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구와 소품으로 신혼집을 채운 이지연 씨. 남들과 비슷한 스타일로 집을 꾸미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오래된 물건에서 해답을 찾았다.
10년간 사용해 지겨워진 스카프를 캔버스에 고정시키고 벽에 걸었다. 둥근 다리가 특징인 콘솔은 시아버지가 오래전, 중국에서 선물 받은 가구로 스카프와 같은 남색 페인트로 도장하고 손잡이를 교체했다.
1 보버리빙의 소파와 사이드 테이블로 화사하게 꾸민 거실. 한 켠에는 편안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를 두었다. 2 최근 모피 브랜드 지요를 론칭한 이지연 씨는 집에서 직접 손바느질한 퍼 목도리와 의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3 TV를 가운데에 두고 오디오를 양쪽에 배치한 구조마저 클래식하다. 오래된 오디오는 친정 부모님이 1991년에 구입한 제품으로 종이만 한번 갈았더니 여전히 음질이 훌륭하다.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이 벽이에요. 스카프를 걸어놓은 게 인상적인데 직접 만든 건가요? 네. 이 스카프를 10년 정도 쓰다 보니 지겨워서 캔버스에 씌우고 벽에 걸었어요. 해놓고 나니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시작으로 다른 물건들도 고쳐서 사용하게 되었죠. 스카프 아래에 둔 콘솔은 시아버지가 오래전 중국에서 선물 받은 물건이에요. 새빨간색이었는데 스카프와 같은 짙은 남색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손잡이를 교체했어요.
침대 헤드보드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들었는데 재주가 많은 거 같아요.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명품 브랜드 VMD로 일했어요. 그러다 아모레퍼시픽 디자인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어깨너머로 인테리어를 배우게 되었죠. 높이가 2m 정도 되는 헤드보드는 그때 알고 지냈던 목공소 사장님한테 부탁해서 만들었어요. 솜을 넣고 패브릭을 씌우는 건 따로 맡겨야 했는데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얻으려다 보니 발품을 팔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모피 브랜드 ‘지요 JIYO’를 론칭했어요. 직접 퍼 목도리나 퍼 재킷을 만드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인테리어에도 신경 쓸 여력이 되더라고요.
1 남편의 서재. 못 없이 이음새만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장인에게 부탁해 체리색 원목 책상을 제작했다. 2 방 안을 향기롭게 해주는 디퓨저와 소소한 물건을 담아두는 유리 함. 3,4 게스트룸 겸 작업실로 사용하는 방. 카르텔의 금색 테이블 조명에 맞춰 의자도 금색으로 도장했다. 5 직접 디자인한 침대 헤드보드는 주문 제작한 것. 테이블 조명은 미국 가구 쇼핑몰인 올모던닷컴을 통해 직구했다. 6 저렴하게 구입한 서랍장 위에 미국에서 직구한 화려한 거울을 달아 화장대로 쓰고 있다.
요즘은 헤드보드를 간소화하거나 없애는 추세인데 크고 장식적이어서 그런지 클래식한 분위기가 나고 아늑해 보여요. 호텔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내자는 게 목표였어요. 묵직한 색상이면 나이 들어 보일 것 같아서 화사하고 깔끔한 색으로 선택했죠. 매트리스는 시몬스 제품인데 미국 킹 사이즈라서 국내 규격보다 커요. 그러다 보니 풍성한 크기에서부터 느껴지는 포근함이 있는 거 같아요. 침구는 맞는 게 없어서 동대문시장에서 주문 제작했습니다.
화려한 거울이나 양쪽에 똑같이 놓은 조명 때문에 아메리칸 클래식 분위기가 나요. 남편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나요? 남편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외국 생활을 오래 했어요. 이사도 많이 다녀서 한국 아파트의 전형적인 구조보다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집에 익숙한 편이죠. 이 집은 결혼 전 남편이 형제와 둘이서 지내던 곳이었는데 온통 짙은 체리색이었어요. 칙칙한 느낌이 들어서 밝게 바꾸자고 했더니 흔쾌히 잘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을 꾸밀 때 특별히 참고하는 게 있다면요? 저는 뭔가 해야겠다는 전체적인 계획이 없어서 참고한 게 없고 그때마다 즉흥적으로 했어요. 안방도 침대 헤드보드에 나머지를 맞췄고요. 거실도 소파가 정해지고 나서 그에 맞춰서 식탁이나 조명을 결정했죠. 소파는 저희 부부와 오랜 친구인 보버라운지의 김지남 대표에게 결혼 선물로 받았어요. 보버라운지를 위해 최중호 디자이너가 만든 가구인데 최근 론칭한 보버리빙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집은 한 곳을 완성하면 다른 곳을 고쳐 나갔기 때문에 전체를 바꾸는 데 4~5개월 걸렸어요. 살면서 하나씩 해나간 거라 곳곳에 생활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방마다 느낌도 조금씩 달라요.
곳곳에 오래된 물건이 많이 보여요. 다 어디에서 구했나요? 저희 부모님, 시부모님, 저, 남편이 사용하던 물건이 섞인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무역업을 하시고 시아버지는 외교관이셨는데 공교롭게 양쪽 집안이 모두 해외 경험이 많았어요. 비싼 골동품은 아니고 대부분 오래전 외국에서 구입한 소소한 물건들이죠. 꽃무늬 커피잔은 시어머니가 영국에서 사신 거고요. 거실에 둔 오디오는 친정 부모님이 1991년에 사신 건데, 중간에 종이만 한번 바꿔줬더니 음질이 너무 좋네요. 서재에 둔 가죽 함도 우리 집 창고에 놀고 있는 걸 꺼내왔어요. 아직 저런 게 창고에 많이 쌓여 있어요.
보물을 건지는 기분이겠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손님방 겸 작업실 바닥에 깔아놓은 태피스트리요. 시아버지가 버리려고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놨던 거예요. 라마 털로 만든 건데 관리가 안 되어서 상태가 엉망인 것을 제가 빗질을 해서 살렸어요. 잘 보면 엉성한 부분도 많은데 수작업으로 만든 투박한 멋이 있더라고요. 요즘 저런 걸 어디서 구하겠어요.
지연 씨가 생각하는 멋진 인테리어는 무언가요? 북유럽 인테리어도 멋지지만 성격상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걸 싫어해서 최대한 피하려고 했어요. 전형적인 스타일보다 믹스매치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집이 진국이라고 생각해요. 물려주신 것 중에 예쁜 물건이 많았는데, 모르고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shopping list 1 오래전 이케아에서 구입한 철제 6구 촛대는 손때가 타면서 멋스러워졌다. 2 고풍스러운 장식의 주석 함. 3 시어머니가 사용하던 세라믹 소재의 레녹스 탁상시계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안방과 잘 어울린다. 4 집 안 곳곳을 향기롭게 해주는 디퓨저와 캔들. 5 클래식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북엔드는 홍콩으로 여행 갔을 때 프랑프랑에서 구입한 것. 6 자동차 열쇠 등 작은 소품을 보관하기 좋은 다람쥐 모양 볼은 현관 신발장 위에 놓고 사용하고 있다. 7 화사한 색상이 돋보이는 카르텔의 트레이는 잡다한 물건을 정리할 때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