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o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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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시, 파리의 현재를 만나고 싶다면 컨셉추얼한 레스토랑 헤일로를 주목하자.

유리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헤일로 레스토랑.

예술 작품처럼 선보이는 계절 야채 접시.

젊고 개성 있는 셰프들로 구성된 레스토랑.

파리는 19세기 중반 대개조 사업으로 지금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한 이후 외향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는 도시이다. 젊은 시절에 보고 온 파리를 나이 들어 다시 방문해도 그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기에 파리는 세상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통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곳인 만큼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가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로 꼽히는 것은 재미난 점이다. 전통을 건강하게 지켜가며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재탄생시키는 능력이야말로 현재 파리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헤일로 Halo는 이런 파리의 모습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파리에서 가장 올드타운에 해당하는 중심 2구 지역에 위치한 헤일로는 장소부터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18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던 곳을 교회가 매입해 사용하다 미식과 패션, 디자인에 큰 관심을 가진 두 젊은 사업가 빅토르와 마티유가 새로운 컨셉트 스토어이자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시켰다. 건물 밖에는 간판조차 만날 수 없어 마치 나만이 아는 곳에 방문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컨셉추얼한 전시를 선보이는 헤일로 쇼룸.

만달라키의 헤일로 조명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악셀 샤이 Axel Chay와 함께 선보인 전시 전경.

입구에 들어서면 컨셉트 스토어를 만날 수 있고, 묵직한 나무문을 통과하면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레스토랑은 몇 년 사이 파리 곳곳에 아름다운 실내 디자인을 선보인 에이전시 뮤르.뮤르 mur.mur의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빈틈없어 보이는 깔끔한 흰색과 노출 콘크리트 벽, 그리고 녹색 대리석 장식이 돋보인다. 여기에 공간의 이름과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스튜디오 만달라키의 조명들이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굉장히 모던한 느낌의 레스토랑이라 내부 장식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닌지 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레스토랑을 담당하는 셰프는 프랑스 인기 요리경연 프로그램인 ‘톱 셰프 시즌 14’에서 큰 주목을 받던 젊은 셰프 기욤 산쉐즈 Guillaume Sanchez가 이끌고 있다. 그는 원스타 네소 NE/SO, 미슐랭 3스타 알랭 피사르의 라르페주 L’Arpège d’Alain Passard에서 경력을 쌓은 이미 검증된 실력파다. 기욤은 레스토랑을 설립한 빅토르와 마티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설립자들의 고향 바스크와 프로방스의 특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요리는 소문이 빠르게 나기 시작해, 얼마 전 7월 미슐랭 가이드에 선발되며 더 큰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또 오픈 키친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최대 15명이 모임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바를 만날 수 있다. 지난 7월과 8월을 뜨겁게 달구며 세계인이 열광하고 즐긴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이제 다시 파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의 파리를 만나고 싶다면 헤일로 방문을 서두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ADD 12 rue Saint-Sauveur, 75002 Paris WEB en.halo-paris.com INSTAGRAM @halopar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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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관(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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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of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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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의 보르고 한남은 서울에서 머나먼 이탈리아를 꿈꾸게 한다.

신선한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조리하는 ‘오늘의 생선’ 요리. 뒤에 놓인 이탈리아산 화이트 와인인 주세페 퀸타렐리는 스테파노가 좋아하는 와인이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의 스타일을 반영한 보르고 한남의 내부.

어릴 때 먹은 첫 서양 음식은 스파게티였고, 지금도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레스토랑 또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서울에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된 곳을 만나기 쉽지 않고 계속 방문하게 되는 곳도 흔치 않다. 오너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 Stefano di Salvo가 이끄는 ‘보르고 한남’은 까다롭고 트렌드에 민첩한 국내 미식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호텔 F&B 업계의 유명 셰프던 스테파노는 국내에서는 파크하얏트 서울과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그리고 파크하얏트 부산의 총주방장을 지냈다. 이전에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유수의 레스토랑과 고급 리조트의 총주방장을 역임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 회사에서 일했던 아내 신혜영 이사를 만나 한국에 정착했고, 오너 레스토랑인 보르고 한남을 2019년 말 오픈했다.

분주히 주방을 오가다가 에스프레소와 함께 잠시 촬영에 임해준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

‘동네, 마을’을 의미하는 보르고라는 이름처럼 인테리어는 따뜻하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의 느낌을 반영해 은은한 미색이 감도는 자연스럽고 포근한 분위기로 꾸몄고, 스페셜 코스를 맛볼 수 있는 셰프의 테이블은 별도로 마련했다. 동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편안하지만 진정한 이탈리아 음식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그의 일과는 보르고 한남의 주방에서 시작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도착한 식재료들을 정리하고 생선과 고기도 손질합니다. 라구나 비스크 소스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스도 미리 만들어둡니다. 혼자서 식전 빵과 디저트까지 만들다 보니 몹시 분주하죠.” 셰프들의 오후 작업이 좀 더 수월하도록 자신의 기준에 맞게 직접 해오고 있는 일들이다. 오픈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레스토랑도 많은 요즘 벌써 5년차를 맞이한 보르고 한남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꾸준함에 있다. “항상 일정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오픈했을 때의 맛과 수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국내 재료와 공급처를 알아가면서 제철 재료를 더욱 잘 활용할 수 있게 됐어요. 봄에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여름에는 호박꽃, 그리고 아일랜드산 굴이나 질 좋은 참치가 있을 때는 스페셜 메뉴를 만들기도 하죠. 자주 와도 지루하지 않고, 처음 온 손님이나 단골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빨리 변화하는 것만이 발전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그의 말에서 묵직한 뚝심이 느껴졌다. “셰프에겐 탄탄한 기본기가 정말 중요해요. 유행하는 맛과 멋을 흉내내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좋은 셰프라면 소스를 만드는 법, 요리하는 데 필요한 기술 등 기본기를 갖춰야 해요. 그래야 어떤 재료를 만나도 잘 다룰 수 있죠.” 인터뷰 중에도 오븐 알람이 울릴 때마다 주방을 바쁘게 오가던 스테파노가 준비한 메뉴는 ‘멜란자네’와 ‘뽈뽀’, 그리고 ‘페스카토 델 조르노’다. “왜 이 세 가지 메뉴를 선택했냐고요? 아내의 말을 따른 거죠.(웃음)” 농담과 함께 메뉴 설명이 이어졌다. 보르고 한남의 단골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멜란자네는 가지를 튀겨서 토마토와 부라타 치즈를 올린 메뉴다. 스테파노는 가지를 튀기기 전에 미리 소금을 뿌려 물을 빼내면 좀 더 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팁을 전했다. “오늘 생선은 도다리예요. 즐겨 사용하는 생선이죠. 붉은빛이 아름다운 생선 성대도 좋아하고요, 카르파초를 만들 때는 도미를 사용합니다” 라며 물고기 모양의 큼직한 냄비의 뚜껑을 열자 타원형의 접시에 생선 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는 항구 도시인 제노아에서 자랐고, 특히 토스카나의 호텔 일 펠리카노의 총주방장이었을 때 매일 아침 어부가 잡아온 생선으로 요리를 하면서 생선을 더욱 좋아하게 됐다. 페스카토 델 조르노, 즉 ‘오늘의 생선’ 요리는 그날 가장 맛이 좋은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조리해서 제주도산 딱새우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비스큐 소스를 곁들여 내는데, 여러 명이 모였을 때 더욱 분위기를 돋우는 메뉴다.

산뜻한 문어요리인 뽈뽀와 보르고 한남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멜란자네.

재료 손질부터 플레이팅까지 스테파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여전히 단골이 있고, 찾는 이들이 많은 보르고 한남의 비결은 무엇일까. “반짝하고 마는 유행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진짜 식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긴 나 자신이자 집 같은 곳이에요.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셰프의 집에 초대받은 것이죠.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그의 말처럼 보르고 한남은 흔한 코카콜라 하나 없이 오직 이탈리아 제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사퀴테리를 자르는 베르켈 슬라이서는 이미 이곳의 시그니처이고 전통 증류주인 그라빠부터 직접 만든 담금주와 와인, 그리고 스테파노가 만드는 디저트. 요리 학교에서 전공을 결정할 때 파티세리를 고민했을 정도로 디저트를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공부한 그는 빵과 케이크를 직접 굽는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럼을 머금은 푹신한 빵인 바바 알 럼. 미슐랭 레스토랑일지라도 파티셰가 상주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디저트를 그날 식사의 방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스테파노의 디저트는 재방문의 의사를 깊게 남긴다.

스테파노가 아끼는 베르켈 슬라이서.

좋아하는 한국 작가인 이창화 도예가의 컵.

프라이빗한 모임을 위한 테이블 자리.

5년을 부지런히 달려왔으니 이제 그 다음을 기약할 때다. 스테파노에겐 어떤 계획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오픈한 지 5년이 됐네요. 처음 나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이 동네를 좋아해요. 확장하거나 다른 지점 오픈하는 것을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렇지만 여긴 아까도 말했듯 나의 집 같은 곳이고 그래서 손님을 초대한 이상 제가 꼭 있어야 해요. 가게가 많아지면 그러기가 어렵죠. 그래서 지금처럼 방문한 분들이 이탈리아의 음식과 식문화를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여건이 된다면 카페나 디저트 숍을 오픈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담백한 대답을 끝으로 그는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파인 다이닝이 아닐까. 인터뷰 후 튀긴 가지의 말랑하면서도 바삭한 식감, 탱탱한 문어와 채소의 달짝지근함, 부드럽고 진한 맛의 생선 구이를 음미하며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이탈리아를 온전히 경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전 내내 직접 구워서 만든 디저트. 시계방향으로 헤이즐넛 초콜릿인 잔두야로 만든 타르트, 바닐라 봉봉 푸딩, 자두 초콜릿 타르트, 피스타치오와 식용꽃을 올린 애플 카라멜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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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이예린(로그라피)

프리랜서 에디터

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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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Tea

Summer Tea

Summer Tea

커피 대신 차. 여름 길에 마주한 차 한잔의 여유.

찻자리의 미식, 차차이테

닐기리 퀄리티 시즌 글렌데일 오렌지 트위스트

정갈한 기물들이 반겨주는 차차이테 입구

마무리 차 스모키 밀크티

콘디토리 오븐, 카라멜리에 오 등 감각적인 디저트를 선보여온 스위트 에디션의 이소영 대표가 차과자점 차차이테의 문을 열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찻잔과 잘 어울리는 작은 사이즈, 차 맛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재료부터 꼼꼼하게 선별한 고민이 느껴졌다. 차차이테는 동서양에서 차를 의미하는 차(茶), 차이(Chai), 테(Thé)로 세 단어를 조합했는데, 티 코스 역시 세 가지 각각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구성했다. 차는 홍차 전문점 티에리스의 정다형 대표가 큐레이션해 더욱 기대되었다. 맞이 차와 마무리 차는 차차이테가 구성한 차로 제공하고, 본 차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세 가지 코스에 맞춰 다과도 함께 페어링되어 나온다. 예약 시간에 맞춰 테이블에 앉으니 시원한 냉침차가 먼저 반겨줬다. 맞이 차는 우리나라 하동 지역에서 재배한 유기농 햇 녹차다. 어린 잎의 부드러운 단맛과 담백한 감칠맛이 더운 열기를 식혀줬다. 이와 함께 수정과 젤리와 잣푸딩이 제공된다. 계피 맛이 나는 통팥에 잣 푸딩을 더해 수정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본 차는 네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는데, 그중 닐기리 퀄리티 시즌 글렌데일 오렌지 트위스트를 선택했다. 차 이름이 길지만 차의 생산된 지역과 다원을 포함한다. 닐기리는 인도 남부의 데칸고원 지대로, ‘푸른 산’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중 19세기에 세워진 닐기리의 명문 다원인 글렌데일에서 지난 2월에 생산한 차다. 오렌지빛의 맑은 차는 시트러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본 차 다과로는 세 종류가 나오는데, 우러나는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차 맛에 맞춰 순서대로 즐기면 된다. 첫 잔은 오랑제트와 맛보자. 보통 오렌지 껍질 위에 진한 다크 초콜릿을 사용하지만 차와 어울리도록 부드러운 화이트 초콜릿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쫄깃한 식감과 단맛이 홍차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종이에 감싼 디저트는 브루드네주. 프랑스어로 눈송이를 뜻하는 스노볼 쿠키로, 계절에 맞게 흑임자 맛으로 선보인다. 마무리는 무화과 블루치즈 버터 타르트로, 절인 무화과와 블루 치즈, 버터 양갱을 올렸다. 달달하고 진한 풍미가 가득하니 차가 진해졌을 때 함께 먹길 추천한다. 마무리 차는 정산소종과 아쌈티를 블렌딩한 스모키 밀크티다. 독특하게도 위스키 잔에 제공되는데, 정산소종 특유의 진한 송연 향이 위스키와 닮았기 때문이다. 고소한 풍미의 두유 통밀 스콘이 함께 나오니 든든하게 마무리해보자. INSTAGRAM @chachaithe EDITOR 원하영

차에 담긴 계절, 다도레

아포차와 매실민트소르베, 복숭아

보성 리치 말차

어느덧 8월 중순. 말복이 지났는데도 무더위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카페인에 중독돼버린 것인지, 매일같이 아이스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 그저 열을 식히고 정신을 깨우기 위한 커피 수혈 대신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자 연희동에 위치한 찻집 다도레를 찾았다. 다도레가 엄선한 3종의 차를 맛볼 수 있는 기본 티 코스도 있지만, 조금 더 특별한 차의 매력을 기대하며 여름 한정 스페셜 티 코스를 선택했다. 여름 한정 코스는 청량하고 달큰한 여름 과일을 컨셉트로 한다. 초여름에 시작해 한여름, 풋풋한 홍차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초가을로 마무리가 된다. 4가지 메뉴에 계절의 특징을 담아낸 스토리 라인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먼저 하동 모과차를 냉침한 웰컴티가 나왔다. 겉보기엔 그냥 물처럼 보일 정도로 아무런 색을 띠지 않는 투명한 차였지만 끝에 은은하게 올라오는 단맛이 아주 좋았다. 그 다음에 내어준 메뉴는 여름 코스를 위해 어렵게 공수한 고산지대 야생 아포차. 아포차는 찻잎 새싹의 주머니를 따서 만든 아주 특별한 차로, 달달한 청포도 향과 우아한 부케, 시원한 박하 향이 어우러져 여름과 잘 어울렸다. 사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다음 메뉴다. 기다란 샴페인 잔에 내어준 리치말차는 직접 담근 저당 리치청 원액 위에 다도레의 최상급 유기농 말차를 부드럽게 격불해 올린다. 처음에는 말차의 청량함과 씁쓸함을 온전히 느끼고, 쓴맛이 입안에 강하게 퍼질 때쯤 리치의 시원한 단맛이 조금씩 섞여 올라오며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말차의 맛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리치와 말차의 조합이 이토록 잘 어우러지다니. 분명 기분 좋은 낯선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초가을을 담은 세작 홍차가 나왔다. 은은한 생강젤리가 생각나는 깔끔한 한국 홍차로, 홍차 특유의 풋풋하고 깨끗한 맛이 감돌았다. 마실수록 풀 기운이 나던 기억이. 초여름으로 시작해 한여름, 초가을까지 차에 담긴 계절 이야기가 인상적이던 다도레의 여름 한정 티 코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깥 분위기와 정반대되는 여유를 잠시나마 즐길 수 있었다. 다가오는 가을을 위해 다도레는 9월 한정 한국차와 한국술을 페어링하는 심야 코스를 준비하고 있다. 다도레만의 감각으로 큐레이션될 차와 술의 색다른 조합이 기대된다. INSTAGRAM @dadore_tea EDITOR 원지은

차를 즐기는 재미, 델픽

피그 원 젤라또

밀리 필리와 피그 원

한옥으로 둘러싸인 서울 계동 골목길에는 다양한 차를 즐길 수 있는 델픽의 티 바가 있다. 현대적 감각의 티 제품을 선보이는 티 브랜드 델픽의 안국 플래그십 스토어다. 1층 전시관 위로 자리 잡은 쇼룸 및 티 바는 좌석수가 적은 대신 테이블을 넓고 크게 배치해 공간의 여백이 시원스럽다. 창 너머에는 한옥 지붕이 보이고 쇼룸으로 눈을 돌리면 여러 작가의 다구 작품이 각기 다른 멋을 뽐낸다. 메뉴는 곡우 이전에 딴 어린 찻잎으로 만든 고소한 향미의 최고급 녹차부터 100년이 넘는 나무 수령의 고수 보이 생차, 인도 단일 다원에서 생산된 홍차까지 타국에서 공수해온 이국적인 전통 차가 아홉 가지에 이른다. 델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티 제품은 시그니처 블렌딩 티다. 국내 티 마스터와 해외 티 전문 연구진들의 합작으로 탄생한 차로서 블렌딩 창작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처음 맛본 차는 시그니처 블렌딩 티 중 하나인 밀키우롱 차 밀리 필리. 은은한 메리골드 꽃잎이 부드러운 우유 향과 만나 향미가 확 끌어올려진 느낌이다. 우롱차의 쌉싸름한 끝맛이 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끝까지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차와 만나 그윽하게 뿜어지는 메리골드 꽃향은 특히 가을과 잘 어울릴 듯하다. 두 번째인 피그 원은 무화과, 사과, 카카오 쉘 등 개성이
강한 재료가 블렌딩된 루이보스 티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지는 요즘 자주 마시는 것이 루이보스 티라 델픽만의 블렌딩이 사뭇 궁금했다. 루이보스는 설탕 없이도 살짝 단 편, 첫 모금에 익숙한 달달함이 올라오지만 이내 느껴지는 상큼한 사과 맛이 이색적이다. 빛깔은 여느 루이보스 차보다 밝고 오묘하다. 디저트로 같은 피그 원을 우려낸 젤라또를 맛보았는데 루이보스와 우유가 만나니 티와 전혀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전통적인 다과 메뉴도 있는데 이중 단호박, 말차, 밤으로 만든 테린느를 꼭 한번 맛보길.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감돌아 차와 곁들이기에 제격이다. 델픽 티 바에서 사용하는 티 웨어는 차에 따라 다채롭게 세팅되는데 여러 작가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다기들이라 또 하나의 볼거리다. 찻물을 담는 블로잉 유리 숙우나 은은한 청색의 다과 접시 등 어느 것 하나 모양이 같지 않고 참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차와 다구를 골라 볼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차를 즐기는 재미다. INSTAGRAM @delphic_official EDITOR 박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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