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래식과 모던, 한국의 전통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실.
집을 취재하면서 매번 느끼는 한 가지가 있다. 그 집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향기, 색깔, 주인의 얼굴, 작은 소품들에서는 사는 이들의 행복 지수가 감지된다. 잠원동에 위치한 20년 된 낡은 아파트를 레노베이션해 5년째 살고 있다는 장수일, 김소희 모녀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알싸한 초록빛 이파리로 장식한 주방이 봄바람처럼 주변을 환기시키고 컬러로 단장한 집 안 곳곳에서는 기분 좋은 공기가 흐른다. 그저 평범했을 아파트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은 이는 VMD 출신 엄마다. “191㎡의 아파트로 작은 집은 아니지만 오래된 아파트라 실평수보다 작고 답답해 보였어요. 그래서 천장고를 오픈시켜 답답함을 덜어냈고 일부러 깔끔하게 마감하지 않았어요. 저희 집이 다른 집과 달라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천장고 때문이죠.”
레노베이션을 하기 전 세웠던 계획은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효율을 내는 것이었다. 지인에게 인테리어 공사를 부탁해 저렴한 비용에 맡기는 대신 현장 감독 역할을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 기존에 쓰던 가구들은 천갈이 정도만 했고 대신 패브릭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집 안의 감도는 패브릭의 질감이나 컬러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거실과 안방은 집주인의 감각을 압축해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소파는 C&C밀라노 패브릭을 사용해 투 톤으로 천갈이했고 클래식한 릴랙싱 체어를 배치해 작은 휴식처를 마련했다. 그 옆에 놓인 작은 소반에는 안경집을 넣은 작은 볼과 오브제를 놓아 모던과 클래식, 한국적인 감성이 뒤섞인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2 자수 작품과 도자기를 생산하는 브랜드 ‘아티초크’에서 수공예 작가로 활동 중인 김소희 씨와 VMD 출신의 엄마 장수일 씨. 3 다이닝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부 침실과 드레스룸이 양쪽으로 있다.
4 동양적인 패턴과 컬러감 있는 원단으로 꾸민 소담스러운 부부 침실. 5 화이트와 블랙의 대비로 모던하게 바뀐 욕실.
안방은 오리엔탈 감성을 불어넣었다. “동양적인 느낌의 슈마커 원단 벽지로 포인트를 주고 삼색 컬러로 물든 C&C밀라노의 원단으로 커튼과 침구를 통일해 차분하면서도 컬러풀한 오리엔탈 스타일을 연출했어요.”
이 집에 특별함을 더한 공간은 가늘고 긴 일자형 주방이다. 거실에서는 주방의 규모가 보이지 않지만 식탁 뒤로 기다란 싱크대 공간이 있다. 양쪽으로 문을 낸 아이디어는 가족들이 함께 주방을 오가도 동선이 번잡스럽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됐다. 살림하는 주부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한 수납공간도 넉넉하게 구비돼 작지만 알차다. 주방 앞쪽으로는 여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을 배치했는데 카르텔의 루이고스트 의자를 배치해 공간이 한결 넓어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이따금 주변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잠원동 카페’로 놀러 오라고 해요. 그 카페는 바로 저희 집 식탁이고요. (웃음) 식탁 위에 건 조명 주변을 식물로 장식하면 색다른 분위기의 다이닝 공간을 연출할 수 있어요.” 식탁 주변으로는 딸이 만든 소품, 전통 수납함, 소반 등의 작은 소품들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오랫동안 VMD로 일하면서 일궈온 감각을 집 안에 풀어놓은 엄마는 수공예 작가인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소통한다. “요즘 딸에게 한 수 배우고 있어요. 손재주가 좋아 자수는 물론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잘하는 딸은 유행하는 것을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접목도 잘 시켜요.” 쿵짝이 잘 맞는 미적 감각이 남다른 엄마와 딸. 이 집은 어찌 보면 집을 캔버스 삼아 모녀가 함께 그린 추상화 같다. 다양한 스타일이 뒤섞여 가족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공간은 엄마가 가족에게 선물한 집이다.
6 블루 컬러 타일로 포인트를 준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주방. 7 한식기를 비롯해 놋그릇과 주방 소품들로 장식된 선반. 8 여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다이닝룸. 싱그러운 꽃과 이파리 장식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