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온통 하얀색 벽과 가구들, 소장하고 있던 빈티지 조명으로 꾸민 작업실은 파리의 한 아파트 같은 모습이다. 2 작업실 1층에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도 흰색으로 칠했다. 4 엄마와 딸에서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선배와 후배의 길을 걷고 있는 신경옥과 김한나.
가로수길과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의 만남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즐거움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인테리어 스타일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20여 년 전부터 누군가의 집과 상 공간을 그녀만의 감성과 시안을 더해 일상 이상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가로수길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던 카페 블룸앤구떼, 일본식 선술집인 19번지, 그 위층의 중식집 콰이 등을 감도 높은 분위기로 인테리어 스타일링하며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견인했다. 이른바 가로수길의 번영을 도모한 이들 중에 신경옥이 있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녀가 매만진 공간과 거리를 거닐며 함께 호흡하고 그 정서를 향유했다. 그래서 신경옥에게는 1세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라는 어깨가 제법 무거울 법한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인테리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년생 딸과 아들을 키우던 평범한 주부가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나왔고, 설계 도면 하나 없이 갖가지 공간을 고치고, 자신만의 손재주로 리빙 소품과 패션 액세서리 등을 만들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군산의 전통 있는 빵집인 이성당을 과거와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모습으로 서울에 무사히 안착시키는 것은 물론, 가로수길의 맛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릴밥상과 크고 작은 개인 공간을 작업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경옥이 최근 논현동에 새로운 작업실을 조성했다.
5,6 4층 옥상에 화단을 조성해놓은 모습이 유럽의 가정집을 닮았다.
7 신경옥의 여섯 번째 작업실.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이 가는 대로 꾸미고 물건을 채워 넣는 이것이 그녀의 인테리어 스타일이다. 8 벽을 따라 소파를 붙이고 매트리스를 제작해서 올리니 멋스럽다. 9 2층 김한나의 공간에서 바라본 리빙룸.
10 2층의 리빙룸. 벽에 걸어놓은 십자가는 신경옥이 만든 것. 2014년 DDP에서 개최된 <디자이너의 십자가>전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11 온통 하얀 공간에 빈티지 소품으로 채웠을 뿐인데 화장실마저 유럽 같을 수 있는 것. 이것이 1세대 스타일리스트의 내공. 12 황학동시장을 돌고 돌아 찾은 라디오 겸용 빈티지 TV. 13 작업실 2층의 리빙룸에서 김한나가 시안 작업을 하고 있다. 한나두라는 법인을 내고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가 어머니와는 또 어떻게 다른 행보를 전개할지 기대된다.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강남의 학동역 부근, 번잡한 큰길가에서 조금 벗어난 좁다란 골목길에 그녀의 작업실이 있다. 아담한 건물의 3, 4층에 위치한 이곳은 그녀의 여섯 번째 작업실이다. 그간 가로수길, 방배동 등을 거치며 직접 칠하고, 닦고, 고쳐 신경옥 스타일로 꾸며온 그녀의 작업실은 이번에는 시작부터 달랐다. 딸 김한나도 4층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어머니의 공간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김한나는 ‘한나두 hannado’라는 법인을 내고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스타일링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던 애가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하겠다 해서 정말 놀랐어.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는 것을 지켜보더니 관심으로 자랐나봐. 굉장히 좋아해. 난 뭐든 좋아하는 걸 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 한나가 좋아하고 즐거우면 된 거야.” 신경옥 작업실에 한나두가 정식으로 들어오면서 엄마와 딸이자 선배와 후배인 신경옥과 김한나가 마음을 합쳐 이곳을 꾸미게 되었다. 작업할 때 틀과 규칙에 얽매이기보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을 즐기는 그들은 가장 먼저 이곳의 컨셉트를 ‘오프 화이트 Off White’로 정했다. 20평 남짓한 공간을 천장부터 바닥, 벽면, 창틀까지 온통 하얀색인 ‘오프 화이트’로 칠했으며, 장식장과 커다란 테이블, 싱크대 등 모든 가구를 하얀색으로 통일했다. 그렇다고 하얀색 가구를 새로 구입해 들인 것은 아니다. 이미 갖고 있는 가구나 황학동의 풍물시장 등지에서 찾아낸 고가구에 직접 오프 화이트 컬러를 칠한 다음 공간 곳곳에 배치했다.
14 여행과 출장을 가면 구입하는 인테리어 및 예술 서적. 15 신경옥의 흔적이 느껴지는 손때 묻은 측량 도구들. 16 중국 여행에서 구입한 페이퍼 장식. 12장생을 무늬로 넣은 이 얇은 종이로 무엇을 꾸밀지 구상 중이다.
17 그동안 사용하며 느꼈던 편리함만을 모아 만들었더니 작업실 1층의 주방은 작지만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18 4층 테라스의 한 벽면을 작은 주방으로 조성했다. 황학동시장에서 구입한 작은 고재 선반을 흰색으로 칠해 벽에 다니 수납이 편리한 주방용 선반이 탄생했다.
19 필요할 때마다 새 물건을 구입하기보다 오래된 물건이라도 색을 칠하고 고쳐가며 쓰는 것이 제맛이다. 20,21 한때 요리연구가 노영희로부터 요리를 배운 적이 있는 김한나는 작업실에서 손수 요리하기를 즐긴다.
소파 역시 마찬가지. 나무로 소파 틀을 만들어 하얀색을 칠하고, 그 위에 같은 톤의 소파 매트리스를 제작해 올렸다. “하얀색은 잘 질리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색이라 좋아해. 뭘 갖다 놓아도 어울리잖아.” 작업실의 1층에서 2층으로 난 계단까지 온통 하얀색인 이곳은 흔치 않은 구조 역시 눈에 띈다. 신경옥과 김한나는 부분적으로 벽을 허물고, 붙박이장을 떼어내는 등 실내를 자신들의 쓰임과 목적에 맞게 과감하게 변경했고, 떼어낸 문짝 등은 흰색으로 칠해 싱크대 선반으로 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업실 1층은 주로 손님을 맞이하고 미팅을 하는 등 신경옥 작업실 주된 역할을 한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1층보다 아담한 사무 공간과 소파가 놓인 리빙룸이 등장한다. 이 작은 사무 공간에서 김한나는 시안을 짜고 글을 쓰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리빙룸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도심 속 숨통마냥 존재하는 이곳의 아름다운 노천 테라스가 있다. 이곳은 모녀가 타일을 붙여 개수대를 만들고 작은 장식장들을 쌓아 올려 미니 주방을 조성하는 등 직접 꾸몄으며, 테라스의 중심에는 기다란 테이블을 놓아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언제라도 야외에서의 기분을 만끽하며 식사나 파티를 즐길 수 있다. 테라스 한 켠에는 화단도 조성돼 있다. 며칠에 걸려 찔레꽃, 클래식 장미, 각종 허브 등을 심고 물을 주니 화단이 제법 그럴듯해졌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를 따라 제 방 인테리어를 바꾸고, 소품을 만드는 것이 삶의 일부였어요.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들이었죠. 그런데 한나두라는 법인을 내고 제 사무실을 갖추고 선배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니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어요. 특히 어머니가 일에 임하시는 자세를 배우고 싶어요.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고 놀고 즐기듯이 일하라고 조언하셨는데 어머니가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으셨어요.” 김한나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 말을 이었다.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모녀는 때로는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때로는 라이벌이 되곤 한다. 특히 앞서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딸은 어머니가 배우고 싶은 스승이자 언젠가는 뛰어넘어야 하는 산이 된다. 한 작업실에 각자의 영역을 만들고 아름답게 가꿔가는 신경옥과 김한나.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필요할 때는 마음을 합치고 또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만들 새로운 시대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22 꽃시장에서 사온 각종 꽃으로 꾸민 작은 화단. 23,25 신경옥과 김한나가 지인들을 초대했다. 모녀가 스타일링한 테이블. 24 가족같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한때. 왼쪽부터 공간 디자인을 하는 보이드 플래닝의 최희영 대표,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김승희, 세라믹요의 박정희, 신경옥, 웅갤러리 최웅철 관장. 보이드 플래닝 강신재 대표, 주얼리 디자이너 최부미, 차이킴의 김영진, 김한나.