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처럼 그림 작품이 걸려 있는 이 집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는 컬러 매치다. 섬세한 컬러 감각으로 꾸민 네 식구의 집은 그래서 하얗기만 한 갤러리와는 다르다.
리 브룸의 금색 조명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어우러진 화려한 다이닝 공간.
그림이 걸려 있는 집은 많지만 온 가족이 그림을 좋아하고, 거기에 더해 벽 색깔까지 신경 쓴 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80평대의 이 집은 가족 모두가 예술 작품에 조예가 깊다. 특히 그림을 모으고 있는 안주인 덕에 집 안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넓은 창문이 백미인 이 집은 부부와 딸, 아들이 사는 네 식구의 보금자리다.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를 새롭게 했는데 구조를 완전히 뒤집기보다 가벽을 세우거나 공간 구획을 나누는 정도로만 구조 변경을 했고 대신 벽 도장이라든지 컬러 매치 등 디테일한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썼다. 집주인은 에스엘 디자인 이준현 대표와 임지영 실장에게 각각 인테리어 설계와 패브릭을 포함한 스타일링 컨설팅을 의뢰했다. 하지만 예민한 안목을 지닌 안주인은 소품 하나를 고르는 것까지 직접 관여해 집 안 곳곳에 그녀의 애정이 묻어 있다.
딸과 아들도 자신들의 방에 원하는 바를 직접 제안했다. 딸은 엄마처럼 민트 그린 컬러에 푹 빠져 있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한 방을 원했고 아들은 빨간색을 좋아해 포인트 색깔로 활용했다. “같은 색깔이라도 공간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엄마와 딸 모두 민트 그린 컬러를 좋아해서 각자의 방에 적용했는데 딸의 방과 부부 침실의 느낌이 전혀 다르거든요. 딸의 방은 민트 그린 컬러를 기본으로 했고 쿠션 커버나 커튼 등의 색상도 비슷한 톤으로 맞춰서 생기가 느껴지고요, 부부 침실은 좀 더 은은하고 깊이가 있어요.” 임지영 실장의 말처럼 이 집은 각 공간마다 적용한 색깔이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거실은 기존에 사용하던 베이지색 가죽 소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애초에 원했던 젊은 분위기에서 멀어졌지만 줄리언 오피의 작품 ‘Maria.4.’와 벽에 설치한 몬타나 시스템 가구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라운지 같다. 짙은 그린 컬러의 줄리언 오피 그림을 벽의 중앙이 아닌 한쪽 벽에 치우치게 걸어서 약간의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이 마치 액자처럼 배경 역할을 하는 거실은 해가 잘 들 때는 주방까지 햇빛이 들어와 공간을 밝히고 눈이 오는 날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ㄷ자 형태로 배치한 이탈리안 모던 스타일의 거실.
줄리언 오피의 그림을 한쪽 거실 벽에 걸어 포인트를 주었다.
1 거실의 넓은 창문은 액자처럼 풍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2 다이닝 공간에서 바라본 거실. 3 글래머러스한 디자인의 게스트 욕실. 4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아들 방. 가벽을 세워 책상 공간과 분리했다.
거실 맞은편인 다이닝 공간은 금색이 지배한다. 천장에 리듬감 있게 단 금색 펜던트 조명은 최근 가장 떠오르는 영국 디자이너인 리 브룸의 작품이다. 조각을 한 듯한 크리스털 전구와 금색 보디가 만난 제품으로 불을 켰을 때 하나의 샹들리에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이닝 공간에는 최근 엄마와 함께 그림을 고르는 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주방에 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She Walks in Beauty’는 딸이 선택한 것. 금색 조명과 식탁 위의 오브제와 데미안 허스트의 강렬한 나비 그림이 만난 다이닝 공간은 화려하다. 그림을 모아온 엄마와 이제 막 그림을 직접 고르기 시작한 딸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간에 어울리는 그림을 건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림이 많은 집은 대부분 ‘갤러리 스타일’로 꾸며 하얀 벽과 스팟 조명을 밝힌 정적인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집은 그림 작품이 많이 걸려 있지만 딱딱한 갤러리 느낌은 아니다. 임지영 실장은 지금의 벽 색깔이 한 번의 도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아무래도 그림을 모으는 가족이다 보니 그림이 걸리는 벽이 중요했어요. 일반적인 흰색으로 도장하면 새하얗기만 해서 차가워 보일 수 있거든요. 도브 컬러처럼 미묘한 색을 내기 위해 여러 번 도장을 했죠. 보기에는 그냥 흰색처럼 보여도 아주 미세한 색을 띠고 있어요. 그래서 그림만 걸어둔 복도도 차갑지 않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요.”
1 민트 컬러를 주로 사용한 딸의 방. 포근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다. 2 리히텐 슈타인의 그림이 걸려 있는 아들의 방.
부부 침실은 화려함은 없지만 단아하다. 조지 나카시마의 책상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방의 크기와 맞지 않아서 특별히 제작 주문을 해둔 상태다. 멋스러운 원목 가구를 한개 정도 두고 싶었던 안주인의 바람대로 책상이 오면 부부 침실은 제대로 모습을 갖출 예정이다. 침실 안쪽에는 욕실과 드레스룸이 이어진다. 건식 스타일의 욕실은 대리석을 사용해 바닥과 벽을 마감했고 욕조 맞은편에도 그림 작품을 두어 가족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현관 쪽의 욕실은 골드 컬러 거울과 어두운 색깔의 타일이 어우러져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이고 딸아이 방에 딸린 욕실은 파란색 테두리가 포인트인 타일을 깔아 캐주얼하다. 이에 반해 대리석으로 마감한 부부 욕실은 환하고 고급스러워 용도가 같은 공간이어도 누가 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보통 집을 공사하면 대부분 안주인의 입김이 가장 세기 마련이다. 가족들은 암묵적으로 엄마의 선택과 취향에 따르곤 한다. 하지만 이 집은 네 식구가 합심해서 집을 꾸몄다는 게 느껴졌다. 부부 침실의 암막 커튼 색깔 하나도 남편이 골랐을 만큼 보금자리를 위해 식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인테리어 업체에 그냥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 집에 가족들이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더 많은 그림이 벽에 걸릴 것이고, 가족들에겐 그만큼 집에 대한 이야깃거리와 추억도 늘어날 것이다.
1 호텔처럼 고급스럽고 단정한 분위기의 부부 침실. 안주인이 좋아하는 민트 컬러와 짙은 푸른색을 매치했다. 2 대리석으로 마감한 안방 욕실. 욕조 옆 선반에도 작품을 올려두었다.
조지 나카시마의 책상을 둘 안방의 창가 공간. 암체어도 민트색으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