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재능그룹이 만났다. 교육에 있어서 비슷한 신념을 가진 이들은 100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지었다.
과거 교육의 중심지이자 선비들이 드나들던 혜화동 골목길. 그중에서도 창경로 35길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 급제를 기념하는 어사 행진의 길이었고 1900년대 초에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전차가 지나가던 길목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고즈넉한 창경로35길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다. 기하학적인 구조, 뾰족한 삼각형 창문,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돼 있는 동그란 콘 자리 등 모던하고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재능문화센터(이하 JCC)와 JCC크리에이티브 센터다. JCC와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안도 다다오가 처음 서울 사대문 안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계를 의뢰한 재능그룹은 ‘스스로 학습 시스템’을 개발하고 보급해온 재능교육에서 시작된 회사로 현재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 평생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교육문화그룹이다. 재능그룹의 박성훈 회장은 교육 못지않게 건축과 문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JCC와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짓기로 결정했을 때 평소 좋아했던 안도 다다오에게 건축 설계를 의뢰했다. 안도 다다오는 재능그룹과 함께 ‘창의적인 생각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 ‘교육적인 사고를 길러낼 수 있는 공간’, ‘예술적인 열정을 길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세 가지 철학을 건축에 반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잘할 수 있는 콘크리트 소재와 구조로 비슷한 듯 다른 성격의 두 건물을 지었다. 그는 문화센터 내의 전시 공간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터뷰 영상에서 ‘꿈과 개성, 철학이 담긴 100년 건물’을 짓고 싶었다며 교육과 문화, 예술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가 설계를 맡은 지 약 3년의 시간이 지난 2015년 11월, 혜화동에 두 개의 건축물이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콘크리트로 담백하게 지은 JCC크리에티티브 센터.
비스듬한 언덕 형태의 골목길에 세워진 첫 번째 건물인 JCC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센터로 소규모 콘서트홀부터 전시 공간, 카페와 라운지 등을 갖추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건물 내부의 각 층을 나선형처럼 유연하게 이어지는 계단으로 연결했고 삼각형 형태로 창문을 설계해 빛에 따라 공간이 달라 보이도록 했다. 현재 <길 위의 공간>이란 개관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혜화동길에서 발견한 다양한 기억과 이야기를 9명의 작가가 자유롭게 작품으로 풀어낸 전시다. 1층 메인 전시 공간에서는 전시장 전체를 바코드의 색 띠로 도배하고 거울 반사를 활용한 양주혜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는 경쾌한 전시다. 김종구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4층 전시 공간은 사선 형태의 삼각형 창문을 통해 혜화동의 모습을 전시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김종구 작가는 광목 위에 녹슨 쇳가루로 깊은 명암이 느껴지는 풍경을 표현했는데 삼각형 창문으로 보이는 혜화동의 모습과 어우러져 명상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공간이었다. 4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은 아마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전시 공간이다. 우중충하고 어두워, 때론 무섭게 느껴지는 비상계단에 작가 박여주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빔 조명을 쏘았다. 다른 작가들이 수평적으로 작품을 전시한 데 반해 그녀의 작품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수직으로 돌아보게 한다. 계단으로 한 층씩 오르거나 내려가다 보면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1 녹슨 쇳가루로 풍경화를 그린 김종구 작가의 작품. 2 재능그룹 본사가 바라보이는 옥상. 3 옥상에는 봄부터 다양한 식물을 심어 가꿀 예정이다.
맨 아래층에 위치한 콘서트홀도 남다르다. 일본의 나가타 음향에서 참여해 바깥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며 객석 의자도 일본의 고도부키 의자를 사용해 시간이 흘러도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오랫동안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리듬감 있는 나무 벽면도 인상적이다. 높이가 전부 다른 나무 패널로 벽과 천장을 마감해 소리의 반사를 조절하고 모든 객석에서 음악을 고르게 즐길 수 있다. 사방을 나무 패널로 마감한 콘서트홀에 앉아 있으면 외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마치 우주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다. 단단하고 모던한 콘크리트 건축물 안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포근한 감성을 담은 것이 JCC 문화센터라면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좀 더 사무실 같은 분위기다. 이곳은 재능교육의 다양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는 센터로 재능그룹의 일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그렇듯 외부 환경과 자연을 끌어들인다. 특히 옥상정원에서는 남산까지 바라보이는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봄부터 다양한 식물을 심을 예정이다. 센터를 천천히 둘러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안도 체어라고 이름 붙인 벽 고성식 의자도 두 개, 배수관도 두 개, 옥상의 기계 설비도 두 개다. 안도 다다오는 무엇이든 한 쌍으로 설치하는 것을 좋아해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은 가짜 모형을 만들어서라도 꼭 두 개를 맞춘다. 이런 강박에 가까운 취향과 철칙이 오늘날 그를 개성이 강한 건축가로 만든 것은 아닐지. 안도 다다오가 이번 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오픈 마인드’다. JCC는 비스듬하게 경사진 보행자 골목에서 누구든 쉽게 필로티 구조의 건물로 들어올 수 있고 건물 외부를 통해 오르고 내려오면서 주위의 풍경을 유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건물 내부에 폴딩 도어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평소에는 막아두었다가 언제든 접어서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폴딩 도어는 안도 다다오가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창문 형태 중 하나다. 콘크리트로 지어져 내부가 꽉 막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건물 안에서도 충분히 자연과 맞닿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온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지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 김종구 작가의 작품과 삼각형 창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4층 전시 공간. 2 지하 콘서트 홀부터 지어지는 나선형 계단. 3 JCC크리에이티브센터 내의 R&D 사무실.
안도 다다오는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세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상과 영감을 주춧돌로 삼아 세계적인 건축가가 됐다.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재능그룹에서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지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문화 생활을 통해 교양을 쌓고 시야가 넓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혜화동은 대학로와 가까워 각종 공연과 연극, 길거리 축제, 주말 시장 등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동네다. 혜화동에 교육과 문화를 이끄는 재능그룹의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가 지어졌고 이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혜화동으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
1 콘크리트 건물 구조 사이로 햇빛이 아름답게 내려오는 JCC크리에이티브 센터 지하. 2 오디토리움에 들어가기 전에 이용할 수 있는 널찍한 라운지.
1 벽과 천장을 나무 패널로 마감해 완벽한 음향을 선사하는 콘서트홀. 2 좌석 아랫부분을 누르면 의자가 나오는 오디토리움. 3 김용관 작가의 팝아트적인 시트지 작품 카페 전시 공간.
1 오디토리움은 계단식 구조로 세미나, 강연 등이 이뤄진다. 2 1층에서 전시 중인 양주혜 작가의 바코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