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chitecture (3)

Special Architecture (3)

Special Architecture (3)

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시간을 축적한 건축
오랜 시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었던 전분공장이 새 옷을 입었다. 전분공장의 증기터빈 대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카페, 엔트러사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입구에 만든 야외 공간. 과거에 만들어진 수로를 화단으로 사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 바와 휴식터로 나누어진 내부 모습.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위치한 카페 엔트러사이트는 과거 제주의 고구마 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르는데 삼각형 건물 두 채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 있는 이곳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제주 전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로 전분을 만들었던 감저공장이었다. 595㎡의 내부에는 시대별로 사용했던 손때 묻은 증기터빈 원동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 과거의 영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랜 시간 버려져 있던 공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 앞에 위치한 신발공장을 개조해 카페 ‘엔트러사이트’를 만든 김평래 대표다. 서울에서 함께 일했던 매니저 박성희 씨의 도움으로 공장 터를 발견하고 함께 카페로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 지난가을. 5개월간의 공사 끝에 새 옷을 입은 카페는 오래된 것이 새롭게 보일 정도로 개성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건물 주인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존재했던 이 건축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서까래부터 고장 난 컨베이어 벨트와 낡은 대문 등이 방치되어 있어 마치 고물상과도 같았어요. 나 홀로 예쁜 건축물보다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쇠붙이.  

 

 

1 노출된 서까래 아래로 채반을 활용해 만든 테이블과 철제 의자가 놓여 있다. 2 제주에서 자라는 고사리류와 식물을 심은 화단. 덕분에 어둑한 실내는 한층 밝아 보인다. 

 

 

↑ 두 개의 건물이 쌍둥이처럼 이어져 있는 외관. 

 

두 개의 건물이 하나로 이어진 내부는 크게 커피를 제조하는 바와 손님을 맞는 휴식터로 나뉜다. 낡아서 물이 새던 삼각 지붕에는 전체적으로 삼나무를 덧대 내려앉지 않게 보강했고 천장 곳곳에 창문을 내어 자연광을 내부로 들이는 장치를 마련했다. 휴식터 바닥에는 제주 현무암과 송이석을 깔아 단을 올리고 바닥 곳곳에는 푸릇푸릇한 이끼가 자라나도록 했다. “제주의 고온 다습한 환경을 이용해 이끼를 키우고 있는데, 손님이 자주 드나들어 잘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끼 반 풀 반으로 채워질 공간을 상상하며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바 공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기존 물이 흐르던 수로에 흙을 채워 고사리류와 작은 식물들을 심어 만든 화단. 전반적으로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감도는 내부는 파릇파릇한 식물 덕분에 한층 밝은 모습이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테이블은 전분을 곱게 내리던 넓은 채반을 활용했고, 낮은 철제 의자는 맞춤 제작했다.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띄는데 이는 높고 넓은 천장고를 감상하기 좋도록 주인이 배려한 것. “공사 기간 동안 서울에 있는 직원들이 함께 흙을 만지고 돌을 옮기며 만들었어요. 서울에 있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이곳에 머물면서 일할 예정인데, 자연스럽게 제주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주려고 합니다.” 김평래 대표 역시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꾸며 조만간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할 예정이다. 카페 엔트러사이트는 시간의 장벽을 초월한 공간의 영속성으로 전분공장의 과거에 이어 다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심각하지 않은 삼각학교
서울 인근 남양주에 위치한 동화고등학교는 삼각형 모양이다. 왜 삼각형 모양이 되었을까?
어시스턴트 에디터 김수지 | 포토그래퍼 차가연(인물)

 

 

↑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중정의 모습. 

 

 

↑ 중학교와 마주하는 곳은 콘크리트로 마감해 건물 간의 간섭을 줄였다. 

 

 

↑ 유리창에 비친 풍경은 동화고등학교의 또 다른 매력이다. 

 

속초가 고향인 한 친구가 고등학교 다닐 적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뒤에는 산, 앞쪽으로는 바다여서 도망칠 곳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공부했을 친구의 학창 시절을 상상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의 답답함은 공부의 양은 물론이고 공간에서 오는 폐쇄성도 한몫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밖이 보이는 창문 높이, 복도에서 조금만 달려도 어느샌가 꿀밤을 때릴 준비를 하고 계신 선생님과 맞닥뜨리는 ‘ㅣ’자형 건물 등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언제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버티던 공간이었던 것. 공간에서라도 학생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학교 건물은 대게 ‘ㅣ’자나 ‘ㄱ’자 모양이다. 하지만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이 설계한 동화고등학교 삼각학교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학교의 전형에서 벗어난 삼각형이다. 사람, 교육, 장소 간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인 삼각형은 지난해 계획안만으로 미국건축가협회의 뉴욕건축가협회상 대상과 김수근문화재단의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받았다. 나은중, 유소래 소장은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UC 버클리를 함께 졸업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를 하는 동시에 공공 예술과 설치 작업으로 건축의 유동성을 실험하는 것을 지향하는 이들은 뉴욕에서 시작한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를 서울로 확장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 그룹이다. 

 

 

↑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 

 

 

↑ 건물의 삼각형과 중정의 삼각형을 어긋나게 설계한 모습. 

 

 

↑ 복도와 중정을 오가며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 

 

“삼각학교의 동쪽엔 뒷산이, 서쪽엔 중학교가, 북쪽엔 학교 운동장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요소는 삼각형의 건물 배치를 통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공간이 됩니다. 특히 운동장과 접해 있는 건물의 정면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마감해 적절한 조도를 이끌어냅니다. 시선 차단을 위한 건축 장치인 수직 루버를 설치해 건물 속이 훤히 보일 걱정도 없습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서쪽의 중학교에 대해서는 폐쇄성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건물은 운영 방식이 전혀 다른 중학교 시설로 고등학교인 삼각학교와는 기능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건축적인 요구를 가지고 있었죠. 이에 닫힌 느낌을 주기 위해 콘크리트 벽으로 마감한 뒤 3개 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삼각형 창을 만들어 건물 간의 간섭을 최소화했습니다.”
삼각형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가 안쪽을 향해 동일하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교실이 위치한 2, 3층 가운데에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작은 쉼터인 중정을 만들었다. 2, 3층 모두 안쪽에서 중정이 훤히 보이도록 유리로 마감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구조와 교실의 조도를 한번에 해결했다. 또한 중정의 삼각형 공간은 건물의 삼각형과 그 각도가 서로 어긋나게 설계했다. 층간을 이어주는 수직 틀을 만들어 시각적으로 각 층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하고, 어긋난 각도를 통해 어느 위치에서도 시야를 확보하게 했다. 또한 어긋난 삼각형을 통해 복도의 크기를 2.4m에서 5m로 각기 다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학생들의 작은 정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중정은 유동적인 공간으로 학생들이 드나들며 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된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 때를 대비해 교실 내벽을 간이 벽으로 만들어 움직일 수 있게 배려한 점도 삼각학교의 또 다른 특징. 이쯤 되면 동화고등학교 학생들은 진심으로 학교에 ‘다닐 맛’이 나지 않을까. 학생이 공부만 하도록 닫힌 벽, 높은 창문 등 건축적인 요소로 통제하는 곳이 아닌 활짝 열린 공간으로 학생들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덜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동화고등학교. 인터뷰를 마친 후 네임리스 건축 사무소를 나서며 중정을 오가며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흐믓했다.  

 

 

최소한의 건축, 최대한의 집
aA디자인뮤지엄의 김명한 대표가 제주도에 완성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최소의 건축으로 탄생한 소박하고 힘 있는 공간,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파라다이스를 소개한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아담한 정원을 끼고 있는 아라 하우스의 외관. 

 

 

↑ 간세다리 하우스는 카페와 이웃해 있다.   안개비 속에 길을 뚫고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바닷가로 향했다. 공항에서 출발한 지 40분쯤 지났을까. aA라고 쓰여진 검은색 건물이 보이고 바다를 눈앞에 둔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만나자 이방인의 마음은 무장해제된다. 촬영 당일, 제주도에는 안개 경보가 내려졌지만 aA카페에서 바라보는 안개 낀 바다의 모습은 이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처럼 정겨웠다.
김명한 대표는 그간 꾸준히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생태 숲인 비자림과 곶자왈을 거닐며 산책을 즐겼던 이유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동리의 조용한 바닷가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간의 발걸음 덕분이었으리라. 그렇게 1년여 동안 아들 김인동 씨와 함께 공들여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오픈을 앞두고 지인 시숙 행사를 하며 손님맞이를 위한 막바지 체크 중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카페를 허브로 3개의 객실로 나뉜다. ‘간세다리’라고 이름 지은 3인용 객실, 두 개의 2인용 객실 중 하나는 ‘아이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김명한 대표의 손녀 이름을 따서 ‘아라’라고 지었다. “제주 방언으로 ‘간세다리’는 게으름뱅이를 뜻합니다. ‘아이들 Iidle’은 영어로 빈둥거린다는 뜻이고요. 휴식을 찾아 제주도를 찾았으니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습니다.”    

 

↑ 다양한 빈티지 가구들로 꾸민 카페 내부. 바다와 맞닿아 아늑한 맞배지붕을 얹은 카페는 화산석과 잘 어울리는 검은색으로 마감해 주변과 조화로운 모습을 선사했다. 1970년대에 지은 아담한 제주의 전형적인 주택을 고쳐 만든 세 개의 객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지붕과 벽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을 보완했다. “소박한 제주의 집을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만 고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빚바랜 지붕이나 외관 벽은 그대로 두고 출입문이나 창문틀을 바꾸는 정도로 하고 집의 원형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겨울에는 춥고 습기가 많은 제주의 자연환경을 고려해 창문과 벽체, 바닥재를 교체했고 복잡했던 구조를 하나로 터서 낮은 지붕과 좁은 공간의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공사 중 발견한 골조는 과감히 드러내 옛것과 새것의 대비가 느껴지는 공간을 완성했다. “공간을 새로 단장할 때 사용한 바닥재와 페인트, 단열재 등은 모두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바닥재는 핀란드산 레드 파인 우드를 사용했는데 본드를 사용하지 않고 짜맞춤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알레르기에 민감한 편인데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건강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1 김명한 대표의 스타일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아라 하우스의 객실 내부. 1920년대부터 50~60년대 빈티지와 모던 가구들이 조화를 이룬다. 2 공사를 하다가 발견한 오래된 대들보를 노출시킨 간세다리 하우스의 내부. 특히 객실의 가구 배치에서는 오랜 세월 디자인 가구 전문가로 살아온 김명한 대표의 심미안과 디자인 균형감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앤티크, 빈티지, 클래식, 모던을 섞어 가구를 배치했어요. 공간 자체가 낮고 좁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가구로만 비치했습니다.” 세 개의 객실에는 1920년대부터 50~60년대에 이르는 빈티지 가구와 조명들로 단장했고, 침구와 러그는 북유럽 브랜드 헤이의 제품을, 베개와 쿠션은 펜투카의 제품을 썼다. “여행을 즐기지만 돈은 없고 디자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일반적인 숙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카페 앞 마당을 장식한 강아지 오브제.
aA게스트하우스는 객실 타입에 따라 비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8만~15만원 선으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김명한 대표는 홍대 aA카페에 디자인 가구를 펼쳐놓았던 것처럼 이곳 또한 좋은 미감의 가구가 놓인 집을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국내 최고의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로 살아오면서 그가 제주에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각 잡힌 멋 대신 환경에 순응하는 이 소박한 건축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그의 새로운 삶도 그중 하나였다.

괴짜들의 합창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들이 반란을 시작했다.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 세 사람이 이끄는 푸하하하 프렌즈의 유쾌한 이야기.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신국범(인물) · 김용관(건축)

↑ 왼쪽부터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소장. 푸하하하 프렌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5년 전 규모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동기, 선배로 만났다. 큰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건축주가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질까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언젠가는 독립할 계획이었기에 평소 마음이 잘 맞았던 셋이서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그때 사장님이 ‘멋진 출사표로 성공을 빕니다’라는 축사를 남겨주셨다.

푸하하하 프렌즈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관적이어서 좋았고 영문으로 FHHH라고 썼을 때 시각적으로 단단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구청이나 협력 업체와 통화를 할 때 ‘푸하하’나 짧게 ‘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이겨냈다. 우리가 먼저 받아들이고 나니까 사람들도 같이 웃고 즐거워하는 거 같아서 만족한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실력 있는 젊은 건축가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김해시 건축 대상을 받은 ‘흙담’ 덕분이 아닐까 싶다.
흙담은 독립하고 나서 첫 작품인데 공을 많이 들였고 그만큼 힘들었다. 공장들과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그 장소에 스며들기보다는 맞서고 싶었다. 무거운 재료를 사용해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벽돌을 직접 디자인해서 틀을 만들고 쌓느라 엄청 고생했다. 결과적으로 구조를 잘 나누고 재료를 잘 사용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무게감 있는 돌처럼 존재감 있게 지었다는 ‘흙담’.

독특한 모양의 벽돌은 푸하하하 프렌즈에서 직접 디자인, 제작한 것이다.

↑ 흙담의 건축주가 운영하고 있는 전통 다원. 공정무역숍 비타, TWL숍 등 주로 상업 공간을 많이 했지만 주택 설계도 하고 있는데, 공간을 설계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상업 시설에는 조금 더 특이하고 새로운 시도를 바라고, 주택은 조금 더 안전하지만 유연한 것을 바라는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일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클라이언트와 얼마나 말이 통하는가이다. 돈이나 땅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질색이다.

다들 개성이 강한데 셋이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어떤가?
푸하하하 프렌즈 이름으로 활동한 지 3년째이지만 아직도 의견을 조율하는 게 힘들다. ‘제대로 해보자’는게 전부여서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한승재 소장은 올해 초 <엄청멍충한>이라는 소설책을 냈다. 책을 펴낸 계기는 무엇인가?
회사 다닐 때부터 썼다.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에 쓰기 시작했는데 혼자만 보기 아까워서 길에 내놓고 팔다가 우연히 열린책들 출판사 사람 눈에 띄어 정식으로 책을 출간했다.

DDP에서 진행한 <영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2015>전시에 참여해 관람객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집을 지어드립니다’라는 건축 프로젝트가 화제였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나?
점집에 와서 점을 보듯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랑 함께 살고 싶은지 등을 자세히 물어보고 개인의 캐릭터에 맞는 집을 그려줬다. 전시 기간인 6일 동안 500명 이상을 만났다. 사실 이건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인데 우리는 좀 더 큰 개념으로 ‘집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부터 시작하면 다양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푸하하하 프렌즈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건축가를 만나는 것도 쉬웠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다. 편하게 생각해야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서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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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차가연, 신국범,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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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rchitectur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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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그대로 있어주면 돼
시간과 기억을 보존하면서 브랜드의 개성을 자연스럽게 투영한 젠틀몬스터의 계동 쇼룸을 방문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김수지 | 포토그래퍼 안종환

 

 

↑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물인 ‘타임 트랜스포메이션’. 

 

안국역에서 현대사옥을 오른쪽에 두고 들어서면 중앙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 있다. 행정구역상 계동길로 불리는 길이다. 이 길에 자리한 중앙탕은 1969년 문을 연 목욕탕으로 이전에 중앙고 운동부의 샤워실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했던 계동의 랜드마크였다. 계동길에서 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면 중앙탕을 기준으로 설명할 만큼 그곳은 계동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몇 달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것 같더니 국내 안경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의 네 번째 쇼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휴식을 위해 찾곤 했던 계동길에 개성 강한 브랜드 쇼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지만 방문해보니 의외의 건물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었다.
젠틀몬스터의 쇼룸은 인테리어적인 면에서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젠틀몬스터의 네 번째 쇼룸은 가구 디자이너 그룹인 ‘패브리커’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패브리커는 다양한 무늬와 색을 가진 원단을 이용해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 그룹으로 이번이 세 번째 협업이다. “중앙탕을 처음 봤을 때 매력을 느꼈어요. 오래된 공간이기도 하고 계동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터넷에 이미지를 검색하면 언제나 중앙탕의 간판을 볼 수 있었죠.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사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관리가 안 된 부분이 많았어요.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요. 본래 4월쯤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결정하느라 오픈이 연기됐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외관을 살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외형은 유지하면서 1층의 입구 부분만 황동으로 마무리해 젠틀몬스터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계동길에 은은하게 녹아든다. 1층 쇼룸의 뒤편에는 물을 데우는 화목 보일러를 그대로 남겨놨다. 벽에는 보일러실의 묵은 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보일러가 있는 공간과 이어지는 곳에는 사우나실을 만들어 열기와 불빛을 재현했다. 

 

 

1 젠틀몬스터 계동 쇼룸을 멋지게 완성한 패브리커(왼쪽)와 젠틀몬스터의 공간 디자이너(오른쪽). 2 사우나의 열기와 불빛이 느껴지는 듯한 쇼룸의 복도.

 

 

↑ 중앙탕의 옛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3층 공간. 

 

 

↑ 1층 입구엔 매표소로 쓰였던 창구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1 지난 시간의 정취가 느껴지는 화목 보일러. 2 타일을 들어내고 남은 적벽돌과 젠틀몬스터의 선글라스가 의외의 조화를 선사한다. 

 

 

↑ 중앙탕의 외관은 그대로 남기고 입구만 황동으로 마감했다.

 

1층 천장에서 2층 바닥까지 관통한 ‘타임 트랜스포메이션 Time Transformation’도 젠틀몬스터 계동 쇼룸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설치물로 1층 보일러에서 생성된 증기가 운동에너지로, 운동에너지가 다시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표현했는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1층의 거대한 모터가 2층으로 이어진 전구들의 빛을 밝힌다. 중앙탕은 본래 남탕과 여탕이 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남탕으로 사용된 2층은 공용탕의 일부를 부서진 상태 그대로 남겨놨고, 기존 욕탕의 타일을 들어내고 남은 적벽돌은 그대로 보존했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옛 중앙탕의 모습이 담긴 슬라이드를 볼 수 있어 더 한층 정겨움을 자아낸다.
“작지만 이 공간이 가진 매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 공간만의 역사와 의미를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새롭게 변신한 젠틀몬스터의 모습을 보면서 패브리커이기에 가능했던 결과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앙탕의 시간과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브랜드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젠틀몬스터의 계동 쇼룸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내부와 외부 공간을 적절히 변형하면서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으며 브랜드의 정체성 또한 투명하게 드러냈다. 계동길의 초입에서부터 멀찌감치 보이던 중앙탕 간판을 그대로 남겨둔 이곳은 진중함과 괴물 같은 매력이 공존하는 젠틀몬스터의 얼굴, 그 자체다.    

 

 

너의 의미
지금 건축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네리&후를 상하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에디터 노은아 | 포토그래퍼 테리 배 Terry Bae 

 

 

↑ 건축가 부부인 린던 네리 Lyndon Neri와 로산나 후 Rossana Hu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파트너로서도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1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네리&후는 그들이 묵었던 호텔의 메시지 카드를 모아서 한데 붙여놨다. 2 장저우 르 메르디앙 호텔의 외관.


부부이자 동업자인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인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하다 보면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것을 공유하되 시간과 가능 여부, 관심 정도에 따라 매우 유기적으로 일하는 편이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전체적인 틀을 만들고 아내인 로사나 후는 비평과 전체적인 운영을 맡는다. 우리의 성격도 매우 달라서 이런 체제는 한 가지 프로젝트에 얽힌 다양한 문제를 고려할 때 근시안에 갇히지 않으면서 더 완벽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2004년에 사무실을 오픈한 이래 두 사람의 활동은 11년째 접어들었다. 그리고 요즘 당신들은 건축계를 넘어 디자인계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당신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속적인 가치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정신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문제에 건축적으로 답하는 것도 의미를 창조하는 한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공간을 활용한 문화적인 생산을 형성하고 탐구하는 일이다.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업실에서 많은 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 떠올리고, 만약 경로를 이탈했다면 우리 스스로를 재정비하려고 노력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당신들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변했다면 어떻게 변했나?
어떤 것은 유지되고 또 어떤 것은 변했지만 중요한 것들은 이전과 똑같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디자이너들이 트렌드와 패턴의 변화에 대응하듯이 우리는 대응뿐 아니라 먼저 예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트렌드를 예측하지만 그보다는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가정하고 앞서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란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세계관, 우리의 미학적 관심사, 우리의 성격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은 올 한 해만 해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서울까지 다양한 지역에 걸쳐 네리&후의 흔적을 건축물로 선보일 예정이다. 각 지역마다 다양한 프로젝트의 착수에서 완성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각 프로젝트에 맞는 아이디어와 컨셉트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계를 허물려고 끊임없이 자문하다 보면 생각을 멈추지 못할 때도 있다. 컨셉트를 결정한 후 수많은 조사가 이어지는데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다른 디자인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레이어링, 투시, 건물의 축조, 텍스처, 물성 등 항상 고민하는 요소도 있다. 사실 본질적으로 이런 이슈 중 몇 가지는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분이 된다.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항상 기본 컨셉트에서 출발하는데 모든 프로젝트의 이면에 밑바탕이 되는 강력한 컨셉트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 디자인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 디자인 코뮨. 

 

 

↑ 네리&후를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한 상하기 워터 하우스. 


2015 메종&오브제에서 포르투갈의 가구 브랜드 드 라 에스파다 De la espada를 통해 셰이커 스타일의 의자를 선보였다. 드 라 에스파다와 당신들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창립자인 루이스 드 올리베이라 Luis de Oliveira가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고 프로젝트를 착수하기 전 1년여에 걸쳐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서로 의논했다. 우리는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협업은 비교적으로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건축, 전시, 가구 디자인까지 당신들의 작업 영역 중 중심은 무엇인가?
건축은 여전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근간이며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르네상스적인 개념에서 가져온 디자인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으며 우리의 멘토인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당신들의 작업을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가이드를 준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말해달라.
의미, 진정성, 겸허.

올해 Imm 퀼른 전시회의 설치 전시 ‘das haus’는 어떤 의도로 진행되었나?
처음 생각은 매년 열리는 Imm 퀼른 전시회를 위한 집을 꾸미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통해 가정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걸쳐 스스로 질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두 사람의 건축에서는 중국스러움을 초월한 다양한 감성이 느껴진다. 

 

 

↑ 상하이 캠퍼 쇼룸이자 사무실의 모습. 

 

몇 년 전, 상하이 푸동 pudong 지역에 갔을 때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건물 디자인과 건물 꼭대기를 장식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에 놀란 적이 있다. 도시의 첨탑처럼 인상적인 건물 옥상 디자인이 중국 건축의 관습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해외에서 자라고 살았던 당신들에게 이런 문화는 어떻게 다가왔나?
우리는 디자인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중국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스타일이나 건축양식과 같은 표피에만 주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뜰이 있는 집이라든가, 근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집 등 중국식 공간의 정수를 탐구하는 편인데 그것을 우리의 작업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곤 한다. 건축에 있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 등을 비롯한 수많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리의 전반적인 주제다.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통해서 관습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경계를 밀어 붙여서 우리가 어디에 이르는지를 지켜보는 것 말이다.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건축이 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 멘트 이후로 건축가뿐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이 쇄도했다. 어떤 논쟁을 일으킬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건축가들이 프로젝트에서 직면하는, 이기적인 개발자들이 요구하는 무리한 마감일과 상업적인 압력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다. 그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클라이언트들은 우리가 말한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우려하기 시작했고,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를 건너뛰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당신들 이전에 중국의 건축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왕슈 Wangshu였다. 그는 지역의 재료, 전통성을 이용한 건축으로 중국 건축의 지속성을 얘기했다. 당신들은 ‘중국적인 것’이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나?
우리는 전통에 우리의 미래가 있고 전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심오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시간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형태와 일시적인 가소성을 넘어서야 한다.

2012년에 새로운 디자인 플랫폼인 더 디자인 리퍼블릭 코뮨 The design Republic commune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그것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매장이나 레스토랑, 호텔이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강의, 전시, 포럼 등의 형태를 통한 디자인 교류와 대화의 장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바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중요한 디자인과 관련 분야의 이슈를 토의하는 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다.

건축이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건축은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상호작용하는지를 고스란히 투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물은 한 시대의 문화적 흔적을 보존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요즘, 행복한가?
누구에게 질문하는가에 달린 것 같다. 나 린던에게 묻는다면 언제나 행복하다. 로산나 후는 언제나 우울하다. 

 

 

사연 있는 미술관
찜질방으로 태어날 뻔했다가 미술관으로 회생했다는 특별한 사연을 품은 소다 미술관. 재생 건축의 또 다른 확장을 보여준다.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안종환

 

 

↑ 소다 미술관은 처음부터 건물이 비뚤게 지어져 입구가 안쪽에 숨어 있다. 

 

 

↑ 2층 컨테이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보라리 작가의 작품 ‘동굴 공간’.

 

경기도 화성시는 온천이 유명한 곳이라 일찍이 큰 규모의 찜질방이 성행했다. 그러나 300~400평 규모의 찜질방이 곳곳에 난립하던 중 사업 부진으로 폐업하는 곳도 속출했다. 화성시 안녕시에 자리한 ‘소다 Soda(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 미술관도 본래 찜질방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건축주의 사정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콘크리트 구조만 남은 채 5년간 방치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흉물이 된 이곳을 미술관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건 싱크 CINK 건축설계사무소의 권순엽 대표였다. “실측을 해봤는데 철거 비용이 2억 정도 나왔어요. 비용도 그렇지만 이 골격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 층고가 높고 방도 많으니 미술관으로 제격이겠다 싶었죠.”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해온 그는 한국적인 문화인 찜질방 구조가 매우 흥미로웠다. 방을 하나의 캔버스로 보고 점차 확장해 나가는 공간으로 해석했고 그 내부를 사람이나 작품이 채워 나가는 열린 미술관을 상상했다. 재생의 취지에 맞게 벽을 하나도 부수지 않고 본래 지어진 모습을 최대한 활용해 실내와 야외 전시장을 만들었다.
그중 ‘루프리스 갤러리’라고 불리는 야외 전시장은 소다 미술관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곳이다. 설치 작품이 있긴 하지만 곳곳을 빈 채로 남겨두었는데 관람객이 잔디 마당, 하늘 사이에서 온전히 드러나는 건물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 야외 전시장을 내려다보면 건물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동네 업자가 이 건물을 대충 앉히는 바람에 건물 전체가 길과 비틀어져 있었어요. 이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으니 2층만이라도 잘해보자 싶어서 정방향으로 길을 만들었죠. 그랬더니 새로운 그리드가 생기더라고요.” 길의 방향이 약간 달라졌을 뿐인데 이 덕분에 건물의 다른 구조와 면이 보이고 공간이 움직인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권 대표는 미술관으로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2층에 3개의 컨테이너 전시장을 만들고 데크를 깔았다. 옛 건물에 새로 길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삼각형의 빈 공간. 그는 이것이 소다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를 모티프로 삼아 소다 미술관의 로고와 삼각형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 건물 방향은 비뚤어져 있지만 2층의 길은 정방향으로 배치해 건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1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는 야외 전시장. 2 야외 전시장에는 곳곳에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 소다 미술관의 첫 개관 전시인 <리:본 Re:Born>에서는 건축가들이 설계만 하고 지어지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모아 소개했다. 

 

 

1 야외 전시장에는 곳곳에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2 관람객은 독특한 구조의 야외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건축이 주는 자극을 느낄 수 있다. 

 

권 대표의 아내이자 소다 미술관의 운영을 맡게 된 장동선 관장은 이곳이 건축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접근하기 쉬운 미술관이기를 희망했다. “건축을 어려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곳이 공간이고 건축물이잖아요. 매일 회사에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하고 주말에는 쇼핑하러 가지만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하죠. 색다른 구조의 건물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건축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이 신경 썼어요.” 대지 6600㎡에 건축면적 약 1652㎡이르는 소다 미술관은 큰 규모의 미술관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알차게 마련해 미술관의 벽을 낮추고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야외 전시장에는 스프링클러를 통해 온천수로 만든 비가 내려 아이들이 각자 만든 우산을 쓰고 비 맞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고 텃밭 학교, 미술 수업 등도 마련했다. 기획 전시의 관람료는 3천원인데 전시가 끝날 때까지 재입장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곳을 자주 방문하고 오래 머물다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개관하고 겨우 세 달째 아무도 찾지 않아 흉물 같았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친근한 동네 미술관이 되었다. “이 건물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마치 유전자 같은 거죠. 그것이 재생 건축이 가진 매력인 것 같아요. 특별한 사연을 알고 나면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갖고 건축물을 바라봐주죠.” 권 대표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해 생명력을 이어나가게끔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소다 미술관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건축에 눈뜨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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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안종환, 테리 배 Terry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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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rchitectur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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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이브러리, 게스트하우스, 학교 그리고 재생건축을 위한 동네 건축까지,각자의 타이틀은 다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었다.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건축에 발을 들여 놓고 즐길 일만 남았다.

↑ 찻길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오면 웅덩이 지형에 자리잡은 퍼들하우스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낮고 넓은 울림
깊고 넓은 웅덩이 같은 지형에 자리를 잡은 퍼들하우스. 몸을 낮춘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힐링 편집 카페다.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임태준 

 

 

↑ 즉석 바비큐 공간으로 활용할 야외 카페. 아직 준비 중이지만 예약제로 운영되는 소규모 모임을 위한 공간이다. 

 

 

↑ 경사진 벽면에는 골조 공사 시 사용한 거푸집 지지대를 그대로 두었다. 다칠 위험이 있어서 지지대를 라인으로 연결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 남성적인 느낌으로 마무리한 카페 화장실. 자연의 돌을 그대로 옮겨온 세면대가 멋스럽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오픈한 퍼들하우스 Puddle House는 힐링 편집 카페를 표방한다. 익숙한 단어들의 낯선 조합이지만 힐링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관용어로 자리 잡은 요즘, 퍼들하우스에 들어선 순간 이외의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단순한 카페로 일반화하자니 오류일 것이 뻔하다. 주위의 자연환경과 어울린 건물의 위용이 범상치 않은 것이다. 퍼들하우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B&A 건축사무소의 배대용 소장이 설계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도맡아 공을 들인 공간이다. ‘퍼들’의 사전적 의미는 물웅덩이. 분지처럼 움푹하게 파인 이곳의 독특한 지형에 착안하여 건축가가 명명했는데 푸들하우스로 오독되어 애견 카페로 알고 오는 분들도 있다고. 퍼들하우스의 김형우 대표와 그의 아버지가 이 땅을 구입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뭔가를 지어보자는 다양한 제안을 받았지만 부자는 도심의 번잡스러움을 지울 수 있는 카페 겸 숍을 겸한 힐링 편집 카페를 짓기로 결심했다. 결심이 서자 주위에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B&A 건축사무소 배대용 소장과의 만남이 진행되었고 공통분모가 많았던 건축주와 건축가는 2년에 걸쳐 퍼들하우스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다들 움푹 파인 지형을 메워서 건물을 올릴 거라 생각했겠죠. 그런데 저는 자연에 손을 대는 걸 싫어합니다. 있는 그대로 웅덩이 같은 지형을 살려 건물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가장 낮은 곳에서 주위의 자연경관을 두루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배대용 소장은 땅을 메우는 대신 앞으로는 원경이 보이는 초록이 우거진 산과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가까이에는 오래전부터 작은 개울이 흐르는 이곳 지형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설계를 할 때 ‘투 페이스 Two Face’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두 개의 건물이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완성했다. 카페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의 개구부와 테라스를 연결하여 개울가 쪽으로, 편집숍으로 활용할 건물은 앞쪽의 산을 향하여 개구부를 만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매스가 엇갈리듯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투 페이스라는 개념은 두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건물을 뜻하기도 하지만 낮과 밤처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뜻하기도 해요. 낮에는 자연에 둘러싸여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고 싱그럽다면 어둠이 내린 밤이면 조명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신비롭거든요.”  

 

 

↑ 탁 트인 테라스를 지닌 카페. 테이블 간격이 널찍하게 떨어져 있어 답답하지 않다. 

 

 

↑ 마치 조각가가 깎은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의 돌도 배대용 소장이 직접 골랐다. 

 

 

↑ 작은 펜던트 조명 하나까지도 건축가 배대용 소장의 컨펌이 필요했다. 그만큼 건축가는 퍼들하우스란 공간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 산 쪽을 바라보고 있는 퍼들하우스의 또 다른 입구. 1층 편집숍으로 통하는 개구부다. 

 

들어앉은 모습도 독특하지만 건물이 입고 있는 외피도 독특하다. “바이록 Viroc이라는 소재인데 쉽게 말해 시멘트 우드 패널이라고 보면 돼요. 나무와 시멘트를 섞어 언뜻 철처럼 보이지만 철보다는 매트하면서 다양한 색감 표현이 가능한 소재입니다. 국내에서는 처음 바이록으로 시공한 사례라 저에게도 의미 있는 현장입니다. 생소한 소재임에도 배대용 소장이 과감하게 선택했죠.” 배대용 소장과 친분이 있는 SBI 어소시에이트의 김명길 대표가 외관 소재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편집숍에 있는 여자 화장실의 문도 붉은 오렌지빛 바이록으로 마감했는데 따스한 색감이 질감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외장재와 내부 마감재로 활용되면서 통일감이 느껴진다. 퍼들하우스의 설계 스케치는 흙으로 외관을 덮고 식물을 심은, 자연에 완전히 굴복한 듯한 설계였다가 유리 온실을 응용한 디자인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법 개정에 따라 유리 사용 면적에 제한이 생겼고 지금과 같은 외관에 이른 것. 두 개의 건물이 엇갈려 있으니 구조도 재미있다. 외부의 입구를 따라 들어오면 계단을 내려와 1층 편집숍을 구경할 수 있고 뒷산을 향해 넓게 깐 데크에서 자연경관을 즐길 수도 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비로소 개울가와 정원이 맞닿아 있는 카페가 나온다. 대로변 찻길과 한 블록 차이지만 외부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고 흡사 음향 효과를 연상케 할 정도의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과 건축을 즐기면서 퍼들하우스에서 제안하는 제품과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명민한 구조다. 편집숍은 향후 페르몹의 아웃도어 제품과 함께 리빙 소품으로 채워질 예정이고 음식 컨설팅은 레스토랑 컨설팅 업체 비마이 게스트의 김아린 대표가 맡았다.

 

 

1 편집숍으로 활용될 1층. 로프에 매달아 연출한 전구 조명등이 공간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2 건물 뒤쪽 데크에서 바라본 1층. 두 개의 매스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퍼들하우스의 내부 구조가 독특하다. 

 

 

↑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 자리에 있어온 작은 돌다리. 처음 시공 때 돌다리가 벽에 가려져 있어서 다시 공사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 프로젝트 기획 그룹인 베리띵즈와의 팝업 전시 및 가드닝 아이템도 판매할 예정이다. 배대용 소장은 완공 뒤에도 건축주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때문에 퍼들하우스 완공 후에도 카페 메뉴, 편집숍, 인테리어 등을 계획할 때 건축가로서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의 발전에 대해서 함께 고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퍼들하우스는 특히 건축주와 마음이 잘 맞아서 더 애착이 가는 곳입니다. 지형이 독특해서 재미도 있었고요. 앞으로 카페 메뉴도 더욱 풍성해지고 쇼핑 아이템도 선보일 예정이라 기대돼요. 건축가는 자신이 만든 건축을 사랑하는 동시에 아쉬워합니다. 애착이 강하니 그만큼 단점도 너무 잘 보이거든요. 하지만 건축가의 입장을 떠나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녹음이 우거진 계절, 마음껏 정원을 뛰노는 아이들과 시냇가의 물소리, 새소리만으로도 심산유곡에서의 신선놀음을 전해주는 퍼들하우스. 배대용 소장은 퍼들하우스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겨울이라고 전했다. “나무와 사람은 정반대예요. 사람은 더울수록 벗고, 나무는 더울수록 입죠. 추운 겨울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자신의 몸을 그대로 드러낸 나뭇가지는 하나의 소묘 작품 같아요. 산등성이에 촘촘한 겨울 나무 가지 위로 눈이 내리면 정말 멋집니다.” 움푹한 지형 때문에 테라스 카페에 앉아서 주위를 바라보면 번잡한 찻길과 주변은 시선으로부터 모두 편집된다. 자연의 품에서 낙천주의자의 기질을 꺼내어 보며 유유자적하노라면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샘 속에 머무를 것이다. 마르지 않는 웅덩이처럼.

 

 

자유는 음악을 타고
재즈, 힙합, 록 등 대중음악이 전하는 기존 지배 문화에 대한 거부와 자유에 대한 목소리. 그 정신을 담은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가 한남동에 문을 열었다.
에디터 최고은 | 포토그래퍼 임태준

 

 

↑ 가운데가 뚫린 ㄷ자 구조로 설계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 경사를 이용해 누울 수 있는 소파를 1층 라운지에 비치했다. 

 

 

1 한 면 전체를 창으로 마감해 시원하게 트인 뮤직 라이브러리의 모습. 2 스피커를 활용한 빌스의 설치 작품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볼 수 있다. 

 

어릴 적 친구를 기다리거나 심심할 때면 동네에 적어도 하나씩은 있는 음반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음원 시장이 장악하고 음반 가게의 씨가 마르면서부터 무형의 음악은 빠르게 소모되어갔다. 하루에도 수많은 곡이 생겨나고 잊혀졌다. 얼마 전 현대카드에서 개관한 뮤직 라이브러리는 그런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이유 있는 반항, 열정을 다했던 청춘과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음악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준비부터 공개까지 5년이 걸렸다. 건물의 설계를 맡은 연세대학교 최문규 교수는 자유와 소통의 컨셉트를 반영해 738㎡의 대지 면적에 넓이 230㎡를 비워놓고 ㄷ자 모양의 지붕을 씌웠다. 맞은편 풍경이 훤히 보이도록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또 경사가 가파른 한남동의 지대를 살려 언덕을 따라 입구로 이어지도록 했고 1층 전면을 유리로 채택하면서 개방감을 더했다. 최 교수는 이전에도 인사동 쌈지길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바 있다. 건물 안에 나선형 길을 만들어 기존의 폐쇄적인 건물을 공적 장소로 바꿔놓았던 그는 뮤직 라이브러리 건물 자체를 하나의 창으로 만들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1 포르투갈의 예술가 빌스 Vhils가 조각한 벽화가 공간에 멋을 더한다. 2 지하 2층에 마련된 소규모 공연장.


ㄷ자 지붕 안쪽에는 프랑스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JR의 작품으로 벽과 천장을 에워쌌다. 멀리서 보면 마치 뭉게구름 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사진작가 빌 오웬 Bill Owen이 포착한 것으로 1969년 알타몬트에서 개최된 롤링 스톤즈의 콘서트 속 한 장면이다. 자유분방함과 반항이 절정에 오른 당시, 이 공연에서는 무대에 오르려는 흑인 청중을 장내 정리 요원이 살해한 ‘알타몬트의 비극’이라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고 히피 문화와 록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JR은 대중음악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이 장면을 뮤직 라이브러리에 가져다놓음으로써 자유의 정신이 새겨지기를 바랐다. 이 벽에는 버스킹 공연을 위한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는데, 누구나 자유로이 오가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열기가 느껴진다. 세부 인테리어는 페이스북 본사, 웨스틴 덴버 공항, 코엑스몰 레노베이션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아온 세계적인 규모의 미국 건축사무소 겐슬러 Gensler가 맡았다. “뉴욕 브루클린을 떠올리며 인더스트리얼하고 거친 느낌으로 계획했어요.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맞추되 1층은 라운지인만큼 화려한 장식과 샹들리에, 가구를 놓았습니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기획을 담당하는 스페이스 마케팅팀 이은영 대리가 설명했다. 경사를 활용해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라운지 소파, 미국 담쟁이를 심어 놓은 작은 언덕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도 공간에 재미를 주는 요소다. 



↑ 연주자들이 연습과 녹음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부스. 

 

 

↑ 로쉐보보아의 마작 모듈형 소파로 꾸민 지하 1층 스튜디오. 

 

 

↑ 빌스의 설치 작품 너머로 그래피티 예술가 JR의 작품이 보인다. 

 

뮤직 라이브러리는 2층에 있다. ‘울림의 시간, 영감의 공간’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이곳에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1만 장의 음반과 희귀 컬렉션, 3000여 권의 음악 도서를 만날 수 있다. 한 면이 전부 유리창이다 보니 양쪽으로 서가를 놓을 수 없고 대신 높은 층고를 활용해 2개 층으로 나눴다. 아래층에는 장르와 시대에 따라 재즈, 소울, 록, 일렉트로닉, 힙합을 분류하고 대중음악의 역사와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색깔별로 지정을 했다. 앞쪽에는 LP판을 골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턴테이블도 두었다. 위층은 나라별로 구성된 특별 섹션이 있으며 장르, 이론, 매거진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을 구비했다. 정해진 소수 인원만 입장할 수 있어 북적이지 않는데다 2개 층을 잇는 작은 도르래를 만들어 음반이나 책을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해 동선을 단축시키는 등 효율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였다. 음악 연주실과 녹음실, 라운지가 있는 지하 1층과 350명을 수용하는 소규모의 공연장 ‘스테이지’가 있는 지하 2층을 합쳐서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음악가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또 다양한 공연도 열린다고 하니 대중들과 함께 소통, 호흡하는 문화 집결지로서 손색이 없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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