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사람이 모이는 건축
2014 서울시 건축상, 2015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 상을 연이어 수상한 지음재 건축의 이재성 소장.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안종환(인물) · 진효숙(건물)
↑ 지음재 건축의 이재성 소장.
↑ 전동식 루버로 채광량을 조절하는 기능과 조형적인 면을 모두 겸비한 서우재.
먼저 대표작인 서우재에 관한 설명해달라.
상서로운 집을 뜻하는 서우재는 아래층에 커피숍 등 상가, 위층에 업무 공간, 가장 꼭대기에는 옥상정원을 가진 펜트하우스, 지하에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구성된 곳이다. 도시에서 이런 구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복합 건물의 모델이다. 입면에는 적삼목으로 만든 전동식 루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일광을 조절하고 건물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조형적인 역할을 한다.
서우재 안에 미디어 갤러리를 마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하의 선큰 가든과 이어지는 갤러리 공간은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전시나 공연을 하는 무대로 계획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미디어 아트로 연 것이다. ‘미러 도어 파사드 실링 월 선큰 Mirror Door Facade Ceiling Wall Sunken’은 서우재의 건축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영화적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갤러리 공간에서 선큰 가든 반대편에 있는 거울로 자기 모습과 영상이 함께 비춰지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간을 경험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고 싶었다.
설계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나는 사람들이 시각적,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의 정서적인 면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우재의 1층 필로티 공간을 선큰 가든과 연결하고 서편재의 외부 발코니 계단을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편재의 외형은 직물을 짜놓은 것처럼 루버를 만들었는데 서우재와 마찬가지로 건물에 조형성을 강조하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
↑ 지하 선큰 가든과 연결된 미디어 갤러리.
회화를 전공하다가 건축으로 전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 때는 반 고흐처럼 자기 세계를 갖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럽 여행을 갔다가 건축과 도시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엮어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무엇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도 멋지지만 건축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일반인에게 건축은 여전히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다. 이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건축이 학술적 영역에 머물거나 건물이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건축물은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건축을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건축 전시회나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건축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건축 문화가 한층 성숙해지라라 믿는다.
당신에게 공간이란?
공간은 영어로 스페이스 space다. 이는 공간 자체의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라 그 안에 꼭 사람이 있어야 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부재한 건축물은 조형물 이상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해 공허하다. 건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이기보다는 장소, 즉 플레이스 Place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건축이 사람을 위한 공간인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화동에 살으리랏다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담금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 옷을 입은 공가 公家들이 또 한 번 이화동의 역사가 되어간다.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안종환
↑ 배오개의 동그란 원형 창을 통해 본 적산가옥의 지붕과 서울 시내.
1 해주 지역의 백자를 창문에 연출해 화사한 아름다움을 건넨다. 2 부엌 관련 도구를 전시한 배오개.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과 이화동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2010년에 시작한 이화동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박물관이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화동의 재생은 계속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에서 인터뷰할 때마다 말했는데 더 할 말이 있나요. 그냥 좋으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죠. 내가 시골 출신이거든요. 회귀본능처럼 자꾸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이화동은 또 다른 고향이 됐죠.” 최근 이화동 프로젝트로 몇 개의 박물관이 더 생겼고 얼마 전에는 <이화동 마을박물관 2015> 전시도 성황리에 마쳤다. 비어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되 모두 이화동과 관련이 있는 ‘마을’ 박물관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나. 여전히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최홍규 관장이 ‘마을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을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건축계의 화두 중 하나인 ‘재생 건축’. 말 그대로 건축을 위해 건물을 부수기보다는 기존 건물을 되살려 새로운 건축으로 탈바꿈하자는 취지다. 폐광이나 문을 닫은 병원, 버려진 공장 등을 개조해 다시 쓸모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지역을 되살려보자는 넓은 의미도 지니고 있다. 최홍규 관장에게 재생 건축은 건물 하나하나가 아니라 마을 전체인 셈이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연 박물관이 몇 개 돼요.
1 이화동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애정을 쏟고 있는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 2 와인 오프너 전시 겸 카페로 활용하고 있는 개뿔.
1 성곽의 돌과 똑같은 돌로 마감한 개뿔의 화장실. 2 개뿔에서 전시하고 있는 다양한 빈티지 와인 오프너.
↑ 비어 있는 집을 개조하고 보수해 생명이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배오개.
최근에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 ‘개뿔’이 나와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죠. 부엌 박물관인 ‘배오개’, 대장간의 느낌을 살린 ‘풀무아치 공방’, 나의 본업이 이뤄지는 ‘최가철물점’, ‘이화동 갤러리’ 등이 문을 열었어요. 대부분 폐가이거나 이사를 간 집이었지요. 형태는 그대로 살리되 내부는 각기 다른 분위기로 재탄생시켰어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위쪽 개뿔에서부터 한 걸음씩 내려오기로 했다. “개뿔의 내부에는 와인 오프너를 전시하고 있고 외부는 작은 앞마당과 2층 테라스를 카페처럼 활용하고 있어요. 이번에 오픈한 곳은 아니지만 적산가옥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곳이죠. 화장실 벽이 돌로 마감돼 있는데 성곽의 일부였단 이야기도 있고 성곽을 짓고 남은 돌을 가져와 붙였다는 설도 있답니다.” 적산가옥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도성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화동에 일본식 가옥을 짓기 시작했고 개뿔은 그 잔재를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 있으며 심지어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뉘일 정도의 다락 공간도 있었다.
↑ 이화동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마을박물관. 주민들의 기증품으로 이화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최홍규 관장의 본업이 이뤄지는 이화동대장간.
1 마을의 중심이 되는 오디 나무 밑 평상과 작은 텃밭. 2 이화동은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동네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배오개’다. 부엌 박물관인 이곳은 지금 집으로 사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모던하고 단아하다. 해주에서 나온 백자 도자기와 과거에 부엌에서 사용했던 석쇠나 장 단지 등을 전시했는데 실제 부엌처럼 공간을 꾸미고 창가에 관련 도구를 발처럼 매달아 어찌 보면 아늑한 레스토랑 같기도 했다. 이화동 마을 프로젝트의 집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조금씩 그 특징이 다르다. 배오개는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가지고 있는 참한 모습의 박물관으로 촬영 날의 흐린 날씨와 유독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배오개의 바로 옆집은 ‘이화동 갤러리’다. 아직 내부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갤러리 공간으로 활용해 다양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벽화마을에서 돌계단으로 끝까지 올라왔다면 마주할 수 있는 텃밭과 평상이 놓인 마을의 중심, 이곳에 마을박물관이 있다. 마을 프로젝트의 본부와 같은 곳으로 이곳 역시 주민들의 참여로 꾸며졌다. 이화동 주민들로부터 오래된 물건을 기증 받아 꾸민 생활형 박물관으로 이화동 주민들의 과거 모습을 사진을 통해 감상할 수 있고 주민들의 인터뷰와 소개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표시된 전화번호 다이얼 전화기를 돌려 걸면 마치 전화 통화를 하듯이 수화기와 앞에 마련된 화면을 통해 이화동과 관련된 인사들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는 코너도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1,2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주민들의 그림, 과거에 이화동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기증 받아 완성한 생활 박물관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골목을 지나 풀무아치 공방에 다다랐다. 풀무아치는 대장장이를 일컫는 말로, 옛날에 기물을 들거나 당기기 위해 만들었던 들쇠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 대장간의 느낌을 살렸다. “들쇠 모양도 모두 다르죠. 거북이, 새, 박쥐 등 미신적인 의미로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사용하곤 했어요. 실제로 2층에는 금속공예가 홍석진이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박한 느낌의 박물관이이에요.” 성곽 쪽으로 다시 돌아가다 보면 최홍규 관장이 운영하는 최가철물점이 나온다. 이곳은 철로 만든 닭이 지붕에 멋스럽게 자리 잡은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와도 이어진다.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끌, 망치 등의 도구를 작품처럼 전시해 대장장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갤러리 공간이다.
1 철로 만든 장닭이 멋스럽게 장식된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 2 최홍규 관장은 자투리 공간 하나에도 아끼는 소장품을 두어 장식했다.
1 다이얼 전화기를 통해 이화동을 아끼는 인사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다. 2 지붕 위의 장닭 갤러리에서는 대장간 도구를 전시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다시 돌아온 마을박물관 평상에는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떨어진 오디나무 열매를 먹기 위해 새들이 짹짹거렸다. 생활 터전이 건축의 힘으로 얼만큼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방인임에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화동만 한 동네가 없어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풍류와 부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낙후된 동네로 인식돼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단지 빈집을 사들여 박물관을 만들고 수익을 얻자는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거예요. 마을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서울에 이렇게 좋은 동네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기에 불어오는 바람도 거칠 것 없이 평상 위로 스쳐갔다. 대장장이인 그는 철을 다듬고 두드리는 인내의 마음으로 이화동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재생 건축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없이도 이화동은 서울에서 가장 생기 있는 동네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