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디자인, 예술, 문화를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성수동 카우앤독, 합정동 키티버니포니, 혜화동 재능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 대학로 ‘Limited&Unlimited’는 우리의 현재가 담겨 있고, 젊은 청춘의 미래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중 첫 번째 소개할 공간. 세계적인 디자인 대가들의 철학과 혼, 그네들이 살아왔던 시간과도 공유할 수 있는 뮤지엄 ‘Limited&Unlimited’ 속으로 들어가본다.
열일곱 살 때부터 남달리 한국 고가구에 관심이 많았던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마음이 동하는 가구를 수집했고 그러면서 알게 된 현대 가구의 매력에 이끌려 지난 40년간 컬렉터로 살았다. 일찌감치 사업 전선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재력가는 얼마 전 ‘Limited&Unlimited’라고 이름 지은 디자인 뮤지엄을 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빈티지 컬렉터 이일규 씨. 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슈퍼컬렉터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마침내 2012년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린 <선의 아름다움-현대가구의 시작>전을 통해 소장품만으로 전시를 열 정도의 규모와 희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컬렉터로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디자인 뮤지엄 개관을 통해 펼쳤다. “10년 전부터 뮤지엄 개관을 계획했어요. 그동안 돈이 없어서 미뤄왔던 일이었지요. ‘Limited&Unlimited’는 말 그대로 생산되지 않는 리미티드 제품과 계속 생산되고 있는 언리미티드 제품을 볼 수 있다는 의미예요. 젊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과거에는 디자인 관련 정보나 지식을 얻을 곳이 없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길이 더더욱 없었죠. 안목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바꾸는 디자인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뮤지엄이 젊은이들의 디자인 성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은 대학로에 터를 잡은 이유를 대변한다. 대학로의 중심 도로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한적해지는 골목 한쪽 묵직한 콘크리트 건물 두 개가 사선으로 보인다. 입구에서 봤을 때는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안쪽으로 몇 발자국만 내디디면 H자형으로 우뚝 서 있는 6층 규모의 유리 벽 건물과 마주한다. 4000㎡의 대지에 지어진 건물은 계단식 중정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원한 이일규 씨의 바람은 건축가 민현식 소장을 통해 실현됐다. 전시장은 디자이너들의 대표 작품만을 배치해놓은 입구 전시장을 시작으로 핀 율, 한스 베그너, 보르게 모겐센, 폴 키에르홀름, 올 벤셔, 아르네 보더, 아르네 야콥센, 닐스 몰러 등 30여 명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작품 2000여 점이 전시장 7군데에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그냥 좋아서 구입한것도, 그저 아름다워서 사는 작품도 있어요. 모든 물건은 각기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전시된 작품 중에는 국제적인 경매 시장에 세 번밖에 나온 적이 없는 핀 율의 초기 작품 3인용 소파, 닐스 몰러의 사인이 새겨진 치프테인 체어, 아르네 야콥센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책걸상 등이 있으며 가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흥미롭다. “북유럽 사람들은 우리와 DNA가 같습니다. 그들의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팔걸이 하나도 한옥의 처마를 연상케 합니다.“ 뮤지엄 입구에 놓여 있는 한스 베그너의 옥스 체어 위에 건 주자성리학의 전통을 깊이 이어온 집을 뜻하는 추사 김정희의 현판 ‘신안구가 新安舊家’. 이런 매치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전시장을 취재하고 나오면서 “모든 것이 저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다”는 공자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1 북악산을 향해 탁 트여 있는 개방감 넘치는 6층 공간은 파티, 행사, 결혼식 등 다목적으로 사용될 예정. 2 폴 키에르홀름의 Pk54 확장형 다이닝 테이블과 Pk9 의자. 3 빈티지 컬렉터이자 limited&Unlimited 대표 이일규 씨.
1 한스 베그너의 회의용 탁자와 닐스 몰러의 62번 모델 의자, 폴 헤닝센의 아티초크 초기 조명 작품이 걸려 있다. 2 1940년대 생산된 핀 율의 로 데스크와 1953년에 생산된 소파와 테이블. 3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빈티지 불탑 싱크대와 8m 불탑 주방 가구를 갖춘 6층.
1 세계에서 몇 점 되지 않는 핀 율의 초기 작품. 2 ‘신안구가’라고 쓰인 입간판이 걸린 1층 전시실. 3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식 홀. 4 공중에 매달아 사용하는 Pk26 소파.
1 건물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본 모습이 그래픽적인 작품처럼 멋스럽다. 2 전시장은 구름다리를 사이에 두고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3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학교 책상과 의자. 4 폴 키에르홀름의 작품만을 전시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