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아는 이의 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대표의 집은 지극히 실용적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태도를 강조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그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물건들만 가지고 산다는 건 여전히 어렵다. 실용에 초점을 맞춰 정도를 지킨 친환경 매트리스 브랜드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대표의 집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김한정 대표와 남편, 어린 두 딸이 살고 있는 분당의 28평형 아파트는 오래전부터 리모델링 이야기가 오가던 단지였다. 전 집도 고쳐 살았던 그녀는 이번에도 수리를 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가족들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접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가 오기 전에 집주인이 이미 여기를 깨끗하게 고쳐놓은 상태였어요. 그렇지만 지저분한 몰딩이나 색감 같은 것을 우리 가족의 취향에 맞게 바꾸고 싶었죠. 그래서 대대적으로 하기보다는 정리만 한다는 생각으로 공사해서 비용을 최소화했어요.”가장 많이 공을 들인 곳은 주방이다. 공간을 늘리기 위해 전면 수리를 했는데, 하부장은 붉은색의 나왕 무늬목 합판으로 제작했고 상부장 대신 선반을 놓으면서 앞쪽에 아일랜드 식탁처럼 쓸 수 있는 ㄱ자 수납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식탁을 놓을 공간이 여의치 않자 거실에 있는 가리모쿠 소파에 식탁을 매치해 거실과 다이닝 공간을 겸했다. 소파 맞은편에 아이들 옷장을 두고 TV는 왼쪽 벽에 배치한 점도 독특하다. “전형적인 배치법은
다 지우고 우리 가족이 생활하면서 필요한 환경을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아침에 요리를 하고, 아이들 옷을 입히고 준비물을 챙겨주는 데 최적의 동선을 떠올린 거죠.” 전에는 바로 앞 동에 살았는데 크기가 26평형이었다. 점점 자라는 두 딸아이에게 책상을 놓아줄 만한 공간이 애매해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게 된 만큼 가장 큰 방을 아이들에게 할애했다. 부부 침실은 현관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침대에 흰색 루이스 폴센 조명을 달아놓은 것이 전부다. 그 맞은편에 있는 드레스룸에는 붙박이장 양 옆으로 흰색 옷장과 아이들 장난감을 정리한 회색 수납장을 두었다. “아이들 방 말고 부부 침실과 드레스룸에는 문이 없어요. 지난번 집에서는 미닫이문을 달았는데 열어놓고 지내는 게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문을 아예 없앴죠.”
위에서부터)거실 | 주방이 좁아 거실 소파 앞에 식탁을 두고 다이닝 공간을 겸하고 있다.
거실 | 맞은편에 놓은 아이들 옷장은 칠판 페인트를 칠해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김한정 대표는 장식적인 것은 배제한 대신 소재의 질감과 색감으로 미적인 요소를 더했다. “그때그때마다 좋아하는 것들이 달라지잖아요. 전에 살던 집은 차가운 모노톤이었어요. 요즘은 그게 유행이 되기도 했고 나이가 드니까 대비가 강한 것보다는 톤온톤의 편안한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는 웜 그레이와 브라운 톤, 황동, 붉은 라왕 합판을 주재료로 사용했죠.” 벽에는 어느 벽지집에나 파는 천장 벽지를 선택, 특유의 오돌토돌한 질감으로 페인트를 바른 듯한 효과를 냈다. 현관과 욕실에 깐 콘크리트 질감의 타일도 동네 타일집에서 고른 것. 소품은 포인트가 필요한 공간에만 배치했다. 15년 정도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카피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탓에 오리지널 디자인 제품이거나 디자인이 아예 없는 제품 위주로 골랐다. 내가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집 안에 꼭 필요한 것만 채운 김한정 대표의 집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집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현관 | 전에 살던 집은 차가운 모노톤으로 꾸몄다면 이사 후에는 웜 그레이와 나무 질감의 바닥재로 따뜻하게 연출했다.
욕실 | 벽과 천장은 정사각형 타일로 깔끔하게 마감하고 바닥은 거친 콘크리트 느낌이 나는 세라믹 타일을 깔아 변화를 주었다.
베란다 | 데크를 깔아놓은 베란다는 폭스 더 그린의 허성하 실장에게 조언을 얻어 파릇한 식물로 공간에 생기를 주었다.
위에서부터)부부 침실 | 현관 옆에 있는 작은 방을 부부 침실로 쓰고 있다. 헤드보드 없는 매트리스와 흰색 루이스 폴센 조명으로 깔끔하게 꾸몄다.
아이방 | 두 딸아이들이 사용하는 큰 방. 한쪽 벽에 격자무늬 벽지로 포인트를 줬고 월 시스템으로 책장과 책상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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