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될수록 좋은 것만 모은 빈티지 컬렉터 사보 임상봉의 쇼룸 겸 사무실. 최근 마장동으로 이사해 새로 꾸민 그의 공간을 찾았다.
선반을 빼곡히 메운 빈티지 소품들.
빈티지 컬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 등 다양한 직함을 지닌 사보 임상봉은 타고난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다. 빈티지 가구가 유행하기 훨씬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바우하우스의 매력에 빠져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빈티지 컬렉터가 된 그는 줄곧 후발주자들의 부러움을 사왔다. 게다가 상수동, 방배동 서래마을, 한남동 등 트렌디한 동네가 뜨기 전부터 그 가치를 알아보고 쇼룸 겸 사무실을 운영했기에 얼마 전 마장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는 이야기가 그저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우시장으로 유명한 마장동에 무슨 일로 오게 되었을까. “성수동이 벌써 호황이잖아요. 마장동은 그런 성수동하고 불과 3분 거리에 있어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게다가 교통의 요지라는 왕십리 바로 옆이어서 오가기도 너무 편해요. 여러 지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기에도 적합했죠.” 바로 앞에는 놀이터, 옆에는 작은 절이 있는 조용한 골목에 그의 사무실이 자리하는데 사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개인적이기도 하다. “어릴 적 다녔던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라 익숙한 동네예요. 예전 한영중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 지 30년이 되었지만 주변 건물들이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죠.”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 앞에 서 있는 임상봉 씨.
1 파란색 의자와 갈색 가구의 대비가 돋보이는 공간. 2 빈티지 가구들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그의 그림들.
홀로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작은 방.
99m² 남짓한 이 공간은 원래 옷을 만드는 허름한 공장이었다. 천장을 뜯어내 층고를 살리고 온통 하얗게 칠한 후 일산에 있는 7개의 창고에서 늘 보고 싶은 펜던트 조명을 골라와 매달았다. 그렇게 지난 20년간 수집한 1900년대 빈티지 가구들로 가득 채우니 특별히 장식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스럽다. 가구를 보러 오거나 공간 스타일링을 의뢰하는 손님도 있지만 주로 친한 지인들을 초대해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 그는 이 공간을 ‘사랑방’이라고 불렀다. 종종 작은 파티가 열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주방이 필수였는데 192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작한 주방 가구를 통째로 옮겨와서 쓰고 있다. 여기에 레트로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주황색 가구와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사랑방 한 켠에는 그림을 그리는 등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을 마련하고 답답하지 않게 전면에 통유리를 달아 개방감을 줬다. 그가 갑자기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1970년대 브라운사 오디오의 소리를 들려주겠다며 틀었는데 웬걸, 잡음 하나 없이 깨끗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이건 가구와 조명을 조심해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출시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전자 기기를 지금까지도 작동시킬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에게서 빈티지 가구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단순히 사재기를 하고 싶어서 모은 게 아니라 직접 사용하고 싶은 물건만 구입했어요. 물건은 자꾸 써야 오래간다는 게 저의 지론이에요.” 그가 수집한 가구들은 유럽 각지에서 공수한 것이지만 독일 빈티지 제품이 주를 이룬다.
그가 바우하우스 시대 디자인 가구의 매력에 빠지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 그 후 10년간 독일에서 지내면서 크고 작은 벼룩시장을 드나들었고 독일 빈티지 가구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고급 수종으로 장인이 정성 들여 만든 데니시 가구와 달리 독일 바우하우스 시대의 가구는 플라스틱, 철재, 나무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심미적으로 아름답다. 구조적으로도 매우 편리하기에 쓰면 쓸수록 그 가치를 더욱 알 수 있다. “1960년대 브레멘에서 만든 은색 조명과 촛대는 2000년대가 첨단 우주의 시대가 될 거라고 상상하며 만든 것인데 지금 봐도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받을 만큼 개성 있죠. 여러 개의 부품으로 나뉘어 각각 분리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바꿀 수도 있어요.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독일의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의 접이식 의자도 당시 학교 강당에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에요. 작고 가벼우면서 마감과 구조가 매우 정밀하죠.” 물어보는 물건 하나하나마다 그는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냈다. 디자인사를 통달하고 빈티지 가구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1 월정사에서 데려온 진돗개 월이를 보며 웃고 있는 임상봉 씨. 2 그는 이 테이블에서 지인들과 종종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1 독일에서 구입한 꽃잎 모양의 파티용 접시는 1970년대 제품. 2 주방 쪽에서 바라본 사무실 전경.
주황색을 메인 컬러로 한 주방.
빈티지 가구가 유행을 끌며 단순히 스타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빈티지 컬렉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뜨내기에게 소장하고 있는 것이 어떤 물건이냐고 물으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고 “덴마크에서 산 거예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디자인 역사와 이론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빈티지 제품이 ‘얼마짜리 가구’로 통용되기보다 잘 만든, 아름다운 물건을 찾아내고 즐겨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 빈티지 수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독일 유학 시절, 폐업하는 곳이 있으면 발품을 팔아 찾아가거나 버려진 것을 주워 오고 그러다 정 돈이 없으면 자신이 그린 그림과 바꾸는 등 그 역시 온갖 노력을 다했던 시절을 지나왔다. 빈티지 가구에 대한 그의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1 주황색을 메인 컬러로 한 주방. 2 주방에 놓은 붙박이장은 푸랑크푸르트에서 구입한 것으로 1970년대 제품.
천장이 높아서 위쪽까지 선반을 달고 물건을 진열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