 보이지만 크리스피한 찹쌀죽을 닭고기볶음과 함께 내는 삼계누룽지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어떤 점을 부각하고 싶은지가 명료하다.
부토는 잠실에 위치한 갤러리 에브리데이먼데이의 전시 오프닝 때마다 케이터링을 맡고 있고, 토이 아티스트 쿨 레인의 전시에서는 컨셉트에 맞게 우주인의 식사처럼 진공포장한 케이터링을 선보이는 등 아이디어와 맛을 모두 사로잡는 케이터링으로도 유명하다. “작가들의 케이터링만 맡고 있어요. 즐겁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부토가 즐거운 곳이기 바라요. 음식은 아주 쉽게 대화의 매개체가 되어주죠. 이곳에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우면 좋겠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토가 문 닫는 날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양하게 해보려고 해요. 또 그동안 생각해온 ‘서울적인 것’에 대한 제 결론을 내년에는 하나씩 선보이려고 합니다.” 인터뷰 초반에 임희원 셰프는 서울이란 도시는 빠르고 본능적인 것을 좆으며 재미를 추구하지만, 삼겹살과 소주처럼 편안함과 익숙함 또한 잊지 않는 도시 같다고 했다. 한 번도 요리가 지겨운 적이 없었다는 임희원 셰프는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간다. 마치 서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