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문화, 옛것과 새로운 것. 삶의 일부가 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이고 갤러리를 소개한다.
1 조선시대 수목침으로 장식한 아들 방.
무언가를 모은다는 것은 오랜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앤티크 컬렉터이자 이고 갤러리의 관장 백정림은 단순히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주택들 사이에 자리한 이고 갤러리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그저 조금 비범한 모습을 가진 주택일 뿐이다. 마당에서 현관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멋을 더하는 나무와 돌, 소담스럽게 핀 꽃들로 담백하게 정돈되어 이 집의 좋은 표정을 만든다.
“어느 건설사 사장님이 살던 집이었는데 건축할 때 벽돌 사이사이 황토와 숯을 넣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장인이 직접 짠 것이에요. 바닥은 핀란드산을 썼고 주방에는 불탑 부엌 가구를 갖춰 더 이상 손볼 필요가 없는 단단하고 기특한 집이었죠.” 정든 집 이상의 아우라를 갖고 있는 이고 갤러리는 집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의미에 애정이 더해진 결과, 집은 갤러리라는 제2의 삶을 살게 됐다. 이 집은 백정림 관장이 서초동 집과 오가며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3층 규모의 공간에는 주방, 거실, 아이 방, 부부 침실, 다락방, 한실, 다실 등이 있는데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병립해온 앤티크 오브제들이 공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생활에서 제 역할을 하는 앤티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집 안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꾸며놓은 거예요.” 누군가의 집에 들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감상하듯 편하게 방과 거실을 오가다 보면 내 공간을 떠올리고 이 집의 과거가 상상되기도 한다.
2 이고 갤러리 관장 백정림. 3 갤러리의 외관.
갤러리를 운영하기 전 백정림 대표는 유명한 학원 강사였다. 그리고 아들을 명문대에 조기 입학시킨 대치동맘으로 유명세를 탄 적도 있다. 취미로 하나 둘씩 모아온 앤티크 컬렉션으로 갤러리를 꾸리게 될 거라고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결국 운명이 이끌어온 셈이다. 지난 18여 년간 동서양의 앤티크를 모아왔는데 1800년대의 르네 라리크, 바카라, 티파니 등의 테이블웨어를 비롯해 조선시대 반다지, 떡시루, 약장과 이우환, 이동엽, 남관 등 현대미술 작가의 그림 작품까지 그녀가 수집한 컬렉션은 무려 1만여 점. 컬렉션 중 테이블웨어가 반 이상 차지한다. 아르누보, 아르데코, 아트앤크래프트, 빅토리언 시대의 생활용품을 보고 있자니 그 시대의 문화 속으로 풍덩 빠져들게 된다. “소위 여유 있는 여자들이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명품 백은 사면서 집에 제대로 된 커피잔 세트가 있는 경우도 드물더군요. 그런 분들께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 문화를 전하고 싶었어요.”
4 빅토리언 클라렛 저그와 와인잔. 5 조선시대 울릉도에서 사용했던 굴뚝 옆으로 서안이 붙어 있는 형태의 반닫이가 있다.
6 아르누보 시대의 고블릿. 7 금도금한 잔과 프랑스 앤티크 테이블웨어. 8 2층 갤러리 모습.
이고 갤러리에서는 ‘보석보다 빛나는 식탁 위의 예술’을 주제로 매달 테이블 세팅 클래스를 개최한다. 앤티크와 관련된 인문학 강의를 비롯해 티파티, 디캔터, 포크 등 그 주제에 맞는 실제 커트러리나 소품으로 식사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분야를 강의하다 보니 너무나 즐거워요. 수업을 듣는 분들이 가족에게 선물한 테이블 세팅을 종종 사진으로 보내주세요. 엄마의 활약으로 가족의 식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은 백정림 관장은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열어줬다. 예술과 삶의 접점은 생각만큼 멀지 않다는 것. 그 친절한 대답을 이고 갤러리에서 만난 것 같다.
9,10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다락방에 마련한 다실들. 11 1800년대 생산된 르네 라리크 테이블웨어는 백 관장이 가장 아끼는 제품이기도 하다. 12 100년 이상 된 티파니의 다양한 커트러리.
13 이우환 작가의 그림 아래 놓인 지장 위에는 빈티지 바카라 디캔터와 요즘 생산되는 제품을 함께 장식했다.
14 로맨틱한 핑크색으로 세팅한 식탁. 15 클래스가 열리는 주방. 16 자포니즘 시대에 생산된 티 케이스.
17 아르데코 시대에 생산된 티포트 세트. 18 1980년대 남관의 작품 아래로 조선시대 함을 소품으로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