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스러운 수사와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한 패션 디자이너도 집에서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으로 회귀한다. 초록이 우거진 마당을 두 눈 가득 즐길 수 있는 주택으로 이사한 제일모직의 정욱준 디자이너와 페키니즈 종의 애견 주니가 함께 사는 한남동의 집도 그랬다.
↑ 푸른 마당이 그림처럼 걸려 있는 개방감이 느껴지는 거실.
작년 말,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이 새집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2년 전 <메종>에 소개되었던 한강변의 아파트에서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옮겼다는 말에 마당이 연둣빛으로 들어찰 날을 기다렸다가 봄의 절정에 그의 집을 찾았다. 현관에 들어서자 까무잡잡한 모색의 페키니즈 종 주니가 꼬리를 살랑대며 촬영팀을 맞았다. 거실을 채운 커다란 창문을 통해 푸른빛을 머금은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집이었다. “오후에 들어오는 빛이 일품인 북서향의 집이에요. 소파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면 뒤통수까지 쫓아오던 급한 시간은 사라지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여유가 생깁니다. 주니 때문에 마당 있는 집을 택했지만 좋아하는 나무를 직접 심고 가꿀 수 있는 저만의 작은 쉼터가 생긴 셈입니다.”
↑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의 모습.
↑ 왼쪽부터) 백색, 회색, 검정을 주조로 단장한 집 안. 침대 곁에 마련한 애견 주니의 쉼터.
↑ 검은 털이 매력적인 페키니즈 종의 애견 주니 모습.
↑ 방부목으로 시공한 데크에 자리한 두 그루의 백일홍이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 이사하면서 새롭게 만든 서재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도 바깥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거실과 연결되는 49㎡의 아늑한 정원은 직사각형으로 기다란 형태. 선이 아름다운 백일홍 두 그루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블루베리와 대추나무, 대나무, 장미, 남천을 심었다. “20년 된 오래된 집의 마당이어서 진달래와 각종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나무와 식물로만 채울 생각에 기존에 있던 나무들을 베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생명체들이 주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이름 모를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정원 가꾸기에 푹 빠진 정욱준은 나무를 기르고 가꾸는 일이 지구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노동이자 창작 활동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자연이 주는 깊고 고요한 정서, 그 안의 소박한 조화로움은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고 있었다.
132㎡의 규모의 집은 레노베이션을 통해 다시 태어났는데 기존 아파트에서 보았던 요소들, 즉 몰딩을 적용한 클래식과 모던이 조화를 이룬 스타일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새집으로 이사하면 새로운 스타일에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놀랍도록 일관되게 정돈되어 있었다. “주관적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아하는 스타일이 명확한 것 같아요. 색상으로는 백색, 검정, 회색, 갈색, 금색을 좋아하고 투명한 유리 제품을 선호해요. 물건을 살 때도 저만의 기준을 적용시키다 보면 실패 없이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하게 되고요.” 당연한 얘기지만 작은 소품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집은 그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거실에 놓은 간결하고 단정한 가죽 소파와 그 뒤로 보이는 로버트 노키 Robert Knoke의 작품 그리고 창가 주변을 장식한 관음죽과 뱅갈고무나무, 테이블에 놓인 작은 화분들처럼.
↑ 거실과 소통하는 다이닝 공간. 부엌과 식탁 사이에는 유리를 단 폴딩 도어를 달았다.
집의 주조색은 회색으로 마감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과 연회색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유일하게 구조 변경이 이루어진 곳은 다이닝룸으로 거실과 이어지는 개방감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부엌과 식탁 사이에 격자형 유리를 단 폴딩 도어를 설치했다. “식탁은 이사하면서 맞춤 제작했어요. 테이블 위로는 톰 딕슨의 조명을 달았는데 그의 비트 라이트 시리즈 중 조명 갓의 곡선이 예쁜 두 개를 함께 연출했어요. 흔히들 미러볼 조명을 좋아하는데 너무 미래적인 느낌이 들어 제 스타일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특히 조명을 좋아하는 그는 마틴 마르지엘라, 필립 스탁의 디자인을 좋아한다고. “플로스에서 출시된 필립 스탁 디자인의 로지 안젤리스 조명은 특히 원단의 주름이 너무 아름다워요. 저도 원단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이 조명을 볼 때마다 경이로울 정도예요. 다이닝룸 벽에 걸려 있는 액자는 판형이 큰 잡지 <라스트 매거진>에 게재된 사진인데 사진가 마이클 젠슨이 모델 다리아 워보이를 촬영했죠. 제가 좋아하는 모델과 사진가의 합작품이라 액자로 만들어 걸었어요.”
↑ 사진가 마이클 젠슨이 모델 다리아 워보이를 촬영한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걸었다. 톰 딕슨의 비트조명을 단 식탁은 집들이 선물로 받은 촛대들로 장식했다.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각각 서재와 침실이 있다. 서재는 원래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방을 보는 순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로 만들고 싶어졌다고. 한쪽 벽에는 책장을 맞춰 출장 갔을 때 하나 둘씩 구입한 책과 소품을 함께 수납해 장식성과 기능성을 살렸다. 침실은 오롯이 편안한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침대 옆으로 대칭되는 협탁과 벽등을 달아 안락한 느낌을 부여했다. 침대 옆으로는 애견 주니의 침대도 함께 배치했다. “공간을 인테리어할 때 빛과 자연, 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아요.” 양지와 음지, 비와 바람, 시간과 계절의 순환이 다양한 표정을 만드는 그의 집은 강약을 자유롭게 오가는 라운지 음악과 집 안 곳곳에 맴도는 파릇하고 향긋한 향기로 기억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