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에 있는 안방으로 가는 통로. 콘크리트 외벽으로 집을 감싸고 네모난 창을 내어 풍경이 슬쩍 보이도록 했다.
직접 땅을 선별해 내 집을 지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간과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긍정심리 전문가인 한서형 씨, 지속가능경영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유명훈 씨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땅과 만났다. 늦깎이 부부였던 두 사람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건강을 챙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를 다녔는데, 가평 축령산 기슭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에 다다르자 왠지 모를 기운을 받았다. “타운하우스 단지에서도 이곳이 가장 높은 지대라서 가장 인기가 없었대요. 그런데 저는 햇살이 쏟아지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죠.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저희에게 알맞은 장소였어요.”
결혼 후 남편이 살던 신도림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냈던 부부는 원래 땅을 사 놨다가 몇 년 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세컨드 하우스를 지으려고 했다. 택지로 분양된 곳은 2년 안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규정을 몰랐던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부부는 계획을 조금 앞당겼다. 별장 말고 집을 짓기로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일전에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저자인 가온건축의 임형남, 노은주 소장님에게 의뢰하면 특별한 집이 될 것 같아서 찾아갔죠. 어떤 집을 짓고 싶으냐고 물어보기에 존경과 행복을 담은 집을 짓고 싶다고 했어요.”
2층에 있던 작은 방을 넓혀 안방으로 교체했다.
맞은편 단층 건물에 있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과 좌식 마루를 겸하도록 설계한 점이 독특하다.
2층 안방은 시선 높이에 맞춰 가로로 길게 창을 내었다.
존경과 행복은 부부에게 아주 의미 있는 단어다. 대학원에서 긍정심리학을 공부하며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자기 가치를 찾는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사랑, 건강 등 핵심 가치를 지닌 여러 단어 중에서 한서형 씨는 행복을, 유명훈 씨는 존경을 선택한 것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집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기를 바랐다. 설계는 1년 가까이 걸렸다. 임형남, 노은주 소장은 부부 사이에서의 존경을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정해주는 뜻으로 해석하고 이를 반영해 집을 2층 건물과 1층 건물 두 채로 나눴다. 그리고 사무 공간, 주거 공간으로 용도를 분리했다. 두 개의 건물은 각기 다른 방향을 보도록 설정했는데 공간마다 빛이 들어오는 정도가 달라 시시각각 공간마다 분위기가 변한다. 또 건물 사이로 바람길이 생기니 공기도 잘 통하고 한결 시원해졌다. 대지 면적 125평에 꽉 들어차게 집 한 채를 지을 수도 있었지만 건물 총면적을 40평으로 줄여 꼭 필요한 공간만 갖춘 것은 앞쪽에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마당, 뒤쪽에 음지식물들을 심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 음양의 조화를 갖추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주택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2층 건물의 계단을 외부에 두고 긴 복도를 만든 다음 시선 높이에 맞춰 가로로 창을 만드는 등 이쪽 건물에서 저쪽 건물로 드나들 때마다 자연스레 자연을 접할 수 있다. “바람 부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도 심심하지 않아서 음악도 잘 틀어놓지 않아요.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는 여행을 좋아했는데 마음이 허하지 않으니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죠.” 행복감까지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집이 완성된 것이다.
미닫이문 너머에 있는 작은 욕실은 세 가지 타일로 공간에 재미를 주었다.
2층 안방으로 가려면 외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공간을 오가다 보면 집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과 끊임없이 마주친다.
기존 안방은 한서형 씨의 작업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여기서 아로마 향초를 만들거나 캘리그래피를 한다.
왼쪽부터)단층 건물에 있는 작은 욕실은 세면대와 샤워 시설을 분리시켰다. 1층 서재 한 켠에 마련한 휴식 공간. 소파는 신혼때부터 사용하던 것을 계속 쓰고 있다. 단층 건물에 마련된 작은 거실은 폴딩도어를 닫아 필요할 때마다 작은 방으로 활용한다.
내부 마감과 인테리어 스타일링은 디큐브 아카데미에서 홈 드레싱 전문가 과정을 수강하며 알게 된 엠스타일의 유미영 실장이 맡았다. 작은 마을 도서관 컨셉트로 설계된 사무동의 1층은 남편의 서재나 회의실로 쓰고 있는 공간. 남편은 서울로 강의를 자주 나가지만 가끔 소규모 특강이 필요할 때는 이곳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4.5m 높이의 층고를 살려 한쪽 벽면에 가득 책장을 설치한 것이 이 공간의 포인트다. 위층에는 행복과 긍정에 관한 책만 모아놓았고 아래층에는 부부가 서로에게 선물하거나 그동안 수집한 아트북을 정리했다. 안쪽에는 작은 방을 만들어 남편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쓰고 있다. 2층은 기존 게스트룸이었는데 얼마 전 새로 확장하고 부부 침실로 바꿨다. 침실 옆에는 욕조를 놓아 부티크 호텔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꾸민 점이 인상적이다. “집을 지을 때 방이 몇 개 있어야 하고 욕조는 꼭 욕실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생각해봤죠. 욕실은 혼자 샤워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었는데 반신욕을 할 욕조 둘 곳을 찾다가 침대 옆에 뒀어요. 잠들기 전, 반신욕을 하며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면 심신에 쌓인 피로가 금세 사라져요.” 욕조 옆에 있는 작은 벽 선반은 기존 방 안에 있던 보일러실을 바깥으로 빼면서 생긴 부분으로, 그 역시 용도를 고려하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을 활용했다.
남편 유명훈 씨의 사무실은 서재 안쪽에 있다. ㄱ자 모양으로 창을 내고 그 아래 선반을 짜 넣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유명훈, 한서형 씨 부부.
작은 도서관 컨셉트로 설계된 서재. 4.5m 높이의 벽면 책장이 포인트다.
집을 완공했던 초창기에는 주거 공간이 맞은편 단층 건물에 있었다. 그러다 한서형 씨가 긍정심리 강의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기존 안방을 향초와 캘리그래피를 하는 작업실 겸 공방으로 바꾼 것이다. 좌식 탁자가 있는 작은 거실 앞쪽에는 폴딩 도어를 달았는데 필요할 때는 문을 닫아 독립된 작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식탁과 작은 좌식용 마루까지 설치해 주방을 크게 만드는 등 오직 두 사람을 위한 세심한 공간 분할이 돋보인다. “값비싼 가구를 모시고 사는 집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사고 싶은 몇 가지만 구입하고 기존에 쓰던 가구를 주로 활용했죠. 재활용센터에서 가져온 가구도 많아요.” 구조와 쓰임에 충실했기 때문에 가구나 물건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두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집 안 곳곳에서 느껴진다. 집이 아닌 주인을 위한 집, 당연한 듯하지만 사실은 보기 드문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