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주방이 눈길을 끄는 네 식구의 집은 초여름처럼 싱그러웠다. 아파트의 구조적인 한계를 현실적으로 재해석한 인테리어 사례를 소개한다.
↑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라 거실에는 가구를 최소화하고 창가 쪽에 아이의 작은 책상을 두었다.
특정 계절에 유난히 잘 어울리는 집을 만날 때가 있는데 고상윤 씨 집이 그랬다. 1년 중 가장 선명한 녹색을 볼 수 있는 계절, 거추장스러움을 걷어내고픈 초여름에 꼭 어울리는 집이다. 7살 아들과 3살 딸 그리고 부부까지 네 식구가 사는 이 집은 삼성동에 위치한 40평형대 아파트다. 방 3개와 욕실 2개로 구성된 집으로 준공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대대적인 수리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하지만 가족만을 위한 신의 한 수 같은 디자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부는 이사 전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공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디자이너를 알아보던 중 히틀러스 플랜잇의 신선주 실장을 만나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동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아파트에 사는 많은 분들이 단독주택을 꿈꿔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파트가 가질 수 없는 색다른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서는 구조적인 변경이 어렵죠. 그래서 현실적으로 아파트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봤어요.” 신선주 실장이 이 집의 구조적인 독특함을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부엌이다. 요리를 좋아하고 그릇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안주인이 신선주 실장에게 특별히 신경 써주기 부탁한 공간이기도 하다. “싱크대 위치를 비롯한 부엌 구조를 완전히 바꿨어요. 다이닝 공간이 넓기를 바랐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준비할 때도 거실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원래 싱크대가 있던 자리에는 원목으로 수납장을 짜서 넣었고 부엌 뒤쪽으로 싱크대와 냉장고, 김치냉장고 자리를 만들었어요. 덕분에 식탁이 놓인 다이닝 공간이 여유로워졌죠.”라며 집주인 고상윤 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부엌을 꼽았다.
↑ 박스 모양으로 제작한 입체적인 책장.
1 거실 베란다를 확장해 마련한 간이 홈 오피스 공간. 2 아들이 그린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서 침실 옆 복도 벽에 걸었다.
입면의 변화는 천장에도 적용되었다. 다락방처럼 천장을 사선으로 내리고 아늑함을 더하면서 공간에 지루함을 덜어낸 것. “고상윤 씨가 워낙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별다른 장식물이나 데커레이션을 하지 않았어요. 벽도 흰색 벽지를 발랐기 때문에 자칫 휑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주방 천장 구조를 사선으로 만들어서 허전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더불어 구조적인 재미도 주고요.” 사선형 천장 구조도 재미있지만 바닥에서 부엌 벽을 거쳐 딸의 방문까지 이어지는 나무 벽도 독특하다. 바닥재로 사용하는 강화마루를 벽에 붙여 도시의 산장 같은 편안함과 건축적인 요소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집의 거실이 유독 싱그러워 보이는 이유는 알그 Algue 때문이기도 하다. 로낭&에르완 부룰렉 형제가 디자인한 알그는 원하는 방식으로 조립할 수 제품으로 녹색 알그를 천장부터 늘어뜨려 마치 행잉 식물이 드리워진 듯 싱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에 어린아이들을 위해 합리적인 가격대로 제작한 등받이가 낮은 소파를 두어 거실이 더욱 시원하고 싱그러워 보인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값비싼 소파를 들여놓기가 망설여지더군요. 패브릭 소재를 사용해 3인용 소파를 제작했어요. 아이들이 더럽히거나 때가 타도 덜 신경 쓰이는데다 세탁도 할 수 있어서 실용적이죠.” 부부 침실 사이의 벽과 현관에는 액자를 걸었다. “액자 아이디어는 신선주 실장님이 알려줬어요. 그림에 투자를 하자니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가격대에 맞춰 아무 그림이나 걸자니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았죠. 그때 신선주 실장님이 추천한 방법이 아이들 그림을 액자로 만드는 거였어요. 재미있고 참신한 그림을 그릴 나이라 아들이 그린 그림으로 액자를 만들었죠.” 알록달록하게 그린 사과와 바다 그림으로 장식한 벽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포인트다.
↑ 요리를 좋아하고 그릇을 모으는 안주인을 위해 그릇 수납장을 짜 넣었다.
↑ 가장 공을 들인 부엌 공간. 바닥재와 같은 소재로 벽을 마감하고 천장을 사선으로 만들어 단독주택의 분위기를 살렸다.
↑ 좌식형 침실 공간을 만든 아들의 방. 아랫부분은 수납함으로 활용할 수 있다.
7살 아들의 방은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아들 친구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단상 형태의 침대가 특이한데 따로 침대를 두지 않고 단을 높여 아늑한 침대처럼 연출했고 아랫부분은 수납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책상 앞 벽에는 지그재그 모양의 라 샹스 클라임 선반을 설치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올려둘 수 있다. 어린아이의 방이라서 색깔을 많이 사용하기보다는 독특한 선반으로 포인트를 주고 다른 부분은 실용적으로 꾸민 셈이다. 부부 침실도 심플함 그 자체다. 파우더룸이 있어서 옷과 액세서리류는 파우더룸으로 수납하고 침실에는 침대와 TV만을 두었다. 바닥재와 같은 종류의 마감재로 헤드보드를 제작했고 양쪽에 브래킷 조명을 달아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부부 침실을 완성했다.
1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클라임 선반으로 힘을 준 아들의 방. 2 부엌과 마찬가지로 바닥재 소재로 헤드보드를 연출한 심플한 부부 침실.
↑ 이 집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원한 분위기의 거실. 녹색 알그를 설치해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 현관에서 집 안을 들여다본 모습. 현관 벽에는 아이들의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걸었다.
고상윤 씨의 집은 간결함으로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지만 인테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공을 들일 부분에만 힘을 주고 나머지 부분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집 안을 다듬었다. 여기에 건축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적용해 흰색이 바탕이 된 공간임에도 차갑지 않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